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8

2007.08.14

예술과 느림의 미학이 숨쉬는 도시

  • 글·사진 = 천소연

    입력2007-08-08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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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과 느림의 미학이 숨쉬는 도시

    넬슨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오두막

    ‘예술도시’라고 하면 흔히 유럽의 파리, 로마나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을 떠올린다. 또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역사와 전통의 힘, 문화적 다양성과 유명해질 기회가 있는 대도시에서 예술을 연마하고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넬슨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글쎄요, 예술이란 그냥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것 아닌가요.”

    넬슨은 뉴질랜드 남섬의 북쪽에 자리한 인구 5만명이 채 안 되는 소도시다. 하지만 넬슨시와 외곽지역에서 활동하는 현업 예술가가 350여 명이나 돼 뉴질랜드에서 인구당 아티스트 비율이 가장 높은, 공인된 아티스트의 공간이다. 우리나라에는 WOW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는 ‘웨어러블 아트 어워드(Wearable Art Awards)’의 개최지로 소개되면서 그 이름이 스치듯 알려져왔다. 그런데 한국의 한지공예가 신지은 씨가 대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은 지난해부터는 대회 개최지가 넬슨에서 웰링턴으로 옮겨졌다.

    넬슨의 젊고 재기발랄한 예술가들이 ‘예술을 입는다’는 기발한 착상을 무대의 패션쇼로 실현한 때는 20년 전인 1987년이었다. 당시 첫 행사는 고작 200여 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했지만 지금의 WOW는 전 세계에서 3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모여들고, 9월 행사의 티켓이 연초부터 마감되는 세계적 규모의 대회로 성장했다.

    이 행사를 잉태하고 탄생시킨 넬슨은 장성한 자식을 분가시키듯 지난해 WOW 행사를 다른 도시에 넘겼다. 하지만 넬슨의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WOW를 기다리며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머리카락, 철사, 소시지 껍질, 케이크 등 기상천외한 재료를 총동원해 옷을 제작하고 출품하는 일을 중요한 연례 계획으로 꼽는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된 영화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 역시 넬슨에서 주얼리숍을 운영하는 장인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WOW 뮤지엄(www.wowcars.co.nz)을 방문하면 기괴하고 화려한 역대 수상작들과 함께 수백 배로 확대된 절대반지를 볼 수 있다.

    넬슨에 대한 이런 장황한 설명은 사실 전원적이고 조용한 넬슨의 풍경을 직접 마주쳤을 때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넬슨은 도심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모래사장이 펼쳐진 한적한 항구도시다. 넬슨에서 차로 1~2시간 거리에는 국립공원 세 개가 자리잡고 있고, 최근에는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급격히 늘고 있다. 와인을 즐기는 독자라면 이미 넬슨의 기후와 토양 조건을 눈치챘을 것이다.

    넬슨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일조량이 많은 ‘선 시티(Sunny City)’다. 넬슨 사람들에게 ‘이 도시의 가장 큰 매력’을 묻는다면 열 중 여덟, 아홉은 쾌청한 날씨라고 답할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넬슨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까닭도 좋은 환경 때문이다. 아티스트들은 찬란한 햇빛 아래 드러나는 자연의 원색과 영감을 잡아 화폭에 옮기거나 조각, 도예 등의 형태로 표현해낸다. 마치 고흐, 세잔, 마티스가 프랑스의 남부 프로방스를 사랑하며 그곳에서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냈듯, 이곳 작가들도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 말하자면 넬슨은 뉴질랜드의 프로방스와 같은 곳이다.

    연중 온난한 기후가 주는 혜택에는 좋은 품종의 와인뿐 아니라 신선한 채소도 있다. 내버려둬도 먹음직하게 익어가는 넬슨의 사과는 수십 년 전부터 이곳의 대표적 특산물이다. 항구에서 막 건져낸 싱싱한 생선과 유명한 녹색 홍합도 빼놓을 수 없다.

    매슈 보테리(Boutery’s Restaurant · Bar, www.boutereys.co.nz)나 캐빈 합굿(Hopgood’s Restaurant · Bar)처럼 영국에서 잘나가던 셰프들이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넬슨으로 찾아와 자기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도 완벽한 요리를 위한 신선한 유기농 재료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30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안젤리나 졸리보다 신선한 재료와 로컬 브랜드 와인을 2시간 동안 음미할 줄 아는 넬슨의 이웃이 더 감사하다.

    예술과 느림의 미학이 숨쉬는 도시

    넬슨 지방의 특산물 판매장. 승마를 체험해볼 수 있는 농장. 사과농장의 양떼(왼쪽부터).

    쾌적한 날씨·천혜의 자연 휴양지로도 명성

    넬슨에서 특히 유명한 요리는 ‘훈제 시푸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훈제연어 스테이크를 스모크하우스 카페(www.smokehouse.co.nz)에서 맛볼 수 있다. 훈제 조리법을 해산물과 접목해 넬슨 최고 요리사로 평가받는 ‘생선의 여왕’ 비비언 폭스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는 레몬즙으로 조리한 뉴질랜드 그린홍합 요리의 인기가 거의 폭발적이었다(그녀는 스모크하우스를 포함해 8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또한 넬슨은 뉴질랜드에서 손꼽히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남섬 관문인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차로 5시간 정도 걸리는데, 여름 휴가철이 되면 넬슨의 로지들은 방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다.

    뉴질랜드 소도시가 그러하듯 넬슨에도 객실을 수백 개씩 갖춘 초현대식 호텔은 없다. 아니, 근사한 호텔이 있다고 해도 관광객들은 이 도시 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 장식한 로지에서 묵는 계획을 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보통 오래된 저택을 개조한 로지들은 편안하고 가정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저렴한 곳도 있지만 객실이 많아야 5개를 넘지 않으면서 방마다 모든 비품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숙박요금은 특급호텔 못지않게 센 편이다. 넬슨에서 오래된 저택 중 하나인 ‘워릭하우스’(www.warwickhouse. co.nz)는 우아한 빅토리아풍 인테리어가 독특한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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