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4

2008.02.26

정치인 독서습관 편식 또는 재탕?

경제·사회 등 특정 분야 몰두하거나 읽은 책 몇 차례 반복해 읽어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2-20 14:4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정치인 독서습관 편식 또는 재탕?

    지난해 12월23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안국포럼에서 제임스 맥거리스 번스의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을 보며 향후 정국에 대해 구상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무슨 책을 주로 읽을까. 어떤 책에 감동받고, 또 어떤 책을 통해 삶과 정치에 대해 생각할까.

    지난해 대통령선거 직후 이명박 당선인이 “마음에 와닿는 책”이라며 소개한 것은 다름 아닌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지식의날개, 2006)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제임스 번스가 쓴 이 책을 읽고 있는 이 당선인의 사진이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지도자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리더십을 발휘한 ‘변혁의 정치 리더십’을 소개한 이 책은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드골, 영국의 처칠, 중국의 마오쩌둥 등을 ‘신념으로 역사를 바꾼 성공한 리더’로 평가한다.

    이 당선인은 대선 기간 내내 주로 ‘소프트’한 베스트셀러를 읽은 것으로 전해진다. ‘시크릿’ ‘맑고 향기롭게’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그것이다. 이 당선인 측의 한 인사는 “진흙탕과도 같던 대선 공간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데 아마도 이런 유의 책들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정권 인수를 준비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기 위해 늘 가벼우면서도 교훈을 줄 수 있는 책을 가까이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명박 당선인, 대선 기간에 ‘소프트’한 베스트셀러 찾아

    측근들은 특히 ‘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란 부제가 달린 ‘시크릿’(살림BIZ, 2007)은 “‘경제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 당선인의 의중을 가장 잘 드러낸 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면 된다’는 당선인의 신념과 책 내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대선 기간부터 최근까지 읽어온 책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들이다. 도덕 불감증이 팽배한 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법정 스님의 법문과 강연을 엮은 ‘산에는 꽃이 피네’(동쪽나라, 2000), 선진국들의 성장 신화에 숨겨진 역사를 보여주는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부키, 2004)가 그것이다. 정 전 장관의 한 측근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 옳지 못한 것이 대접받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점에 정 전 장관의 고민이 있다. 아마도 그런 고민과 맥을 같이하는 책들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지난 대선 기간 내내 ‘로마제국 쇠망사’ ‘명상록’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 이미 몇 번 읽은 책들임에도 애착을 갖고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정치인 독서습관 편식 또는 재탕?
    임채정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우리 시대 꼭 읽어야 하는 책’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 2007)이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로 이미 많은 독자를 확보한 장 교수가 처음으로 ‘보통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쓴 본격 교양 경제서인 이 책에는 자유무역이 진정 개발도상국에도 도움이 되는지, 경제를 개방하면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는지 등 우리 시대 현안들에 대한 ‘장하준식 해답’이 담겨 있다. 국회의장실의 한 관계자는 “의장님이 우리 경제에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정책적인 강조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미래국가 전략도 당연히 이러한 고민 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게 의장님의 생각”이라며 이 책의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임 의장의 생각은 많은 누리꾼(네티즌)들의 평가와도 맥을 같이한다.

    “부자나라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각종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미명하에 상대적으로 약하고 가난한 나라들에게 강요함으로써, 약하고 가난한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좀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점을 명쾌한 논리와 함께 사례에 기반을 둔 강력한 설득력으로 전달하는 이 책을 읽고 나니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현실에 눈뜬 느낌이라) 충격도 컸고, 후련한 마음도 들었다.”(ID ‘escrm’)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추천하는, 어디에 가든 항상 지니고 다니는 책은 프랑스 학자 자크 아탈리가 쓴 ‘미테랑 평전’이다. 프랑스 최초의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었던 미테랑의 집권 과정과 분쟁해결 과정을 학자적 시각으로 분석, 서술한 책이다. 권 의원은 “우리 역사와 민중의 삶을 큰 호흡으로 다룬 책을 많이 접하고, 당면한 문제를 공동체적 노력과 실천으로 해결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한 권의 책’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종종 화제가 된 바 있다. ‘대통령이 추천한 책’들은 그때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감명받은 책 주위에 적극 추천

    지난해 3월에도 노 대통령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서동만 전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박선원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이 쓴 ‘한반도 평화보고서’(한울아카데미, 2002)와 배기찬 청와대 동북아시대위원회 비서관이 저술한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위즈덤하우스, 2005)를 참모들에게 읽도록 권해 화제를 낳았다. 그리고 이 두 권의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모두에게 이 책을 한 권씩 선물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위즈덤하우스 측에 따르면 현재 ‘코리아…’는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며 약 2만2000부(12쇄)가 팔려나갔다.

    2004년 3월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노 대통령이 읽어 화제가 된 책은 ‘헌법의 풍경’(교양인, 2004)이다. 이 책은 지금도 꾸준히 팔려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라 있다. ‘검사 출신 법학자가 용기 있게 써내려간 한국 법조계의 반헌법적 현실’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의 내용은 ‘권력을 잃은’ 노 대통령의 당시 심경을 잘 대변했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삼성 비자금 사건이 불거진 이후 정치인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도 푸네대학 총장으로 있는 경제학자 나렌드라 자다브가 쓴 가족 연대기 ‘신도 버린 사람들’(김영사, 2007)을 권한다. 충북 청주 금천동성당에 자리한 그의 사제관 책상에도 이 책이 놓여 있다.

    김 신부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한 대목을 읽어주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삼성 비자금 사건, 삼성그룹의 세습경영 등에 대해 언급한다. 다음은 그가 기자에게 직접 들려준 한 구절이다.

    “다다는 내가 한 연구에 대해 물었다. … ‘그걸로 보통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 나는 말문이 막혔다. 다다는 그런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해도 길거리의 사람들을 돕지 못한다면 전부 낭비일 뿐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