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1

2007.06.26

낮엔 브런치, 저녁엔 칵테일 한 잔

  • 김선경 여행작가 dearskkim@yahoo.co.kr

    입력2007-06-20 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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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엔 브런치, 저녁엔 칵테일 한 잔

    신사동의 뉴욕스타일 레스토랑 ‘비스트로 디’.

    “‘사이공 그릴’의 명물, 비프 찹 스테이크가 그리워!”

    “난 ‘사라베스’의 리코타 팬케이크가 너무 당기더라.”

    뉴욕에서 한때를 보낸 사람들이 얘기하는 레스토랑과 바에 대한 짙은 향수. 뉴욕에 가보지 못한 사람까지도 뉴욕스타일에 열광하는 요즘이다. 이들을 겨냥해 뉴욕스타일을 표방하는 레스토랑과 카페, 파티업체 등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특히 패션피플이 몰리는 서울 강남 일대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신사동에 문을 연 레스토랑 ‘그래머시 키친’은 뉴욕을 잘 아는 이들에게서 환영과 편애를 받으며 입소문이 난 곳이다. 이름만 들어도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 ‘그래머시 터번’이 떠오르기 때문(이 레스토랑의 광고 문구는 ‘뉴요커의 라이프스타일을 닮은 서울리안들을 위한 레스토랑!’이다). 예상대로 그래머시 키친은 ‘뉴욕스타일 비스트로’로 소개됐다. 그래머시 키친이 자연스러운 톤의 단정하고 안정된 분위기와 수준 높은 서양음식을 낸다는 점은 그래머시 터번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뉴욕스타일 표방하는 레스토랑 잇따라 생겨



    그러나 10년 넘도록 수많은 뉴요커의 발길이 닿아 만들어진 그래머시 터번의 고급스러운 낡음과 매끈하고 세련된 그래머시 키친은 그만큼 다른 면모를 지닌다. 그렇다면 과연 그래머시 키친은 뉴욕의 그래머시 터번에서 영감을 얻은 곳일까? 그렇지 않다면 이곳의 어떤 부분이 뉴욕스타일이라는 것일까?

    뉴욕도 그래머시 터번도 익숙한 사람들이야 ‘그래머시(gramercy)’라는 단어를 통해 뉴욕을 느끼겠지만(그래머시 터번이 자리한 그래머시파크 주변은 오래된 뉴욕의 최상류층 주거지다), 그래머시 키친은 그곳과는 다른 ‘파인 다이닝(fine dining)’ 레스토랑으로서 자기만의 가치로 자존감을 세웠다는 호평이 많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곳을 통해 뉴욕스타일을 알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이 밖에도 뉴욕스타일을 표방하는 대표적 레스토랑으로는 신사동의 ‘비스트로 디(Bistro d˚)’가 있다. 여기서는 회색과 브라운 톤의 은은한 색감에서 뉴욕스타일을 느끼게 된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낡을수록 좀더 ‘뉴욕다운’ 면모를 보여줄 것이다.

    낮엔 브런치, 저녁엔 칵테일 한 잔

    뉴욕 패션을 닮은 서울의 젊은이들.

    뉴욕스타일을 논하면서 브런치 레스토랑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도 등장했던 ‘파스티스’ ‘카페테리아’ 같은 캐주얼 브런치 레스토랑이 서울에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태원의 ‘수지스’와 ‘아보릭’은 뉴욕의 파스티스와 ‘사라베스’에 가까운,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이다. 청담동의 ‘버터 핑거 팬 케익스’는 좀더 모던한 첼시의 카페테리아와 가깝다. 새벽 3시까지 영업한다는 점도 24시간 영업하는 카페테리아를 떠올리게 한다.

    뉴욕 곳곳에는 맛있는 브런치를 내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산재한다. 굳이 뉴욕매거진이 베스트로 선정하는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동네 카페에서 느긋하게 훌륭한 브런치를 즐길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뉴욕매거진은 ‘베스트 동네 레스토랑’을 뉴욕 베스트와 함께 선정한다. 팬케이크와 오믈렛 같은 미국식 브런치 일색인 서울에 비해 뉴욕에서는 라틴, 이탈리안, 잉글리시 브런치 등 다국적 풍미의 브런치들도 고루 사랑받는다.

