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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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인가, ‘되찾은 10년’인가

학계·재계 전문가 11인의 ‘10년’ 진단 … “성장 잠재력 하락” vs “재벌개혁 등 질 향상”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7-11-14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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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10년’인가, ‘되찾은 10년’인가
    ‘잃어버린 10년.’ 원래는 침체의 늪에 빠진 1990년대 일본경제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런데 주로 경제적 의미를 내포한 이 말이 2007년 한국의 대선판을 아우르는 정치담론으로 떠올랐다. 줄곧 지지율 1위를 달려온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뿐 아니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씨마저 ‘잃어버린 10년’을 화두로 내세운다.

    물론 ‘잃어버렸다’는 표현엔 지난 정권에 대한 폄훼가 깔려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정치적 모욕’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지난 10년은 역주행한 10년이었다”는 식의 야당 측 공격이 계속되자 참여정부 인사들은 “당신들은 그런 말 할 자격조차 없다”며 반발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지시하면서 국민들에겐 “신고하면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겠다”는 불쾌감까지 표출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54.9%가 ‘잃어버린 10년’에 동의

    국민들은 야당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로 ‘잃어버린 10년’에 공감을 표한다. 6월 한 여론조사기관 조사에서 ‘6월항쟁 20돌’을 기념해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국민은 54.9%가 ‘동의’ 또는 ‘동의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0.2%에 그쳤다.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가치판단’이 개입된 정치적 수사(修辭)임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같은 조사에서 진보개혁 성향의 학자와 시민사회 운동가들은 ‘잃어버린 10년’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견해를 보였다.

    ‘잃어버린 10년’ 주장의 핵심은 이 기간에 분배와 평등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인해 한국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반(反)기업 정서와 민간분야 투자 위축도 주요 근거다. 반면 ‘되찾은 10년’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재벌개혁,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어지고 균형발전 등 질적 측면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서로 다른 성적표를 내세우며 실랑이를 벌이는 셈이다.



    이 화두는 이번 대선에서 정치적 리트머스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조금 시선을 확대하면 또 다른 의미도 지닌다. 대선을 한 달 앞둔 11월은 ‘제2의 6·25’라고 불렸던 IMF 구제금융 체제가 시작된 1997년 11월로부터 정확히 10년이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좌파정부 10년이든 진보정부 10년이든, 차기 정부에 그 공과(功過)를 넘겨줘야 할 시점인 것이다. 실제 지난해부터 꾸준히 해외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경제가 일본경제의 침체를 닮아간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과거 10년에 대한 성격 논쟁이 치열해질수록 입에는 쓰지만 대한민국에는 좋은 약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잃어버린 10년’ 논쟁을 바라보는 학계와 경제계 시각은 어떨까? 해당 전문가 11명의 견해를 정리했다.

    ‘잃어버린 10년’인가, ‘되찾은 10년’인가
    [경제] 홍순영(50) 삼성경제연구소 경제동향실장“내실 다졌지만 성장률 정체”

    잘한 것과 못한 것이 공존하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외환위기의 빠른 극복과 금융권 부실 감소, 기업의 재무건전성 강화를 가장 큰 미덕으로 꼽고 싶다.

    하지만 약점도 적지 않다. 기업 내실화가 이뤄졌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성장동력이 약화됐다. 지난 시기 우리 성장률은 4% 정도로 정체됐다. 그 이유는 기업들의 투자 부진 때문인데, 사회 전반적으로 우리의 장점인 도전정신을 억제하고 안정지향적인 모습을 보였던 게 문제다. 대차대조표를 만든다면 내실을 다진 시기라는 표현도 부인할 수 없지만, 수치상으로는 외환위기 이전보다 떨어졌기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진 듯하다.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4.5~4.8%로 얘기된다. 때문에 총 요소생산성을 올리고 투자를 좀더 확대하며 내부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7% 성장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잃어버린 10년’인가, ‘되찾은 10년’인가
    홍성국(44)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양적 성장보다 질적 변화의 시기”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가 너무 다른 것 같다. 지난 시절 우리 경제는 부채에 의존하며 양적 성장을 구가해왔다. 그 성장 기간에 챙기지 못한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 외환위기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셈인데, 외환위기 이후 경제정책은 누가 집권했더라도 질적 변화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난 10년은 한국 사회 및 경제구조가 화학적 변화를 겪은 시기다. 결국 그 변화가 질적 성장으로 이어졌는지를 따져야지 단순한 성장률 타령은 문제가 있다. 잠재성장률 얘기가 많은데, 이제는 한국경제의 규모가 커져 앞으로 7% 이상의 고성장은 쉽지 않다고 본다. 양적 성장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양적 성장에 치중했던 사람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을 끄집어내고 있다고 본다.

