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9

2008.06.10

여자배구 몰락 아, 옛날이여!

베이징올림픽 예선 탈락 아시아 2류로 전락 선수·구단·연맹 인식 전환 없인 공멸

  • 박미희 전 여자배구 국가대표, 현 KBS N 배구해설위원 piao0224@hanmail.net

    입력2008-06-02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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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배구 최종예선전에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졸전 끝에 올림픽 본선 티켓을 놓쳤다. 이번 최종예선전을 앞두고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선배로서, 그리고 TV 해설자로서 베이징행(行)이 험난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막상 티켓을 놓치고 나니 참담함이 가슴을 친다. 이번 최종예선전에서 만난 도미니카 폴란드 카자흐스탄 태국 푸에르토리코 등은 예전 같으면 우리 여자배구팀을 감히 넘보지도 못했다. 그런 팀들이 아예 우리를 승리의 제물로 삼은 듯 치열히 덤벼드는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서글픔마저 들었다.

    1984년과 88년 올림픽 대표선수로 뛴 필자는 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이 가져올 파장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기에 걱정이 앞선다. 이번 대표팀이 구성되기까지 전후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 애써 이해하고 싶지만, 배구팬들의 허탈감을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도 든다.

    1976년 우리 여자배구팀은 한국 올림픽 역사상 구기 종목으론 최초로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올림픽에 단골손님격으로 출전해 세계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런 대표선수들이 이번엔 팬들에게 자부심과 사명감보다 지치고 애처로운 모습만 보여준 것 같다. 여자배구팀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가 국내 배구계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1976년 한국 올림픽 역사상 구기종목 첫 메달



    우리 여자배구가 팬들에게 깊은 실망을 안겨준 것은 대한배구협회, 프로배구연맹, 구단 및 선수들의 이기주의와 소통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변변한 국제대회 하나 개최하지 못하는 배구협회나 선수 보호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프로연맹의 안일한 사고가 결국 참담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한편으론 ‘우리 팀만 승리하면 된다’는 구단과 선수의 이기적인 태도 역시 악재로 작용했다. 주공격수로 뛰어야 할 스타급 선수들은 이런저런 구실과 핑계를 대며 어떻게 해서든 대표팀에서 빠지려 했다. 실제 억대 몸값으로 주목받는 선수들 대부분이 부상 등의 이유를 들어 일본 원정에 나서지 않았다. 덩달아 소속 구단도 올림픽 진출이라는 당면 과제를 무시한 채 자기 선수 챙기기에 급급했다.

    개인적으로, 각 선수나 팀이 팬들에 대한 의무감과 배구 중흥이라는 사명감을 생각해 한발씩 양보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필자나 다른 배구인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자체만으로도 벅찼던 필자의 현역시절이 이미 구세대의 추억거리가 돼버렸다는 자괴감에 마음이 무겁다.

    반면 일본은 무척이나 달랐다. 이번에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한 일본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 직후 장기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이를 착실하게 진행시켜 당당하게 목표를 이뤘다. 일본 여자배구팀은 주요 대회 때마다 번번이 우리나라 팀에게 당했다. 그러나 2004 아테네올림픽 예선에서 0대 3으로 패한 이후 치러진 10여 차례의 경기에선 우리에게 전승을 거뒀다. 이번 최종예선전에서도 3대 1로 완승했을 만큼 이제는 실력 면에서 한국을 뛰어넘었다.

    ‘우물 안 개구리’식 자기최면서 탈피해야

    이번 일본 원정에 온갖 구실을 만들어 선수 차출을 저지한 구단, 그리고 배구협회와 프로연맹 등이 이젠 여자배구 중흥을 위한 묘안 짜내기에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한국 배구가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그대로 국내 배구 붐으로 이어지는 ‘나비효과’를 구단들이 제대로 인식했으면 한다. 2007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자배구가 우승해 프로 V리그까지 대성황을 이뤘던 사실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따지고 보면 많은 돈을 들여 팀을 운영하는 구단만 탓할 일은 아니다. 배구협회나 프로연맹도 뒷짐만 질 게 아니라 선수가 상품이고 팬들이 고객이라는 경영논리부터 가져야 한다. 좋은 상품을 만들고 아끼는 마음으로, 선수들을 보호하고 구단을 이해하는 열린 자세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선수들도 프로 출범이라는 환경 변화에 맞춰 철저한 프로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1970~80년대 국내 스포츠선수들은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프로가 출범한 지금은 선수들에게 철저한 프로정신까지 요구된다.

    외모에나 신경 쓰고 연봉 액수만 따지는 것은 진정한 프로의 모습이 아니다. 프로선수에게는 경기력이 곧 상품의 질이다. 그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 더불어 팬들에게 받은 인기, 명예, 부를 다시 팬들에게 돌려준다는 차원에서 국가 대표선수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프로선수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필자는 배구인이지만 야구와 축구를 부러워한다. 미국 메이저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박찬호 박지성 선수가 흔쾌히 대표팀에 합류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은근히 질투심마저 든다.

    우리 여자배구는 세계 여자배구의 흐름에서 더 이상 밀릴 곳이 없는 낭떠러지에 서 있다. 아시아에서도 2류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그동안 국내 배구계가 ‘우물 안 개구리’식 자기최면에 걸려 있던 결과가 이번에 나타난 건 아닌지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 여자배구팀의 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라이벌인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 모두 2012년 올림픽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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