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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母性으로 무장하고 스릴러에 뛰어들다

  • 하재봉 영화평론가

    입력2007-11-14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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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母性으로 무장하고 스릴러에 뛰어들다
    영화 ‘쉬리’에서 여전사 이방희 역을 맡아 인상적인 스크린 데뷔를 한 김윤진. 그는 2004년부터 미국 ABC TV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로스트’에 백선화 역으로 출연하며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로스트’ 시즌3는 2007년 5월 종료됐지만, ‘로스트’ 시리즈는 전 세계 각지에서 방송되고 있어 김윤진의 국제적 지명도는 계속 상승 중이다. ‘로스트’는 시즌4, 5, 6이 추가 제작될 것으로 공식 발표됐다. 시리즈마다 16개의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 시즌1의 경우 각 에피소드의 평균 시청자 수가 1550만명이었다.

    김윤진을 스타로 만든 것은 ‘로스트’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우리에게 ‘쉬리’의 여전사로 통했다. 그만큼 ‘쉬리’(1999년)에서의 이미지가 강했고, 그 뒤 ‘단적비연수’(2000년) ‘예스터데이’ ‘밀애’(2002년) 등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2003년 미국의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와 3년 계약을 하고 본격적으로 미국 진출을 한 뒤에는 국내에서 만나기 힘들었다.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긴장되고 흥분되기는 처음이다. ‘세븐 데이즈’에 원래 김선아 씨가 캐스팅돼 촬영하다가 도중하차한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러나 미리 알았다고 해도 내 결정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뛰어났다.”

    올해 서른넷. 1973년생인 김윤진은 열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서 보스턴 대학을 졸업했다. 따라서 원어민 영어발음이 가능한 것이 그의 해외 진출에 커다란 이점으로 작용했다. ‘로스트’는 미국 에미상(아웃스탠딩 드라마 시리즈 부문)을 받았고 영국의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 부문 상을 수상했다. 세계적인 잡지 ‘맥심’에서 매년 발표하는 HOT 100에 김윤진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98위(2006년)에 랭크됐다.

    유괴당한 딸 구하기 위해 살인범 변론 맡은 변호사 역



    미국 활동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국내 영화에 모습을 보인 것은 신은경 문정혁이 2인조 경찰로 등장한 ‘6월의 일기’(2005년)였다. ‘로스트’의 한 시즌 촬영 종료 후 짧은 휴식을 틈타 참여한 이 영화에서 김윤진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서윤희 역을 맡아 후반부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에 개봉하는 ‘세븐 데이즈’는 김윤진이 단독 주연한 영화다.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할 만큼 김윤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딸을 유괴당했다는 점에서 ‘밀양’의 전도연과 비슷할지 몰라도 리얼리스트인 이창동 감독 영화와는 달리 ‘세븐 데이즈’는 스릴러 장르에 충실한 작품이어서 촬영 전에 일부러 ‘밀양’을 보지 않았다.”

    범죄스릴러 ‘세븐 데이즈’는 ‘구타유발자들’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한 원신연 감독의 세 번째 영화다. 공포영화 ‘가발’에 이어 스릴러 장르에 도전한 원 감독은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바탕으로 범죄스릴러를 만들려고 한다. 어린 소녀가 유괴되는 금요일부터 다음 주 목요일까지 일주일간 전개되는 ‘세븐 데이즈’는 승률 100%를 자랑하는 최고의 변호사 지연(김윤진 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일에만 매달리는 지연은 항상 어린 딸과 놀아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다. 그런데 딸이 유괴되고 유괴범은 돈이 아니라, 강간살인 흉악범 정철진이 무죄로 석방되도록 해야만 딸을 풀어준다고 협박한다.

    일반적인 스릴러 장르 공식에서 비켜난 ‘세븐 데이즈’는 심리싸움이나 긴장감 있는 액션 대신 살인사건의 해결이 전면에 부각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정철진이 석방돼야 딸의 유괴라는 영화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유괴범과 변호사의 대결은 물밑에서 진행된다.

    “대본이 튼튼하고 진행이 무척 빠르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속도감 있어 흥행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이를 납치당한 엄마 역이지만 슬픔이나 눈물을 절제하는 부분이 더 많다.”

    지연은 사무장(장항선 분)과 함께 정철진 사건을 조사한다. 국선 변호사 대신 자신이 사건을 맡기로 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사체 부검 의사를 만난 뒤 피해자 주변을 다시 조사하지만 재판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사흘. 그래서 지연은 절친한 형사 성철(박희순 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세븐 데이즈’는 지연-성철의 버디무비 스타일을 따르고 있는데, 이것도 공식에서는 약간 비켜났다. 2인1조로 뛰면서 주제와는 별도로 그들 사이의 차이와 갈등을 부각하며 재미를 주는 게 일반적인 버디무비라면, ‘세븐 데이즈’에는 변형적인 파트너십이 등장한다. 김윤진이 맡은 변호사 지연은 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냉정한 이성과 불타는 감성을 가진 채 뛰어다녀야 하지만, 성철은 적당히 타협적이고 거칠며 세속적이다. ‘가족’에서 신선한 악역 연기를 보여준 박희순은 뛰어난 캐릭터 해석으로 자칫 동맥경화증에 걸릴 수 있는 ‘세븐 데이즈’에 탄력을 불어넣는다.

    폭넓은 감정 연기 호평 … 흥행 여부 관심

    母性으로 무장하고 스릴러에 뛰어들다

    ‘세븐 데이즈’는 심리싸움이나 긴장감 있는 액션 대신 살인사건의 해결이 전면에 부각된 스릴러 영화다.

    사체부검을 통해 정철진이 살해한 여자가 마약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현장에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잠금장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연은 면식범의 살인이 분명하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등장한 정철진의 동거녀가 살해된 여자와 정철진이 이미 마약거래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진술하면서 지연은 다시 궁지에 몰린다. 살해된 여자 어머니(김미숙 분)와의 긴장관계가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는 점을 눈치챈 관객이라면 결말이 싱거울 수도 있다.

    “나는 미혼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딸이 납치된 상황을 연기해야 했다. 그래서 가족 중 한 사람이 납치됐다고 가정하고 연기했다. 내가 지금까지 맡은 역은 예쁜 여배우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슬픈 감정을 표현할 때 여배우가 예쁘게 우는 법은 없다. 울 때는 얼굴이 일그러지고 빨개지고 핏줄도 보인다.”

    김윤진은 ‘세븐 데이즈’에서 폭넓은 감정 변화를 보여준다. 스릴러 장르가 갖춰야 할 치밀함이 부족하고, 범인 정철진을 무죄로 석방되게 하는 지연의 마지막 변론도 논리가 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븐 데이즈’의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힘 있는 내러티브 전개, 적재적소에 핸드헬드 샷을 쓰며 불안감과 역동성을 증가시키고 클로즈업 샷과 롱 샷을 적절히 배치해 이야기를 드러내는 원 감독의 연출은 보는 재미를 배가한다.

    “나에게는 ‘로스트’ 이후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본이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는 못했다. ‘로스트’에서 부드러우면서 우수에 찬 이미지의 서니 역과 비슷한 캐릭터가 많이 들어온다. 미국에서는 조디 포스터처럼 여성적이면서도 강인한 캐릭터가 유행인데 너무 우수에 찬 배역만 들어온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우수에 찬 배역이 인기 좋은데 나한테는 강인한 배역만 들어온다.”

    한국에서 ‘세븐 데이즈’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 김윤진은 ‘로스트’ 시즌4 촬영을 위해 곧바로 하와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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