    일본은 어느새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15년’이 됐다. 일본 역시 양적 성장에 치중하다 생긴 비극이다. 단언컨대 질적 변화 없이는 쉽게 끝나지 않을 고생이다. 어느 사회나 갈등의 원천은 양이 아닌 질적인 분야에서 나온다. 양극화 문제만 봐도 그렇다. 이 문제가 가장 심한 나라가 어디인가. 바로 중국이다. 그러나 중국정부와 사회는 ‘조화’를 강조한다. 중국조차 이렇게 어른스러운데 우리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싸우는 건 지나친 소모전 아닐까?

    ‘잃어버린 10년’인가, ‘되찾은 10년’인가
    강석훈(43) 성신여대 교수(경제학)“목표 좋았지만 정책은 아마추어”과거 한국경제가 세계경제에 비해 성장률이 높았다면 지난 10년은 평균성장률에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그 기간 중 지니계수로 판가름되는 분배지수마저 악화됐다. 성장과 분배 모두 실패했다는 점에서 ‘잃어버렸다’고 표현할 수 있다. 성장률 저하의 주원인은 바로 투자 부진이다. 정부가 반(反)기업 정서를 확산하고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정권을 연장하고 유지해왔기 때문에 기업가들의 투자의욕이 상실된 듯싶다.

    성장과 분배라는 측면으로 보면, 1997년까지는 정부가 경제성장을 주도했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를 민간으로 돌려준 점이 긍정적이다. 분배는 그 반대로 97년 이전 체제는 복지를 민간에 맡겼지만 DJ 정부는 국민기초생활 등을 통해 정부가 껴안은 시기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참여정부인데, 성장 패러다임을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우지 못한 채 ‘균형성장’ ‘국토균형발전’ 등의 화두로 주도했다는 점이다. 분배는 반대로 DJ 노선을 강화하고 나섰는데, 바로 이 점이 민간 효율성을 떨어뜨린 대목이다. 참여정부가 주장하는 ‘균형성장, 동반성장’ 자체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목표는 좋았지만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이상인 데다, 구현하기 어려운 정책을 아마추어적으로 했다는 점이 문제다.

    ‘잃어버린 10년’인가, ‘되찾은 10년’인가
    김종석(55) 한국경제연구원(KERI) 원장“저성장 국면 너무 빨리 맞았다”

    쉽게 말해 우리의 잠재성장률을 살렸더라면 지금쯤 1인당 국민소득(GNI)이 3만 달러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그 배경에 바로 기업가의 기업의욕, 근로자의 근로의욕 저하가 자리한다. 사회 전체에 성실하게 일해서 잘살기보다는 우기고 떼쓰는, 즉 뜯어먹고 갈라먹겠다는 풍조가 만연했다. 근면성실한 사람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지지 못하니 기업이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근로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게 잠재성장률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경제성장률이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지표가 된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적어도 6%는 나와야 한다.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저성장은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저성장 국가들이 3만~4만 달러대에서 저성장 국면을 맞이했다면 우리는 2000년 초, 그러니까 GNI 5000달러 때부터 주저앉았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때 평균성장률이 4%에 그쳤기 때문에 기회비용 개념으로 본다면 우리가 이미 도달했을 수 있는 자리를 빼앗긴 셈이다.

