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3

2008.07.08

‘권력 단맛’ 보거나 ‘귀 쫑긋’ 세우거나

MB 창업공신 100인 중 상당수가 요직 차지 … 시간 지날수록 ‘흐림’과 ‘비’ 소식 엇갈린 운명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8-06-30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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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 단맛’ 보거나 ‘귀 쫑긋’ 세우거나

    강만수,강승규,곽승준,권택기,김백준,김원용,김진홍,김형오,김희중,박영준,박형준,정두언(왼쪽부터).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standing small Besides the victory That’s her destiny. 승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한다네 패자는 그 옆에 왜소하게 서 있네 그것이 패자의 운명.

    도덕군자로 살아오지 않았음에도 대통령에 오른 사나이가 도덕성 검증의 위기를 넘어서는 과정을 미화 없이 그린 책 ‘이명박, 절박의 정직’(월간 ‘신동아’ 허만섭 기자 지음)은 그룹 아바의 팝송 ‘더 위너 테이크스 잇 올’의 한 대목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승자독식(勝者獨食)

    ‘권력 단맛’ 보거나 ‘귀 쫑긋’ 세우거나
    한국의 대통령선거(이하 대선)는 그동안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 특성을 보였다. 승자독식은 기업의 생리이기도 하다. 지난해엔 기업에서 ‘The winner takes it all’을 체득한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후보가 무승부도 은메달도 없는 게임에서 승리했다.

    대선은 참모가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인사들은 “이광재와 안희정에게 졌다”고 자인한 바 있다. 정두언 의원과 박영준 전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은 2007년 대선 때 이광재 의원, 안희정 씨 못지않은 구실을 했다.



    “정두언 의원과 유승민 의원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지금은 ‘넘버2’라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정 의원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직에 오르면 유 의원이 다칠 가능성이 높다. 한번 지켜보라.”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4·9 총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최구식 의원은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후보 다툼’이 한창일 때 이렇게 말했다. 그의 예측대로 여권 내 헤게모니 다툼에서 정 의원은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The winner takes it all’의 게임에 발을 담근 참모들은 또 다른 ‘권력 다툼’을 벌이게 마련이다. 역대 정권을 톺아보면 권력의 단맛을 즐기다 낙마하거나, 정권을 배신해 소나기를 맞은 ‘대선 공신’이 적지 않다. 권력 함수에 따라 연대와 대립의 줄타기가 벌어지면서 부침이 일어난 것이다.

    민주당 부대변인/ 1961년생/ 한양대 졸업/ 이회창 저격수/ 한나라당으로부터 13회에 걸쳐 피고소·피고발/ 명예훼손 관련해 총 5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당함.

    2003년 1월 ‘주간동아’가 기획, 선정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100인’에 오른 민주당 장전형 전 대변인의 이력은 상처투성이다. 그는 당시 “정권 재창출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드러내면서 “상처가 자랑스럽다”며 흐뭇해했다.

    그러나 장 전 대변인은 권력에 연착륙하지 못하면서 쓴잔을 들이켜야 했다. 2004년 3월, 민주당 소속이던 그는 열린우리당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전남 강진군수 선거가 있던 그해 9월 열린우리당은 또 한 번 장 전 대변인을 고소해 피소 이력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줬다.

    그가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아들 정연 씨를 ‘인간 육포’에 비유한 것은 ‘촌철살인’이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는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으로 옷을 바꿔 입고 출사표를 던졌음에도 공천을 받지 못했다.

    장 전 대변인의 사례는 권력 다툼의 비정함을 일깨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추미애 의원의 갈등, 결별도 예상치 못한 일이 아니었던가. 하나같이 희망을 노래하던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100인’의 오늘은 엇갈린다. 개중엔 교도소 담장을 기웃거린 이들도 적지 않다.

    대선이 끝난 뒤 새로운 파워엘리트가 등장하고 주류와 비주류가 자리를 바꾸는 과정은 또 다른 승자독식의 게임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100인’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100인’의 전철을 밟고 있지는 않을까?

    ‘권력 단맛’ 보거나 ‘귀 쫑긋’ 세우거나
    올해 ‘주간동아’ 신년호(617호)는 ‘MB시대 파워엘리트 150人’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근접이론을 참조해 ‘1m 그룹’ ‘10m 그룹’ ‘50m 그룹’으로 100명을 고르고 ‘100m’ 그룹에 50명을 추가했다. 이 대통령과의 근접도가 50m 안에 든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100인 가운데 교도소 담을 넘은 이는 아직 없다. 이 대통령과의 연(緣)을 후회하며 ‘귀 막고, 눈 감고’ 살아가는 이도 아직 없다. 100인 가운데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권력의 향배에 귀를 쫑긋 세운 채 주판알을 튕기며 ‘나아갈 때’를 기다린다.

