주간동아 658

2008.10.28

더불어 흥겨운 삶 추구하는 ‘풍류 전도사’

  • 대전=지명훈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mhjee@donga.com

    입력2008-10-20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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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 흥겨운 삶 추구하는 ‘풍류 전도사’
    ‘의관을 정제한 선비들이 정자로 모여든다. 춘삼월의 정자 주변은 갖가지 꽃으로 흐드러지고 멀리 암벽의 폭포수가 소리 없이 부서진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선비들은 갓을 풀고 도포를 벗는다. 한 선비가 그동안 연마한 실력으로 시 한 수를 읊자 다른 선비가 질세라 운을 받아 화답한다. 기녀들의 낭자한 웃음소리가 건넛산까지 울려 퍼진다. 술자리가 끝나자 선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의관을 정제하고 태평가를 부른다.’

    대전 중구 문화동에서 일강서실을 운영하는 전병택(50·사진) 금강풍류회장은 풍류(風流)가 뭐냐고 묻자 먼저 이런 한 편의 동영상을 그려 보인다. 그는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 4회 연속 초대받은 중견 서예가다.

    “풍류라는 말은 알 듯 말 듯해요. 분명한 것은 멋있고 흥겨운 삶이죠.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에요. 상대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부단한 연마, 상대를 배려하는 포용,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 절제 같은 것이 담겨 있죠.”

    전 회장은 ‘풍류 전도사’다. 1999년부터 올해까지 10년 동안 전국의 문인과 소리꾼, 서예가, 화가가 참여한 가운데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용강서원을 중심으로 열리는 금강풍류제를 주도해왔고, 2004년부터는 회장을 맡아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풍류제는 30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데 매년 7월 초 열린다. 공연진과 관객이 한데 어우러져 술잔을 주고받는 가운데 먼저 시가 낭송된다. 시 중에서 좋은 구절을 골라 서예가가 그 자리에서 글로 쓰고 화가들이 그림으로 그려 내건다. 국악인들은 악기 연주와 소리로 흥을 돋운다.



    “처음에는 그저 멋들어지게 한판 놀아보자면서 지인, 예술가들과 제원면 강가에 모이곤 했어요. 그러다 무대를 만들어 공연 형태로 대중과 공유하자는 제안이 나와 풍류제를 열었지요. 아마도 풍류의 맥을 잇는 행사는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힘들 거예요.”

    전 회장은 풍류제 덕분에 지난해 1월 명강사들만 모인다는 서울의 ‘미래촌’에서 풍류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다.

    그는 풍류라는 말이 중국 한나라 말부터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당시는 ‘좋은 가르침이 주위에 영향을 주어 윤택함을 넘치게 한다’는 의미였다. 나중에 ‘속된 일을 떠나 풍치 있고 멋지게 노는 일’로 자리잡았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왕희지였다.

    “중국 춘추시대에 백아와 종자기란 인물이 있었어요.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백아가 태산을 염두에 두고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태산 같다’ 했고 흐르는 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그 또한 헤아렸지요. 이에서 ‘지음(知音)’이란 말이 유래했는데 풍류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서로 알아주기’입니다.”

    전 회장은 “풍류가 넓게는 더불어 살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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