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3

2007.09.18

북핵 불능화 가속도 평화체제 구축 순항할까

급속한 북미관계 개선, ‘종전선언’ 이벤트 거론 군사문제 논의 땐 수많은 변수 등장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7-09-12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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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 불능화 가속도 평화체제 구축 순항할까

    남북간, 북미간 군사 현안은 핵폐기 과정의 최대 걸림돌이다.

    전쟁의 끝이 보인다.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가 해빙되는 분위기다. 9월 초 북미 제네바회담에서 북한은 모든 핵시설을 올 연말까지 불능화하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며, 미국은 정치적·경제적 보상을 제공키로 했다. 예상을 뛰어넘은 합의다. 북한 외무성은 제네바회담 결과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하면서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가 교역법 종료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북-미간 이번 합의는 10월2~4일 남북 정상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미관계 개선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권에선 핵불능화→종전선언→핵폐기 협상 완료→평화협정 체결→북-미수교로 이어지는 ‘평화체제 로드맵‘을 기정사실화하는 낙관론도 나온다.

    9·19 공동성명에 따라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평화포럼엔 6·25전쟁의 직접 당사국인 남-북-미-중 4개국이 참여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4국 정상이 만나 종전선언에 서명하는 이벤트도 거론돼왔다. 그렇다면 평화체제 로드맵에서 ‘현실’과 ‘청사진’의 경계는 어디일까? 먼저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 시나리오를 도표로 살펴보자.

    ▼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시나리오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한반도 평화체제
    시나리오 1



    Desirable
    A 2·13 합의 핵불능화 종료



    종전선언
    핵폐기 협상



    평화협정

    북미연락사무소
    핵폐기



    북-미수교
    평화체제 프로세스 진전
    B 2·13 합의 핵불능화 종료

    핵폐기 협상 완료



    평화협정

    북미연락사무소

    핵폐기



    북-미수교
    종전선언 없는 평화체제 프로세스 진전
    시나리오 2

    Likely
    A 2·13 합의 핵불능화 종료 핵폐기 협상 고착



    북한 핵 보유 지속
    정전체제 지속
    B 2·13 합의 핵불능화 종료



    종전선언
    핵폐기 협상 고착



    북한 핵 보유 지속
    종전선언으로 정전체제 종료

    평화체제 추진기반 조성
    시나리오 3

    Worst
    2·13 합의 2·13 합의(핵불능화) 불이행



    북-미 대치 국면으로 전환
    평화체제 진입 불가, 긴장 고조
    *KIDA가 청와대 안보실 주최 비공개 세미나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발췌 재구성


    제네바 합의는 이 시나리오에서 2단계의 들머리다. 2단계까지는 북한과 미국의 이해가 상당 부분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다. 북한은 장기적 과제인 평화체제보다는 ‘현실적인 당근’인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가 교역법 종료에 관심이 많았다고 올 초 대북 비선접촉과 남북 정상회담 추진으로 화제에 오른 북한전문가 권오홍 씨는 전한다. 북한의 핵불능화는 주지하듯 미국의 단기적 목표다.

    Tip

    종전선언 정치지도자들 간의 신사협정 혹은 정치선언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체결 시까지 한반도 평화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구실을 할 수 있다. 6·25전쟁 직접 당사국인 남-북-미-중 대표가 서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상징적 의미 종전선언 따로 떼어내는 묘안

    “미국은 북핵의 완전 폐기 정책의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한 뒤 확산 방지 정책으로 선회했다. 일단 핵문제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핵폐기는 장기적 외교과제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부시 대통령이 임기 중에 한국전 종전을 선언하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종전선언이 이뤄지더라도 그것은 핵폐기 협상의 이전 단계일 뿐이다.”(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

    평화협정 체결을 근간으로 북한과 빅딜을 이뤄내자는 현재 형태의 구상은 2005년 초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의 보좌관으로 일하던 필립 젤리코 버지니아대 교수의 작품. 그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선 △ 평화협정 체결 △ 에너지 및 경제 지원 △ 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한몫에 엮어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일부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은 그의 구상을 몽상(夢想)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한국 정부의 구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핵문제 해결조치 진행→평화체제 구축 협의 진행→북-미간 대타협 구도 확정→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구도를 기본으로 해서 그 가운데 남북한 양자의 대화와 협력구도를 끼워맞추는 식이다. 이 구상 역시 △ 관련국 관계정상화 △ 경제·에너지 지원 △ 영속적 평화체제 추진 등 관련 사안을 한몫에 엮은 것이다.

