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5

2007.10.09

젊어진 ‘뽕짝’ 대중음악 시장 호령

아이돌 그룹, 발라드 가수들도 ‘뽕필’ 대열 … “대중 영합” 비난 의견도

  •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입력2007-10-04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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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어진 ‘뽕짝’ 대중음악 시장 호령

    신세대 트로트 스타 장윤정(왼쪽)과 박현빈.

    올해 초 개봉했던 영화 ‘복면달호’는 로커를 지망하지만 가요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트로트를 부르는 가수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에서 알 수 있듯, 트로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음악성이나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장르였다. 한마디로 촌스럽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대중음악계는 트로트의 멜로디와 분위기가 가미된 ‘뽕짝풍’, 이른바 ‘뽕필’이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수영·양파 노래도 트로트 분위기 ‘뚜렷’

    장윤정, 박현빈 등은 신세대 트로트 스타로서 자리를 굳히고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트로트계뿐만 아니다. 아이돌에게 트로트는 금단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슈퍼주니어는 ‘로꾸거’를 부르며 이 금단의 영역을 넘어버렸고, 반응도 좋았다.

    발라드로 넘어가면 더하다. SG워너비, 씨야 등 몇 년째 발라드계의 지존으로 자리잡고 있는 그룹의 미들템포 R·B(리듬 앤드 블루스)는 말이 좋아 R·B지, 실상은 R·B 템포와 넘치는 바이브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트로트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발라드 여왕 이수영의 노래에서 이미자의 그림자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으며, 올 상반기 화려하게 컴백한 양파의 ‘사랑 그게 뭔데’에서도 뚜렷한 트로트 분위기가 느껴진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태진아와 송대관 이후 스타를 배출하지 못한 채 교통방송과 고속도로 휴게소의 전유물로 전락한 트로트 아니었던가. 그런 트로트가 직간접적으로 한국 주류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모더니즘 시대를 꼽는다면 1980년대 후반이다. 그 이전의 음악들은 트로트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기곡을 만들어내는 작곡가들이 대부분 70년대부터 활동하면서 트로트의 자장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신 정권은 당시 주류 대중음악의 한 축을 이루던 록 뮤지션들을 대마초 파동으로 사실상 활동금지시키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강세를 보이던 포크 가수들을 정치적 이유로 탄압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은 거세되고 말았다.

    그 후 가요는 한동안 어른들의 음악이었다. 이미자, 나훈아, 남진 등이 가요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트로트 계열 음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브라운관을 독식하다시피 했다. 이때의 영향은 1980년대 들어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따라서 새롭고 세련된 음악을 갈망하는 젊은 층은 가요 대신 팝을 찾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유재하가 등장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데뷔 앨범 한 장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한 유재하의 최대 공적은 한국의 팝 발라드를 완성했다는 데 있다. 클래식을 전공한 이력답게 그의 발라드에는 이전 대중음악과는 달리 트로트 느낌이 배제돼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모더니즘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문세, 시인과 촌장, 동물원 등이 그 뒤를 이으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모더니즘이 완성됐다. 그들이 트로트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은 통속성으로부터의 탈출이나 다름없었다. 즉, 대중이 원하는 대로의 음악이 아니라 대중이 좇는 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욕구였던 것이다. 그 전과는 다른,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는 유재하와 들국화를 계기로 언더그라운드 출신 뮤지션들의 성공적인 데뷔로 이어졌고, 음반 시장에서 절대 강세를 보였던 20대들이 이에 호응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은 서양의 그것과도 차별된 독특한 세련미를 일굴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을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시대의 음악적 경험은 뒤에도 이어졌다. 팝 음악만 듣던 음악 팬들이 가요 음반을 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던 것이다. 윤상, 전람회, 토이로 이어지는 ‘고급 가요’의 계보는 사실 80년대 중후반의 팝 발라드 완성기에 뿌리를 둔다. 서태지와 아이들, 넥스트, 듀스 등이 주도하던 90년대 황금기 또한 팝과 가요를 동시에 듣던 계층의 지지를 얻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는 트로트의 퇴조를 불러왔다. 트로트는 시대에 뒤떨어진 음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로트 열풍, ‘뽕짝’의 역습은 당혹스럽다.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대중음악의 미학적 흐름이 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트로트풍이란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3류 코미디 영화의 공식이 웃음으로 시작해 감동으로 끝나고, 조폭이 단골 소재로 쓰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열광적 지지와 예술적 평가를 얻지 못해도, 시장에서의 성공은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흥행공식이다.

    물론 예외적인 사례도 있다. 트로트의 창조적 수용이랄까. 힙합 듀오 리쌍의 곡에는 적잖은 트로트 멜로디가 사용된다. 최근 음악 전문가들이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는 2000년 발표된 노브레인의 1집 ‘청년폭도맹진가’가 상위권에 올랐다. 펑크와 트로트를 적당히 버무려 이른바 ‘조선 펑크’를 창시한 ‘명반’으로 꼽힌다. 그러나 리쌍과 노브레인의 트로트에는 여타의 그것과는 달리 신파가 없다. 허구한 날 이어지는 사랑 타령을 위한 뽕짝이 아닌, 한국 음악에만 존재하는 트로트의 느낌을 음악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리쌍의 음악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힙합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이유는 특정 음악의 분위기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색깔에 맞춰 끌고 가는 그들의 창작력 때문이다.

    대중음악의 고질병인 다양성 부재 다시 노출한 셈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사랑과 이별의 이분법으로 정리할 수 있는 가요를 바탕으로 신파조의 멜로디를 내세워 포장만 달리하는 것이 트로트가 장악한 지금 대중음악의 현주소다.

    음반시장이 몰락하면서 아이돌 몇몇을 제외하고는 특정 세대만을 겨냥한 음악으로 승부를 걸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음악을 틀어주는 방송 프로그램도 지극히 제한적이다. 더불어 불법 mp3 시대에 실질적으로 매출을 창출하는 통로는 휴대전화 컬러링과 미니홈피 배경음악 정도다. 음악이 중심이 아닌, 배경에 머무는 수용환경인 것이다. 그나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의 몇십 초만 들려지고 이내 사라진다. 짧은 시간에 승부를 걸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익숙함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제 음악은 감상을 위해서라기보다 노래방에서 불리기 위해 만들어진다.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트로트풍의 멜로디와 분위기가 득세하는 이유다. 즉, 대중을 이끄는 게 아니라 대중에게 영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에는 미학적 고민이 들어설 틈이 없다.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을 논할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트로트의 강세는 음악적 고민이 끼어들 수 없는 주류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를 고난의 음반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고 합리화하기에는 온통 트로트풍, 뽕필 일색이라는 것이 문제다. 다른 승부수로 돌파하려는 시도는 없고 대세에 묻어가려는 술책만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고질병인 다양성 부재가 지금의 주류 음악 시장에서 한 번 더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뽕필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뽕필만 있다는 게 나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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