    ‘잃어버린 10년’인가, ‘되찾은 10년’인가
    전성인(48) 홍익대 교수(경제학)“한나라당 책임도 크다”

    ‘잃어버린 10년’은 정부의 경제적 실정(失政)을 부각한, 일종의 경제정책에 대한 ‘색깔론’으로 비친다. 그 원인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있는지, 아니면 그 이전인 김영삼(YS) 정부나 노태우 정부 또는 더 이전에 벌어진 정부 주도의 성장전략에 기인한 것인지는 잘 살펴봐야 한다. 4%대 성장률은 우리가 OECD 회원국임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준의 저성장은 아니다. 때문에 국민들이 잃어버렸다고 공감하는 측면은 오히려 과거와 달라진 모습, 이른바 종신고용제 철폐,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의 구조화 등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 같은 사회문제를 정치적 수사로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바로 한나라당이 이와 밀접히 연관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노동시장 유연화와 관련해 어떤 정당이 무슨 주장을 펼쳤는지 살펴보자. 정확하게 한나라당이 주범이다. 재벌의 지배구조 투명성 대목에서도 과거의 발전전략에 근거한 재벌체제 유지를 주장한 쪽 역시 한나라당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지난 10년의 과오에 돌을 던지기는 어색하다.

    일부 대선후보들이 7~8%대 고성장을 공약으로 내세우는데, 그런 식이라면 어느 나라가 선진국이 안 되겠는가. 성장을 위해 무리한 경기부양과 규제완화가 나올지 모르는데, 자칫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하는 잘못된 정책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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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사회] 강원택(46) 숭실대 교수(정치학)“잃어버린 10년은 野 뜻만 반영한 정치구호”

    불가능한 질문이다. 두부 자르듯 DJ와 노무현 시절을 통째로 부인할 수는 없다. 지난 10년간 분명히 남북관계가 개선됐고 권위주의가 해소됐으며 재벌개혁 성과가 일정 정도 나타났다. 돈 정치가 이전 정권에 비해 확연히 줄어드는 등 정치 영역의 성과도 뚜렷하다. 그런데 ‘잃어버렸다’는 구호는 경제 영역의 답답함을 근거로 한나라당의 입장만 반영한 ‘정치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아무리 나쁜 대통령이라 해도 잃어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상당수 유권자를 모독하는 것이다. 정치쟁점화 의도가 짙기 때문에 학술적인 답변을 내놓기 어렵다.

    ‘잃어버린 10년’인가, ‘되찾은 10년’인가
    전상인(49)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한국의 아이덴티티가 훼손된 기간”

    표현 자체가 조금 과장됐다는 데 동의한다. 1997년 겨울의 위기감에 비해서는 단기간에 극복됐다는 점에서 DJ에 대한 평가는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대차대조표를 만든다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게 많은 기간이었다. 지난 10년이 한국사회의 성장을 예비한 변화의 시기라기보다는 소모적인 10년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GNI 2만 달러에 만족할 형편이 못 된다. 왜냐하면 10년 뒤엔 인구학적으로 성장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과 남북통일을 염두에 둔다면 하루빨리 파이를 키워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무엇보다 외환위기 10년, 민주화 20년인 우리가 그간 이뤄놓은 민주화를 만끽하고 있지만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지 의문스럽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사회적 통합도 이루지 못하고, 로스쿨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내는 민주주의가 됐다. 그동안 민주주의가 이뤄진다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일 뿐 사회통합에 기여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민주주의인 셈이다. 또한 국가 정체성 측면에서 볼 때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헌법정신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잃어버린 10년’인가, ‘되찾은 10년’인가
    김호기(47) 연세대 교수(사회학)“양적 지표로 측정할 수 없는 성과도 많았다”

    단순한 이분법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한 사회의 변화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이 논쟁은 어떤 사실을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정치적 담론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GNI가 2만 달러로 성장하는 등 밝은 경제지표들이 적지 않다. 물론 비정규직이 800만명으로 증가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며 청년실업이 증가하는 등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이 같은 사실을 객관적·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무엇을 놓고 싸워야 하는지 서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담론에 그치고 만다.

