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7

2008.08.05

도시에 순응한 야생 끊임없는 영역 전쟁

왕성한 번식력 탓 잡아도 잡아도 여전히 도심 활보

  • 입력2008-07-29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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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 순응한 야생 끊임없는 영역 전쟁
    내가 사는 동네는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서울 동북부의 분지다. 산비탈을 비껴서 가라앉은 된바람이 겨우내 매섭다.

    “출근하기 싫은 날, 아침까지 늘어져 자는 고양이를 보면 부럽다 못해 억울하다”고 누군가 말했다. 지난 겨울,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기 싫은, 칼바람이 부는 날마다 아내에게 “음식물 수거통에 늘어져 앉은 고양이를 보면 무섭다 못해 떨린다”고 둘러댔다.

    음식물 수거통에 터를 잡은 녀석의 이름은 ‘센놈’. 거슴츠레한 눈으로 사위를 쏘아보는 수컷을 나와 아내는 그렇게 불렀다.

    녀석이 언제 흘레붙었는지 알 수 없으나 벚꽃이 흐드러질 때 녀석의 식구는 넷으로 늘었다. 낭묘(郎猫)와 여묘(女猫), 그리고 갓 태어난 쌍둥이가 양지바른 음식물 수거통 주변을 배회했다.

    센놈은 쓰레기봉투를 긁어 파서 뒤집어 흩거나, 음식물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다. 배수구에 터를 잡은 쥐를 잡아먹기도 했을 것이다. 녀석들에게 비극이 찾아온 것은 벚꽃이 쇠하고 신록이 나올 때다. 그즈음 ‘악명 높은’ 까치(‘주간동아’ 584호 동물탐험 ① 까치-‘이 죽일 놈들아, 함께 살자’ 제하 기사 참조)가 음식물 수거통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쓰레기봉투 긁어 파내거나 음식물 부스러기 주워 먹어

    나는 봤다. 고양이와 까치가 싸우는 장면을. 고양이는 싸울 때 뒷다리로 버티고 선 채 두 앞발로 가격하는데, 궁지에 몰린 녀석은 까치를 때리거나 물지 못했다. 센놈은 그날부터 ‘비실한놈’이라 불렸고 그 뒤 나는 녀석을 보지 못했다. 2주 뒤 음식물 수거통에서 50m쯤 떨어진 아파트단지의 후미진 곳(정확하게 102호 발코니 밑)에서 쌍둥이를 봤는데, 30cm 간격으로 누운 두 녀석은 싸늘했다. 야묘(野猫)를 애비로 둔 탓에 호강은커녕 쓰레기만 뒤지다 요절한 것이다.

    수년 전 여름, 내가 사는 동네에선 고양이 사냥이 벌어졌다. “학살에 가까운 무차별적 고양이 포획을 중단하라!”는 동물보호단체의 외침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놓은 ‘고양이 일제 포획 기간’이라는 표현이 조금 웃겼을 뿐.

    멕시칸치킨과 통덫으로 무장하고 밤마다 동네를 배회하던 ‘전문가’들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내가 “붙잡은 고양이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전문가’는 “안락사하거나 연구용으로 기증한다”며 웃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솜씨는 형편없었다. ‘고양이 일제 포획 기간’에 몇 마리가 잡혔는지 모르겠으나 녀석들이 모습을 감춘 건 그때뿐이었다. 낭묘와 여묘가 흘레붙을 때 질러대는 괴성은 날카로운데, ‘전문가’들이 떠나자 그 괴성이 다시 울렸다.

    녀석들은 식육목 고양잇과의 포유류다. 속이 좋지 않을 때는 풀도 씹는다. ‘계림유사’에선 ‘귀니(鬼尼)’라고 일컬었으며 ‘고내’ ‘고이’ ‘살칭이’라고도 불렸다. 애완용으로 사육되는 고양이는 지구에 2억 마리가 넘는다. 서울의 길고양이는 30만 마리로 추정되는데 ‘집 나온 고양이’는 소수다. ‘아버지들의 아버지’ 때 도심에 적응한 녀석들은 ‘먹이’와 ‘섹스’를 얻고자 영역 다툼을 벌이면서 대(代)를 잇는다. 길고양이(배회고양이, 도둑고양이라고도 부른다) 암컷은 1년에 두세 차례 새끼를 낳을 만큼 번식력이 좋다. 부모에게서 독립한 뒤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녀석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까치에게 쫓겨난 뒤 새 영역을 갖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센놈 가족’처럼.

    도시에 순응한 야생 끊임없는 영역 전쟁

    경기 과천시 주택가의 고양이(왼쪽). 가축병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기다리는 고양이.

    사람 처지에서 고양이를 잡아 죽이는 일은 미련한 짓이다. ‘생물이 생물을 죽이는 야만적 행위’라는 주장을 차치하더라도 그 실효성이 낮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를 떼로 포획하더라도 ‘전문가’들이 떠나자마자 주인 없는 영역을 젊은 녀석이 새롭게 차지한 뒤 DNA를 퍼뜨리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고양이의 개체 수는 거의 그대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냈다. 아래는 내 친구가 사는 동네에 지금 붙은 공고문이다.

    포획한 뒤 중성화해 방사하는 전략까지 등장

    도시에 순응한 야생 끊임없는 영역 전쟁
    서울시는 최근 길고양이를 포획(trap)해 중성화(neuter)한 뒤 방사(return)하기로 했다. 낭묘는 정관을 자르거나 고환을 떼어내고 여묘는 난소를 제거한 뒤 살던 곳에서 그대로 살게끔 하는데, 성불능화엔 수컷 5만∼10만원, 암컷 15만∼20만원의 시술비가 든다. 그런데 이 방법으로도 ‘길고양이를 꺼리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거세된 녀석들은 사람을 잘 따르는 데다 온순하다. ‘센 놈’이 ‘비실한 놈’으로 바뀌는 셈이다. 따라서 혈기왕성한 뉴 페이스와의 영역 다툼에서 그가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사람의 ‘눈에 띄는’ 낭묘는 센 놈들이다. 길고양이가 사람 근처에서 사는 이유는 환경이 좋아서인데, 강한 녀석들이 사람과 ‘함께 살고’ 약한 녀석들은 후미진 곳으로 밀려난다. ‘사람과 고양이의 타협점’ ‘인도주의를 가장한 야만행위’라는 엇갈린 평가를 듣는 TNR(trap, neuter, return)가 DNA를 퍼뜨리고자 지구에 둥지를 튼 생물의 섭리를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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