    이러한 구상이 한국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돼 등장한 것은 2006년 하반기다.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방안은 늦가을 청와대 안보실에 처음 정식으로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에 상징적인 행사인 종전선언을 끼워넣음으로써 조기에 ‘성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힘이 실렸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1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종전선언과 평화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고 2·13 합의가 이뤄지면서 평화체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으나, 별도 포럼에서 논의하기로 한 평화체제 논의는 아직까지 첫 삽을 뜨지 못했다. 핵불능화가 연내 이뤄진다는 전제로 연말이나 내년 초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은 국제법상 현재진행형이다.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停戰) 협정은 포성을 멈춰놓았을 뿐이다. 60년 가까이 이어진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려면 정전협정 당사자가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종전선언을 따로 떼어내는 묘안으로 복잡한 문제를 뒤로 미룰 수 있게 됐다. 종전선언은 상징적 의미는 크지만 평화체제 논의에서 보면 기점(起點)인 것이다.

    뒤로 미뤄진 복잡한 문제란 군사문제를 가리킨다. 평화체제 구축은 군사문제로 시작해 군사문제로 마무리되는 사안이다. 북한의 핵폐기가 전제돼야 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함한 영토문제, 유엔군사령부 존폐문제가 각 단계별로 떠오를 수 있다.

    종전 또한 군사적 이슈로 걸림돌이 없지 않아 앞서의 시나리오 1-B처럼 종전선언을 거치지 않고 3단계로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

    3단계부터는 당사국의 이해가 크게 엇갈린다. 북한은 핵을 가진 채(핵보유국 인정) 미국에 수교를 요구한 바 있으며, 기존의 핵무기는 북으로선 체제를 지키는 보루다. 일부에서 핵폐기는 상당한 실리가 보장돼야 이뤄질 수 있다고 분석하는 까닭이다. 핵폐기 협상이 교착되면 시나리오 2-A 혹은 2-B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북핵 불능화 가속도 평화체제 구축 순항할까

    1953년 7월 27일 평양 내각청사에서 김일성 당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정전협정에 최종 서명하고 있다.

    시나리오 3단계부터 군사문제 전면에 등장

    어쨌거나 3단계부터는 군사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5월 청와대 안보실 주최로 열린 비공개 세미나에서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상설적 남북군사협의기구 설치→종전관리기구 설치→유엔군사령부 해체→남북연합군 추진 등 4단계 추진 전략을 제시했다. 청와대는 평화체제 문제와 관련해 통일연구원 외교안보연구원 국방연구원과 수시로 비공개 세미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문제 중심으로 평화체제 추진과정을 정리한 도표를 잠시 살펴보자.

    ▼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군사분야 추진전략
    단계 기점 비핵화 북-미관계 평화체제 추진전략 군사분야 추진전략
    준비 2·13 합의 2·13 합의 이행 관계정상화 논의 남북 평화포럼

    한반도 평화포럼

    종전선언 추진

    남북 정상회담
    6자 국방장관회담

    군사문제 의제화

    상설적 군사문제 협의기구 설치
    진입 종전선언 핵폐기 협상 진행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종전선언 서명

    평화협정 주도적 추진
    종전관리기구 설치

    유엔사 기능 전환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
    전환 평화협정 핵폐기 완료 북-미수교 평화협정 체결 및 이행 남북 평화관리기구 설치