    또한 양적 지표로 환원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예컨대 국가인권위원회 설치와 호주제 폐지 등은 명확한 사회민주화로 볼 수 있지만 성과로 인식하기 힘든 영역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정당민주주의인데, 이번 대선 국면에서도 정당이 사라진 점은 분명 퇴보다. 잘된 부분이 있다면 북돋우고, 부정적인 현상이 나타났다면 고쳐야겠지만 이 논쟁은 조금 편향됐다고 본다.

    ‘잃어버린 10년’인가, ‘되찾은 10년’인가
    박효종(60) 서울대 교수(정치학)“분열의 리더십으로 역사 퇴보”

    논쟁의 근원이 경제보다는 정치적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한국 정치에서 이뤄야 할 가장 시급한 속성과 본질은 ‘통합’이다.

    문제는 10년 전부터 통합보다는 갈등을 국정 목표로 삼는 세력이 득세했다는 점이다. 이후 정치 어젠다가 아우르기보다는 뺄셈 정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역사 바로 세우기’다. 역사 청산이란 용어가 나오면서 친일과 친미에 대한 적대감이 생겨났고, 결국 내셔널리즘이 부각되면서 내부 반목과 불화로 이어졌다. 이른바 남남갈등의 원인이 된 셈이데, 이것을 추스르지 않고 무리하게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냉전적 사고로 몰아버리며 선을 그어버린 게 결정적 실정이 됐다.

    경제적 의미의 양극화라는 것도 정부는 말로는 통합을 말했지만 실제는 부자 대 빈자로 선을 긋고 결국 서로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계층적·계급적 범주를 정치 자산으로 악용한 셈이다. 그것이 바로 포퓰리즘이라 불리는 갈등의 리더십이다. 지난 10년은 통합의 리더십이 아쉬운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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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욱(56) 고려대 교수(북한학)“비정상적 남북교류… 北 요구 왜 다 들어주나”

    한마디로 북한의 핵을 용인하게 된 점을 지적하고 싶다. 북한 핵실험을 용인하면서 대북지원이 늘어가는 모순된 구조가 지난 10년간 대북관계 후퇴의 핵심이다. 핵문제를 해결하고 교류협력이 늘면 문제가 없다.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그 해결이 요원해졌고, 대북관계가 틀어져버렸다. 비정상적인 가상의 관계가 바로 ‘잃어버린 10년’의 핵심이다

    게다가 북한의 길을 잘못 들였다는 점도 있다. 남북관계의 기본 틀이 ‘잘사는 남한이 어려운 북한을 돕는’ 것임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이나 국군포로 문제 등 어두운 면은 손 놓은 채 일방적으로 북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향으로 교류협력이 정착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남과 북이 서로 잘못 길들여진 게 아닌가 우려된다. 원칙 없는 교류협력, 저자세 외교 모두 문제다.

    ‘잃어버린 10년’인가, ‘되찾은 10년’인가
    이상돈(56) 중앙대 교수(법학)“올바른 권위·공공정신도 파괴”

    정치적 측면에서 이념적으로 해이해진 것을 꼽고 싶다. 이는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 붕괴를 가져왔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정통성, 정체성 같은 긍정적인 측면까지 붕괴해버렸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잃어버린 5년’ 정도가 적절할 듯싶다. 노무현 정부 이후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

    솔직히 ‘잃어버린 경제’보다는 권위의 파괴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정권 자체가 스스로 민주주의에 과잉되면서 ‘자유 없는 민주주의’라는 괴물을 만들어버렸다. 이는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고 자연스레 교육의 이탈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 중학교 교육마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자유주의적 본성을 옥죄었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정책으로 이어져 장기적인 발전동력의 상실을 낳는다. 게다가 제복 입은 사람에 대한 존경이라는 사회적 합의마저 파괴했다. 권위주의가 아닌 올바른 권위와 공공정신의 파괴는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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