    낮엔 브런치, 저녁엔 칵테일 한 잔

    뉴욕 센트럴파크에 있는 보트하우스 바. 이러한 테라스 카페는 이제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애플 마티니, 코코넛 마티니, 코스모폴리탄, 모히토 등 그림 같은 칵테일 메뉴와 패셔너블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바도 대표적 뉴욕스타일이라 하겠다. 뉴욕 미트패킹 지역의 ‘갱스부르 호텔 루프탑 바’, 최근 문 연 ‘부다 바’ 타임워너센터의 ‘스톤 로즈 바’에서 뉴요커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칵테일을 한 잔 끼고 밤을 즐긴다.

    서울에서 대표적인 뉴욕스타일 바로는 도산공원 앞의 ‘클럽 아시아 차우’를 들 수 있겠다. 뉴욕에서처럼 넥타이를 느슨하게 맨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들과 재킷을 벗고 탱크톱 차림을 한 여자들이 퇴근 후 한잔을 위해 모인 주중의 밤 풍경도, 칵테일 드레스와 탱크톱, 스키니진 차림의 멋쟁이들이 건물 밖까지 길게 줄선 주말 밤의 진풍경을 찾아보긴 어렵다. 하지만 모던하고 트렌디한 뉴욕스타일의 바를 찾는 사람들은 분위기나 메뉴 면에서 클럽 아시아 차우를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듯하다. 이 밖에도 청담동의 클럽 ‘서클’은 새롭고 다채로운 파티와 퍼포먼스, 수준 높은 디제잉으로 뉴욕 첼시 일대의 ‘살짝’ 선정적인 클럽 못지않은 경험을 제공해 화제가 되고 있다.

    바와 클럽에선 크고 작은 파티 자주 열려

    그리고 파티! 뉴욕의 사교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파티문화다. 바와 클럽에서 열리는 제법 규모 있는 파티 외에도 오피스 파티, 브랜드 파티, 홈 파티 등 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파티를 열어 밋밋한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바꿔버린다. 이러한 소규모의 캐주얼한 파티문화는 케이터링(catering) 전문업체와 프라이빗 셰프 외에도 배달서비스와 테이크아웃 음식을 제공하는 수많은 레스토랑과 카페를 만들어냈다. 첼시의 ‘와일드 릴리 티 룸’에서는 집이나 일터에서 티파티를 하기 위해 메뉴를 상담하는 뉴요커를 종종 만날 수 있다. 푸드TV의 차세대 스타로 떠오른 데이브 리버맨도 프라이빗 파티 전문 셰프다.

    요즘 서울에서도 뉴욕스타일의 세련된 파티음식을 제공하는 케이터링 업체를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라 퀴진’과 ‘블루리본 케이터링’ 등은 브랜드 행사는 물론, 프라이빗 파티의 케이터링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탈리안 비스트로 ‘일 마레’가 최근 시작한 배달 서비스 ‘일 마레 미니’는 뉴욕에 퍼진 레스토랑 배달 서비스의 전형이다.

    뉴욕풍 레스토랑 배달서비스도 등장

    뉴욕스타일, ‘뉴욕스러움’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다. 일개 도시에서 세계를 느낄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뉴욕이다. 쉬지 않고 탄생하는 스타 셰프 레스토랑, 권위를 인정받는 음식과 레스토랑 비평가들, 아프리칸·쿠반·오스트리안 등 다국적 음식, 오가닉·베지테리안 레스토랑, 동네 카페, 델리숍, 푸드마켓 등 이왕이면 좀더 다채로운 뉴욕스타일이 서울에 소개됐으면 한다. 그 영향으로 우리 고유의 것이 함께 활성화되고 다채롭게 발전한다면 금상첨화 아닐까.

    김선경 씨는 여행 칼럼니스트이자 마케팅·홍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나만의 스타일 여행’이란 여행가이드북의 저자다.