    유엔사 해체 및 평화보장기구 설치

    군비제한
    정착       남북연합 추진

    동북아 다자안보협의체 제도화
    군비감축

    남북 군사협력체제 확충

    남북연합군 추진
    *KIDA가 청와대 안보실 주최 비공개 세미나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발췌 재구성


    이 추진전략에서 ‘제네바 회담 결과’는 준비단계의 가운데에 자리한다. 진입 단계에서의 이슈는 유엔군사령부의 기능 전환과 영토문제다. 보고서는 이 단계에서 유엔사를 평화유지감시기구로 바꾸고 비무장지대와 서해의 NLL을 평화지대로 설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종전이 이뤄진다면 그 전후로 유엔사 존폐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1950년 7월 유엔 안보리결의 S/1588에 따라 수립된 유엔사는 공식적으로는 16개 참전국의 연합체지만 정전관리 임무는 유엔사령관을 겸임하는 주한미군사령관(겸 한미연합사령관)이 맡아왔다. 국방부 일부에선 평화협정 체결 단계에서도 유사시를 대비해 유엔사가 기능을 바꿔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견해를 보인다.

    Tip

    평화협정 전쟁을 끝낸 당사국들이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로 전환한다는 선언이다. 국경선 확정, 군비통제, 비핵화 및 대량살상무기 포기 등이 평화협정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종전서명에 참가한 국가가 협정 주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NLL의 최종적인 해결 없이 평화협정 체결은 어렵다”고 본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최근 “NLL은 영토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해 구설에 올랐는데, 북측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 주권을 견지하면서 NLL을 공동관리수역으로 인정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NLL은 영토주권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남북 모두 타협에 이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NLL은 북한 군부 입장에선 영토문제이면서 경제문제다. 꽃게잡이로 인한 수익의 상당 부분이 군부 몫이기 때문이다.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30%에 이르는 제2경제(군수경제)를 차지한 군부가 핵폐기 협상의 장애물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그들이 현재의 군사 시스템이 크게 흔들리는 평화협정을 꺼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폐기 협상에서 미국의 핵우산 철거 및 한국 내 미국기지 사찰 요구를 펼 가능성도 매우 높다. 북측이 일관되게 요구해온 한미 합동군사연습의 중지 여부도 논란거리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북한이 개성공단을 열고 금강산을 개방했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남침로를 포기 또는 양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도 조금 믿음을 내보일 때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주한미군 계속 주둔 여부, 국가보안법과 노동당 규약 개폐 여부, 북한이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국군포로 문제 등 남남갈등 혹은 북한 군부의 반발을 일으킬 ‘뜨거운 감자’가 이밖에도 많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군사문제 쟁점만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평화협정이 이뤄지려면 핵불능화 단계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올해 안에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가시적 성과가 나오면 내년에는 지금까지의 수많은 ‘터부(taboo·금기)’를 넘는 빅뱅 수준의 대전환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최근 밝혔다. 그러나 핵억지력과 선군체제는 현재 북한을 유지하는 두 기둥이다. 북한은 체제의 기둥을 뽑고 (기존 핵무기 등 북핵의 궁극적 해소) 새로운 생존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

    적대감 해소 없이는 분단 영구화할 수도

    일각에선 평화협정이 분단의 영속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한다.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는 북한의 해체 단계로 1. 경제파탄의 장기화로 통제력 상실 2. 사회질서의 이완 및 주민의식 변화 3. 정권에 대한 불만 고조와 정치통합력 약화 4. 대외관계 약화 및 포스트 김정일을 둘러싼 권력투쟁 격화 5. 체제 붕괴로 나누면서 현재 북한이 4번째 단계에 와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북한이 핵을 쥐고 개혁, 개방을 거부한다는 전제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북한은 각 단계별로 실리를 추구하면서 평화체제 논의를 체제를 연장하는 생존의 길로 활용할 수 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 평화체제 구축을 ‘평화를 사고 분단을 고착화하는 길’이라고 보기도 하는 이유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적대감을 해소하지 못하면 분단이 영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의 끝은 보인다. 그러나 평화 구축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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