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4

2008.05.06

중국에 넘어가는 ‘北韓의 자원주권’

中, 석유·석탄 등 확보 신조선전략 가동 … 남북관계 경색 북한의 중국 쏠림 가속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8-04-28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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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 넘어가는 ‘北韓의 자원주권’

    중국 노동자들이 탄광에서 석탄을 캐고 있다. 동북3성의 지하자원은 고갈되고 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북한을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두고자 역사적·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는 작업이라면,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중조일치(中朝一致·북한을 중국화한다는 뜻)’는 전통적으로 민족주의 정서가 강한 북한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액션 플랜(action plan)이다.

    중국이 중조일치로 대표되는 ‘신조선전략’을 수립한 때는 2004년. 구체적으로 공개된 바 없으며 비밀리에 작성된 이 전략은 중국 공산당의 북한 담당 조직과 연구소가 총망라해 입안됐는데, 동북3성과 북한을 하나로 묶어 개발한다는 게 골자다.

    중국은 신조선전략을 바탕으로 50억 달러의 대북 경협자금을 준비해놓고 북한을 설득하면서 집행 시기를 저울질해왔다. 중조(中朝)경협을 토대로 북한의 전 분야를 중국과 일치화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 전략을 토대로 북한의 지하자원 접수에도 나섰다.

    중국에 넘어가는 ‘北韓의 자원주권’
    서한만 유전개발 英 회사와 협정 파기

    2004년 중국 해양석유총공사는 황해(黃海)의 보하이만(渤海灣) 대륙붕에서 유전을 발견했다. 그런데 경제성 높은 유전은 북한 영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그 뒤로 석유개발을 둘러싼 북한과 중국의 줄다리기는 양국 관계의 핵심 이슈였다.



    석유를 포함한 북한의 지하자원 획득은 중국이 ‘실행 중’인 신조선전략의 구체적 목표 가운데 하나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서구의 석유전문가들은 보하이만과 대륙붕을 공유하는 북한의 서한만에 50억~43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북한은 독자적으로 유전개발에 나설 능력이 없으며, 중국으로의 경제적 예속화도 두려워했다. 그래서 유럽 기업을 끌어들여 유전을 개발하고자 했다. 2004년 9월 북한과 탐사·개발협정을 맺은 영국 석유회사 아미넥스(Aminex)가 대표적이다.

    복수의 정보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아미넥스와 맺은 협정을 파기했다고 한다. 북한 국가자원개발지도국 김철수 부국장은 지난해 11월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원탐사에 관해선 다른 나라와 일절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은 남포 앞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중국과 북한이 ‘해상 석유 공동개발 협정’이라는 ‘정부간’ 문서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경쟁자가 없어진 가운데 중국이 목표대로 서한만의 유전을 북한과 나눠 쓰는 일이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북한을 상대로 한 중국의 중조일치 전략은 광범위하게 실행되고 있다. 공산당-노동당, 인민해방군-조선인민군, 지방정부-지방정부, 내각 부처-내각 부처 식으로 중국은 북한에 다가서고 있다. 각 섹터별로 면대면(face to face) 접근도 활발하다. 이와 맞물려 지하자원 획득도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중국은 아시아 최대 노천광산인 함경북도 무산철광에서 철광석을 가져간다. 중국은 무산철광에서 50년간 매년 철광석 1000만t을 반출할 수 있는 사용권을 확보했다고 한다. 중국 지린성(吉林省)은 함경북도와 계약을 맺고 부족한 지하자원을 공급받고 있다. 함경북도 샛별탄광의 석탄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중국에 전기도 공급하는데, 중국이 북한의 수력발전 사업에 참여하면서 싼값에 전기를 구입해가는 것이다. 압록강의 수풍발전소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된다.

    무연탄 국제시세 3분의 1 ‘우호 가격’ 판매

    ‘주간동아’가 중국 해관총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에 ‘우호 가격’으로 지하자원을 판다. 북한은 국제시세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무연탄을 수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외부와의 교역이 막혀 있는 북한에게 중국이 ‘수요독점’ 시장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이 북한의 탄광에 설비를 제공하거나 투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의 대(對)북한 투자액 가운데 70%가 지하자원과 관련돼 있다. 북한 사람들은 북한 지하자원의 상징격인 마그네사이트 광산을 백금산(白金山)이라 부를 만큼 ‘자원주권’을 강조해왔다. 그런 북한이 중국에 ‘대문’을 열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지하자원을 가져가는 방식은 크게 세 갈래다. △계약형 △설비지원형 △인프라투자형이 그것이다.

    지린성이 샛별탄광에서 무연탄을 가져가는 방식은 계약형이다. 중국이 북한과 계약을 맺고 지하자원을 수입해 한국에 수출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중국→한국을 거치는 과정에서 중국이 ‘거간료’를 챙기는 것이다. 물물교환 형식으로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은데, 지하자원을 가져가는 대신 공산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설비지원형은 설비를 지원하고 채굴권을 얻는 방식이다. 해관총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채굴 설비가 대규모로 북한에 반입되고 있다. 단둥(丹東)의 한 대북사업가는 “마광기 선광기 굴착기가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인프라투자형은 개발을 지원하고 20~50년의 사용권을 획득하는 방식이다. 중국은 서한만의 유전도 이 같은 방식으로 개발하고자 한다. 중국이 준비해놓은 대북 경협자금의 상당 부분이 인프라를 제공하고 이권(利權)을 따내는 데 쓰이리라는 분석이다. 중국의 무연탄 몰리브덴 텅스텐 광산은 매장량이 고갈되고 있다. 부족한 물량을 북한에서 벌충하겠다는 게 중국의 의도다.

    북한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우라늄 매장량을 자랑한다.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가 늘면서 우라늄 값은 최근 4년간 10배 넘게 올랐다. 중국은 북한의 우라늄광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대만 자본을 끌어들여 북한의 몰리브덴광을 개발해 이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인프라투자형은 중조일치 전략의 한 축으로, 계약형이나 설비지원형으로 광물자원을 확보하는 것과는 ‘격’이 다르다. 기술과 설비를 빌려주고 단기간의 채굴권을 얻거나 지하자원을 저렴한 값에 수입하는 수준을 넘어 장기간의 사용권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원개발은 ‘신뢰’가 필수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10·4공동선언 5항엔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를 장려하고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을 적극 추진하며, 민족 내부 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의 신조선전략은 2006년 1월 김 위원장의 방중(訪中) 때까지 탄력을 받았다가 ‘2, 3월 사건’(2006년 2, 3월 중국 스파이가 북한의 정보를 취득하다가 북한 정권에 발각된 일)이 터지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즈음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2006년 7월의 미사일 시험발사 때도 북한은 “우리는 쏜다”는 식으로만 중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액션 플랜’이 최근 활발하게 가동되는 데는 남북관계 경색과 한·미·일의 군사공조 강화 움직임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중국의 대(對)조선전략을 받아들이리라는 우려 또한 거세다. 김 위원장이 중국 방문을 결심했다는 관측도 나오는데, 한미 정상회담을 ‘조중 정상회담’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여긴다고 한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양이 서울에 손을 내밀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북소식통들의 예측이다.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차치하더라도 신조선전략은 북한의 중국 예속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 앞서 언급했듯 신조선전략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중국에 일치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한국은 광물자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기업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용 측면에서라도 북한과의 내교(內交)는 중요하다. 닻이 풀린 북한이라는 배가 중국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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