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4

2008.02.26

오래된 동양화 논쟁 ‘관념 vs 사실’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입력2008-02-20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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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동양화 논쟁 ‘관념 vs 사실’

    안견의 ‘몽유도원도’

    동양미술에서는 대상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것을 형사(形似)라고 하고, 화가의 주관적 의사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사의(寫意)라고 한다. 송나라 주휘는 ‘청파잡지’라는 글에서 미원장이 소의 눈동자 속에 목동이 있나, 없나를 통해 진본과 가짜본을 판가름했다. 그림의 일차적 성격은 ‘묘사적 사실’에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예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우선 대상의 실제를 잘 그린다는 걸 뜻했다. 다시 말해 형사 대 사의는 서양미술의 추상 대 재현의 양대 개념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그것이 형사의 사실주의든 사의의 관념주의든 일단 대상의 실제 모습을 잘 그려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었다.

    유홍준 교수(영남대)의 ‘조선시대 화론연구’(학고재)에 따르면, 동양화는 애초 대상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형사론(사실론)이 대세이다 4세기 말 중국의 고개지가 최초로 주장한 ‘전신론(傳神論·사의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연적인 먹의 퍼짐과 농담, 사물을 간략·변형화하는 자율성이 생겨나고, 당나라 말기에는 골기(骨氣)라는 용어가 생겨나 화가의 인격이나 마음가짐을 중요시하기 시작한다. 바로 문인화가의 탄생이다. 심지어 11세기 후반 곽약허는 그림의 기교는 후천적으로 배울 수 있지만 골기는 선천적 자질이라고 말했다. 화가의 신분에 따라 문인화가와 전문 직업화가의 그림도 구별되면서, 사대부지만 아마추어 화가인 문인(文人)이 인품과 학덕을 겸비했기 때문에 문인화가 기량이 뛰어난 직업화가의 작품보다도 낫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전신론 대 사실론의 논쟁이 어느 순간 전신론의 승리로 끝난 것은 아니다.

    실재를 잘 그려야 할까, 감정을 잘 표현해야 할까

    송나라 소동파는 ‘마음속의 대나무’(태학사)에서 대나무를 그릴 때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해야 한다(成竹於胸中)”고 말했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돼왔다. 예컨대 전신론자인 조선 후기 권헌은 ‘묵매기(墨梅記)’에서 사물의 본질은 바로 그 사물에 있는 것이지만 운치를 느끼는 것은 화가에게 달려 있으므로, 우선 (화가가) 그 운치를 직관적으로 느껴 ‘마음속에 대나무’를 그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단순히 외형을 닮게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상(대나무)의 운치를 표현해야 한다고 소동파의 마음속 대나무를 해석한 것이다. 그림을 창작하고 감상하는 데서 ‘논리적인 이해’보다는 ‘주관적인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실례로 추사 김정희가 1844년,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그린 ‘세한도(歲寒圖)’는 소나무의 실제 모습보다 ‘마음속의 소나무(절개와 지조)’를 중요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신론인 셈인데, 실제 추사는 조선 후기 도화원 직업화가들이 지나치게 대상을 있는 그대로만 그리면서 그 본질적 특성(사의적 가치)을 잃고 말아 속화(俗畵) 현상이 만연했다며 사실론자들을 지탄했다.



    반면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정신이란 모습 속에 있는 것인데, 모습이 이미 같게 되지 않는다면 정신을 제대로 전해낼 수 없다”고 한다. 대상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사실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화가 변상벽(1730~?)은 ‘묘작도(猫鵲圖)’에서 고양이 그림을 ‘살아 있는 고양이처럼’ 그려 묘아(猫兒)로 불릴 정도였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도 뛰어난 사생력을 갖춘 사실주의 작품이 태반이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도 대나무를 그리면서 겉모습(형상)을 같지 않게 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다산은 자신의 외숙인 윤용의 그림에 부친 ‘발취우첩’에서 그림은 실물과 흡사하게 그려야 묘리가 정밀, 섬세, 생동적이 된다면서 독필(禿筆·몽당붓)과 수묵을 사용해 “뜻을 그리고 형을 그리지 않는(畵意不畵形)” 전신론은 대상의 본질을 드러낼 수 없다며 사실주의 입장을 옹호했다.