    진짜 뉴욕 패션 엿보기

    명품족 업타운 & 빈티지 다운타운


    낮엔 브런치, 저녁엔 칵테일 한 잔
    뉴욕의 리얼 패션인 스트리트 패션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업타운 스타일과 다운타운 스타일이다. 집세만 해도 웬만한 월급쟁이 연봉만큼 비싸다는 업타운은 명품 브랜드들의 로드숍이 줄줄이 들어선 반면, 다운타운은 편집매장과 빈티지숍, 신인 디자이너들의 숍 등이 모여 있다. 업타운 걸들이 24시간 운영하는 헬스클럽에서 다진 늘씬한 몸매에 진주목걸이, 심플한 ‘Theory’ 팬츠, 샤넬 재킷으로 단정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뽐낸다면, 클럽과 바를 즐겨 찾는 다운타운 걸들은 남이 입던 빈티지를 열렬히 사랑하며 이름 모를 신인 디자이너 숍이나 ZARA, H&M 등에서 구입한 옷을 즐긴다. 다운타운 걸의 패션은 서울 청담동이나 홍대 앞에서 마주치는 여성들의 패션 스타일과 놀랍도록 닮았다.

    하지만 정작 지하철에서 만나는 뉴요커의 패션은 이런 정형화된 룰을 따르지 않는다. 블랙을 사랑하는 뉴요커답게 블랙 슈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남성이 흰색 나이키 조깅화를 신은 언밸런스(!)한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교통사정상 차를 가지고 다닐 수 없다 보니 지하철을 타야 하고, 또 열 블록 이상은 거뜬히 걸어다녀야 하는지라 뉴욕 걸들은 12cm 힐의 마놀로 블라닉 슈즈는 빅백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그녀들이 든 백이 최소 수천 달러에서 최대 수만 달러를 호가하는 명품백인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말이다(백이 여성의 아이덴티티이자 자존심인 것은 역시 뉴욕에서 시작된 트렌드인 듯싶다).

    그녀들은 우리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버는 걸까? 월가에서 근무하지 않는 한 뭐 그리 다를 것도 없다는데, 살인적인 뉴욕 물가 속에서 어떻게 그런 사치가 가능할까?

    정답은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샘플 세일에 있다. 패션업체들의 특가 세일정보를 잘만 찾아다니면 최신 디자인의 명품도 반값 아래로 구입할 수 있다. 센츄리21이나 DSW 같은 상설 할인매장이 성황리에 영업 중인 것을 보면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알뜰살뜰한 뉴요커의 영리한 쇼핑법을 짐작할 수 있다.

    업타운과 다운타운의 이원적 패션스타일과 편안하고 실용적인 패션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뉴욕의 패션은 서울의 패션 경향과 무척 닮았다. 원색적 컬러와 마니아적 스타일을 선호하는 일본 패션이 유럽 지향적이라면 심플한 블랙과 화이트, 자유롭고 활동하기 편한 스타일을 지향하는 서울은 뉴욕과 친하다고 하겠다.

    날로 발전하는 매스컴과 패션잡지 덕분에 더욱 똑똑해진 소비자들은 멀리 태평양 건너까지 한 번의 클릭으로 마크 제이콥스의 백부터 H&M까지 손쉽게 온라인 쇼핑을 하는 시대가 열렸다. 인터넷과 명품 브랜드의 확장으로 한국 국내 브랜드들이 설 자리가 없다며 한탄하는 어느 패션피플을 본 적이 있다. 뉴욕 토박이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 현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일찌감치 아이디어 뱅크인 신인 디자이너들을 키웠고, 명품 브랜드의 유명 디자이너를 초빙해 새로운 라인을 깜짝 개설하는 등 치열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만약 서울의 커리어우먼에게 열 블록 이상 매일 걸어야 하는데 운동화를 신고 회사에 가겠느냐고 묻는다면 과연 몇 명이나 “여벌의 구두를 들고 출근하겠다”고 하겠는가? 사실 뉴욕 여성들보다 서울 여성들이 몇 배는 더 멋쟁이다. 한겨울, 발목까지 오는 두툼한 파카에 장화, 얼굴을 반쯤 가리는 흉측한 모자를 즐겨 쓰고 다니는 뉴요커에 비해 눈비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이힐을 신고 맵시나는 코트에 고운 색 머플러를 매치하는 것이 서울의 보통 멋쟁이기 때문이다.

    뉴욕=황정희 senawhang@hotmail.com

    황정희 씨는 국내에서 10여 년간 패션 에디터로 활동했다. 현재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하며 프리랜서 칼럼니스트로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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