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3

2008.07.08

패션과 과학 사이 ‘빤스의 진화’

속옷 위생상 착용은 ‘옛말’ … 취향 따라 스타일 살리고 기능성으로 몸 만들고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8-06-30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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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과 과학 사이 ‘빤스의 진화’
    “난거의 짝짝이로 입는데….” “세상에, 어떻게 속옷을 짝짝이로 입니?” “야, 그걸 어떻게 매번 맞춰 입냐?” -영화 ‘어깨 너머의 연인’ 중에서

    지난해 가을 개봉한‘어깨 너머의 연인’에서 등장인물의 속옷은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였다. 단순한 색, 모양을 좋아하고 브래지어와 팬티 짝 맞추기는 가뿐히 무시할 만큼 속옷에 무심한 여성과 형형색색 레이스 장식의 속옷을 위아래로 꼭 짝을 맞춰 입어야 하는 여성은 속옷 취향 하나만으로도 전체 캐릭터가 설명된다(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방부 ‘브레이브맨’팬티와 허리 밴드에 로고가 큼지막이 드러나는 수입 팬티는 착용자의 생활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이제 속옷은 위생상(또는 예의상) 갖춰 입고, 드러나지 않게 감춰야 하는 내의(內衣) 이상의 것, 즉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이 됐다.

    대학원생 최모(28) 씨는 속옷 마니아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그는 겉옷이나 액세서리 쇼핑 못지않게 속옷 쇼핑을 즐긴다. 한 달에 한두 번 백화점 란제리 코너나 멀티숍을 이용해 구입하기도 하지만 “브랜드 가치가 있고 특별한 속옷을 사기 위해” 해외 사이트도 뒤적인다. 그렇다고 속옷을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만족에 가깝다.

    “마음에 드는 속옷을 입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자신감도 붙는 것 같다”는 최씨는 “비싼 속옷은 10만원이 넘기도 하지만 겉옷이나 액세서리와 비교해 가격 대비 만족감이 크다”고 말한다.



    디자인 경쟁 치열 … 해외 브랜드들도 가세

    패션과 과학 사이 ‘빤스의 진화’
    속옷에 대한 소비자의 이런 관심은 업계 종사자들도 실감하는 변화다. 게다가 속옷 같은 겉옷(란제리 룩)과 겉옷 같은 속옷이 혼용되는 지금의 트렌드에서 속옷은 어느 때보다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아이템이다.

    올해로 속옷 디자이너 18년차인 ‘비비안’의 우연실 디자인 실장은 ‘속옷은 그저 속옷일 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1990년대 초 입사한 뒤 국내 속옷시장의 급속한 변화를 최전선에서 겪었다.

    “2000년 전후로 속옷 브랜드가 많이 생겨났고, 이때부터 속옷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어요. 현재 속옷 디자인은 봉제선을 없애는 등 마치 속옷을 안 입은 듯 단순하게 만드는 것과 일부러 겉옷과 어울려 도드라지게끔 스타일을 살린 것으로 양분화돼 있죠.”

    업체 관계자들은 “속옷이 소비자의 구미를 맞추기가 까다로운 제품군에 속한다”고 말한다. 신체에 밀착되는 의류인 만큼 기능에 대한 불만도 많고 반품률도 높다.

    하지만 속옷은 생필품처럼 꾸준히 일정량 이상 판매되는 아이템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기적으로 속옷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속옷업체에서 추정하는 속옷 구매주기는 3~6개월(브래지어 기준). “유행을 타는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되면서부터 구매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 때문인지 속옷시장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고 새로운 업체가 문을 두드린다. 특히 최근에는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다양한 가격대를 앞세운 수입 속옷이 대거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수입 속옷은 CK가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올해에만 ‘디젤’ ‘엠포리오아르마니’ ‘제냐’가 론칭했거나 준비 중이며, ‘버버리’ ‘에스프리’ ‘리바이스’ ‘빅토리아 시크릿’의 국내 진출도 점쳐지고 있다. 국내 속옷시장에서 수입 속옷은 연간 약 800억원 규모로, 아직은 전체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홈쇼핑 시장은 2000억원대로 규모가 큰 편이다. 1998년부터 시작된 홈쇼핑 속옷시장에는 현재 20여 개 속옷 브랜드가 몰려들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이혜영의 ‘미싱도로시’, 황신혜의 ‘엘리프리’처럼 연예인 이름을 앞세운 브랜드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롯데홈쇼핑의 정영미 수석 MD는 “여성 속옷은 홈쇼핑 채널의 스테디셀러인 데다 속옷방송 자체가 시청자의 관심을 사로잡는 기능도 한다”고 말한다. 또한 “속옷 방송은 ‘자극적’일수록 판매율이 오르는 편인데 예전에는 물쇼, 불쇼, 피아노에서 뒹굴기, 공중에서 줄타기까지 했다면 요즘엔 세련된 클럽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 대세”라고 설명했다. 단, 오전 6시에서 밤 10시 사이에는 방송심의가 강화돼 오전 방송에는 마네킹, 심야 방송에는 실제 모델이 등장한다는 차이가 있다.

    또 란제리 류는 예쁜 장면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반면, 주부층을 겨냥한 보정속옷은 상황 신(바지가 꽉 조이거나 날씬한 친구에게 기죽는 사례 등)과 수다가 많은 편이다.

    남성용 망사·레이스·T팬티까지 등장

    패션과 과학 사이 ‘빤스의 진화’

    키스 리퍼블릭의 란제리쇼(왼쪽). 홈쇼핑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속옷 브랜드로 성공을 거둔 이혜영.

    현재 속옷시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1조2000억~1조3000억원의 국내시장 규모가 지난 몇 년간 계속 유지되는 상황에서, 수입업체 및 신생업체가 우후죽순 증가하는 현상을 과열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들은 얼마 전 주병진 씨가 ‘좋은사람들’의 경영에서 손을 뗀 이유 가운데 하나로 ‘포화상태의 시장’을 꼽았다.

    그럼에도 패션성을 강조한 속옷, 특히 남성 속옷시장의 성장세가 점점 커질 것이라는 예측은 계속 나오고 있다. 한 예로, 롯데백화점의 속옷 관련 매장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15% 정도 늘었다. 롯데백화점 측은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한때 백화점 한쪽에 있던 속옷 매장을 백화점 한가운데로 옮겼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일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영향 때문인지 남성 역시 속옷을 패션 아이템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최근의 (속옷) 매출 신장은 남성용 브랜드 속옷의 판매 증가가 기여한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속옷 트렌드에서 남성 속옷의 변화와 시장 확대는 급격하다. 원색과 파스텔 톤 속옷이 등장했음은 물론, 드로어즈 스타일(트렁크 스타일이면서도 피부에 달라붙는 팬티) 등 겉옷 맵시를 살려주는 기능성 속옷도 인기다. 나아가 망사팬티, 꽃자수 레이스 팬티, 남성용 T팬티 등 여성 속옷과 유사한 다자인의 제품도 많다.

    외양 못지않게 기능성을 강조한 속옷도 많아지고 있다. 배를 조이는 니퍼, 근육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가슴 패드, 엉덩이를 살리는 히프업 팬티 등 남성용 기능성 보정속옷도 다양한 종류가 시판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남성성을 부각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팬티 앞쪽에 고무밴드를 부착한 일명 ‘뽕팬티’도 등장해 화제가 됐다.

    CK언더웨어의 홍명희 대리는 “그동안 남성 속옷의 구매자는 주로 여성이었지만 최근 직접 자신의 속옷을 사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여성 속옷처럼 남성 속옷도 디자인과 함께 기능도 계속해서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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