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3

2008.09.16

한국의 우공, 세계 최고 정원 일구다

  • 제주 = 임재영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jy788@donga.com

    입력2008-09-12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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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우공, 세계 최고 정원 일구다
    분재를 소재로 한 ‘생각하는 정원’(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의 성범영(69·사진) 원장은 만나자마자 “제주에 신(新)공항과 대형 크루즈선이 드나드는 항만이 필요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세계인을 유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먼저 담을 그릇(공항, 항만)을 준비해야 합니다. 덧붙여 세계 지성인이 감동하고 감격하는 명품 하나는 있어야죠.”

    유럽과 남미 등에서 쉽게 찾아오는 길이 열리면 제주에만 있는 세계적인 명품 한두 개로 관광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각오다. ‘생각하는 정원’을 문화, 혼, 철학이 깃든 명품으로 키우겠다는 자부심이 엿보인다.

    올해로 정원을 시작한 지 40년, 개원한 지 16년을 맞았다. 외환위기 당시 경매 위기를 맞았을 때의 초췌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의 얼굴엔 구릿빛 건강함이 감돈다.

    1995년 당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 98년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현 국가주석)의 방문은 정원과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장쩌민 주석은 이곳을 다녀간 뒤 “일개 농부가 이룩한 이곳의 개척정신을 배우라”고 지시했다.



    중국에서의 초청이 줄을 이었다. 중국 신문, 방송 등 언론에 600여 차례나 소개됐다. 그는 산의 돌과 흙을 파내 길을 내려 했다는 중국 고사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을 빗대 한국의 ‘우공’으로 불린다.

    그는 60여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모두 장·차관급 고위인사들과의 만남을 위해서였다. 중국 외교부에서는 단일 인사가 중국 고위인사를 이처럼 자주 만난 것은 성 원장이 유일하다고 했다.

    중국 고위인사들이 감명받은 것은 분재의 외형이 아니다. 정부 지원 없이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원을 가꾼 농부에 대한 경외감, 자연보다 더 자연다운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노르웨이 핀란드에서도 오로지 정원을 보려고 제주를 방문했다. 외국 지도자들과 조경 전문가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평가도 이끌어냈다.

    “독일 베를린종합대학의 조경학 교수는 정원 설계도가 없다는 말에 깜짝 놀라더군요. 지금도 머릿속에 담긴 설계도에 따라 정원을 꾸며요. 나무에서 무엇을 얻고, 깨닫는지를 글로 써 붙여놓은 것이 관람객의 이해를 높였죠.”

    성 원장의 고향은 경기도 용인시. 번창하던 의류사업을 접고 1968년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제주 사람들에게 ‘두루외, 낭이 밥 멕여주나(미친놈, 나무가 밥 먹여주나)’라는 소리를 듣고 숱한 고난도 겪었다.

    “이젠 제주가 고향이라고 말해요. 제주의 햇살, 바람, 비, 구름에 사람의 손길을 더한 것에 지나지 않죠. 이곳에서 자연의 섭리를 느끼며 평화를 안고 가길 바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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