    물론 전신론과 사실론은 공통적으로 ‘대상의 본질(神)’이 창작과 감상의 주요 요소라고 한다. 하지만 전신론자들은 대상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형상의 사실적 묘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견해인 반면, 사실론자들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우선이라는 견해다.

    선종(禪宗)의 분파는 두 갈래다. 남종선은 한 번에 깨달음을 얻는 돈수(頓修)를, 북종선은 ‘차츰차츰’ 깨달음을 얻는 점오(漸悟)를 추구한다. 명나라 화가 동기창은 이를 차용해 문인들의 사의적(寫意的)인 산수화를 남종(南宗), 이것과 대립하는 직업화가의 형사적(形似的)인 산수화를 북종(北宗)이라 하고 남종화를 숭상하고 북종화를 배척하는 상남폄북(上南貶北) 이론을 제창했다. 이는 조선회화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조선 초기부터 중국의 산수화를 그대로 모방한 관념산수화가 풍미했다. 안견이 안평대군의 이야기를 듣고 단박에 돈오적인 깨달음을 얻어 그 ‘기운’을 담았다는 ‘몽유도원도’가 대표적인 남종화 계열의 작품이다.

    하지만 17세기 후반 겸재 정선에서 출발한 진경산수화는 중국의 관념산수화 풍에서 벗어나 조선의 산천을 독자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추구했다. 진경(眞景)이란 있는 그대로의 경치를 말하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신선이 살 만한 정도의 아름다운 곳을 가리킨다. 정선은 ‘인왕제색도’에서 험한 중국의 산천과 달리 화강암 위주의 조선 산천을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 독창적인 준법, 즉 산악과 암석 따위의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바위결을 그리는 화법을 완성했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중인이자 도화원 출신의 직업화가로 한국적인 서민 풍속화를 남겼다. 특히 단원은 ‘추수’ ‘새참’ ‘길쌈’ ‘씨름’ 등 노동하는 쟁기꾼들의 건강하고 소박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황토 바탕에 거친 필선을 사용했고, 여기에 익살스런 장면이나 표정을 보태 독자적이면서 사실론적인 예술세계를 완성했다.

    개나 말 그리는 것보다 귀신이나 도깨비 그리기가 쉽다?

    미술평론가 오주석은 ‘한국의 미 특강’(솔출판사)에서 옛 그림은 오래도록 그리고 꼼꼼히 보아야, 보기는 보는데 보이지 않는 시이불견(視而不見)과 듣기는 듣는데 들리지 않는 청이불문(聽而不聞)의 오류를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을 열고 그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대부들의 ‘골기’가 느껴진다는 남종화, 즉 전신론 계열의 문인화와 서민들이 보면서 즐거워했던 김홍도의 사실론적 그림 중 어느 그림이 더 우리들의 눈과 마음을 열어줄 수 있을까.

    제(齊)나라 왕이 어느 왕실화가에게 무엇을 그리기가 어렵냐고 물었다. 그 화가는 개나 말 같은 동물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고, 귀신이나 도깨비를 그리는 것이 가장 손쉽다고 대답했다. 한비자의 ‘외저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화가는 말이나 개처럼 형상이 있는 대상을 그리는 게 까다롭고 오히려 형상이 없는 도깨비가 ‘마음대로 상상’이 가능하기에 그리기 쉽다고 한 것이다. 그림 감상 또한 ‘없는’ 관념 세계의 골기와 ‘있는’ 사실적인 그림의 생동감 중 어느 것이 더 시이불견과 청이불문의 오류를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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