    6월2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으로 임명된 김대식 전 동서대 교수는 ‘하마평의 남자’로 불렸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해 대선 때 박영준 전 비서관과 함께 이명박 당시 후보의 외곽 캠프이던 선진국민연대를 이끌었지만 한동안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그가 호남 출신인 데다 치밀하면서도 호방한 성격을 지녀 아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사회정책 수석비서관’ 등으로 거론만 됐을 뿐 결국 권력의 후미진 곳을 차지했다. 그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으로 임명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하마평 기사에 이름을 가장 많이 올린 사람은 아마도 나일 것이다. 나는 자리엔 욕심 없다. 그저 이 대통령의 성공을 바랄 뿐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과정에 진학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볼 생각도 갖고 있다.”

    쿨~하게 말했으나 그의 표정엔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 인수위원으로 참여했을 때만 해도 그의 위상은 커 보였다. 김 사무처장처럼 인수위 때 방귀깨나 뀌다가 바람을 이루지 못한 인사는 한둘이 아니다.

    물론 100인 가운데 상당수가 파워엘리트의 신분으로 권력 핵심부에 진입했다. 박형준 대통령홍보기획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김백준 총무비서관 등 17명이 청와대에서 녹을 먹었거나 먹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 신재민 문화부 차관 등은 정부에 터를 잡았다. BBK 관련 소송에서 이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일한 김재수 변호사는 LA 총영사로 임명돼 미국으로 떠났으며, 박대원 전 알제리 대사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총재로 일하고 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권력 단맛’ 보거나 ‘귀 쫑긋’ 세우거나

    *이 표는 청와대 비서진 개편이 완료되기 이전에 작성됐음.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곽승준 전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 추부길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 남주홍 전 통일부 장관 내정자, 박영준 전 비서관 등 벌써 쓴잔을 들이켜고 권토중래를 노리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 전 비서관이 정 의원과의 헤게모니 다툼 과정에서 낙마한 뒤 언론이 그를 다루자 청와대에선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입에 담기 거북한 수사가 흘러나왔다. 왕조시대의 단어가 회자될 만큼 ‘권력 다툼’은 냉혹하다.

    “내 나이 오십줄을 바라보는데 청와대 5급 행정관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 나는 발바닥에 땀이 배도록 MB를 위해 뛰었다.”

    ‘이명박 후보’ 시절 외곽캠프에서 일한 A씨는 “MB 측근들이 인사를 만사로 만들면서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관으로 청와대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거절한 그는 “정치엔 더 이상 관심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노무현 정부 때 김상현 전 의원도 그랬다. 후배(노 전 대통령)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긴 그는 뒤꼍으로 스러졌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서…. 100명 중에서도 이 대통령과의 연을 후회하며 ‘귀 막고, 눈 감고’ 사는 인사가 나타날 것이다. 18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B 전 의원은 “MB가 정치를 잘 모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장(場)이 섰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 발을 담갔고 지금은 공기업 감사직을 노리는 L씨는 달떠 있다. 공기업 임원의 대폭 교체가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이다. 대선 때 그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외곽캠프에서 일했다.

    “대선 때 기여한 바가 없으면서도 줄을 대려는 사람들도 많다. 겨드랑이에 쉰내가 나도록 뛴 사람들의 상당수가 공기업 진출을 바라고 있다.”

    100인 가운데 공기업, 공공기관에 둥지를 튼 인사는 아직 5명에 그친다(6월26일 현재). 박대원 총재, 구본홍 YTN 사장 내정자, 양휘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윤진식 한국금융지주 회장, 이태규 KT 전문임원(전무급)이 그들이다. 공기업, 공공기관의 주류 교체 흐름이 더딘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들의 임기가 법으로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이성권 전 의원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감사로 사실상 내정됐으며, 김인규 전 KBS 이사는 정연주 사장의 후임으로 거론된다. 공기업 사장직을 두고 100인들끼리 다투기도 했는데, 이명박 캠프에서 홍보 전략 브레인으로 일한 이철영 홍익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직에 지원했다가 양 사장에게 고배를 마셨다. 유권자 처지에선 ‘코드인사’라는 ‘노무현 대못’이 뽑힌 자리에 ‘보은인사’라는 ‘이명박 대못’을 박는 것은 아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100인에 포함됐다가 낙천 또는 낙선한 인사들은 2라운드를 준비 중이다. 박희태 전 의원은 당 대표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김덕룡 전 의원은 대통령정치특보로 이름이 거론됐다. 18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갑 선거구에 출마했다 낙선한 김해수 씨는 정무비서관에 내정됐으며, 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광원 전 의원은 마사회와 농촌공사 사장, 이방호 전 의원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설이 나돌았다. 개중엔 당사자가 자가 발전한 예도 없지 않다.

    100인의 현재 기상도는 대체로 맑다. 그러나 승자독식의 게임이 끝난 지 6개월여가 흘렀을 뿐이다. 역대 정권이 그러했듯 시간이 흐를수록 ‘흐림’과 ‘비’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100인의 출신이 다양한 만큼 반목, 갈등, 알력도 불가피해 보인다. 100인 가운데 수년 뒤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온몸으로 막아낼 ‘제2의 장세동’ ‘제2의 박지원’은 과연 누가 될까? 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거나 날을 세우는 ‘제2의 추미애’ ‘제2의 정동영’도 등장할까? 아직은 ‘The winner takes it all’을 흥얼거리게 만드는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100인’의 기상도를 ‘표’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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