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7

2007.10.23

179년 역사 ‘파리 오케스트라’가 온다

  • 유혁준 음악 칼럼니스트

    입력2007-10-19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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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년 역사 ‘파리 오케스트라’가 온다
    “베를리오즈는 깊은 인상을 받거나 충동적인 편이었다. 그런 감정은 늘 극단적으로 나타났고, 그래서인지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화산’이라고 했다.”

    베를리오즈의 후배였던 구노가 한 말이다. 음악과 삶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 음악과 삶을 동일시했던 극단주의자. 그가 바로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베를리오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관현악법을 구사해 청중을 경악으로 몰고 갔던 그는 작품을 쓸 때 철저히 표제적인 성격을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프랑스 교향곡의 최고봉에 서 있는 ‘환상교향곡’은 베를리오즈의 나이 27세 때인 1830년, 로마대상을 받기 전에 작곡된 곡이다. 베를리오즈는 1827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리음악원에 입학해 작곡에 매진하던 중, 파리 공연을 하고 있던 영국 셰익스피어 극단의 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에게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인기 최정상의 배우가 가난한 음악도를 만나줄 리 만무했다. 베를리오즈는 자살까지 생각할 만큼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고, 3년 뒤 한 여인에 대한 사랑과 저주를 그대로 악보에 옮겨 필생의 걸작이 된 ‘환상교향곡’이 탄생했다.

    1828년 창단한 파리음악원 오케스트라는 2년 뒤 ‘환상교향곡’을 세계 초연했다. 18세기 중반 이후 파리는 철저한 음악의 소비 도시였고,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비해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뒤졌다. 하지만 파리음악원 오케스트라는 건재하며 세계 정상급 실력을 유지해왔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샤를 뮌슈 등 전설적인 거장 지휘자들이 조련했던 파리음악원 오케스트라는 1967년 파리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꿨다.

    바로 이 파리 오케스트라가 2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다.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크리스토퍼 에센바흐의 지휘봉 아래 그들이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으로 한국 음악팬에게 인사한다(11월11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1577-7766). 특히 이번 무대에서는 1830년 초연 당시의 오리지널 ‘벨’을 사용할 예정이어서 더욱 기대를 모은다.



    서울 무대에서는 라벨 ‘라 발스’, 스트라빈스키 ‘불새’,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등 역시 파리 오케스트라가 최상으로 연주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11월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20-1620).

    179년 역사 ‘파리 오케스트라’가 온다
    ‘환상교향곡’의 교과서적인 명반은 역시 샤를 뮌슈가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의 창단 기념 첫 녹음 음반이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작열하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환상교향곡’을 음반으로 남겼지만 애호가들의 귀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유럽이 아닌 미국이었다. 바루잔 코지안과 유타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982년 연주한 ‘환상교향곡’은 작곡가의 광폭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명연이다. DVD로는 마리스 얀손스의 지휘봉이 으뜸이다. 4세기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건립된 터키 이스탄불의 성 아이린 교회에서 실황 녹음한 것이다.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대 건축물에서 펼쳐지는 마리스 얀손스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베를리오즈는 청중을 환상으로 몰고 간다(스펙트럼 DVD SPD 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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