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4

2007.05.08

호날두 vs 램퍼드 “네 발끝에 V 있다”

최고의 테크니션 vs 완벽한 미드필더 … 절정의 기량으로 세계 축구팬 시선 집중

  • 정윤수 축구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입력2007-05-07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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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관왕을 노리는 명문 종가(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4관왕까지 넘보는 신흥 명문(첼시)의 혈투. 두 팀은 앞으로 적어도 두 번, 많으면 세 번 맞붙는다. 리그 우승의 9부 능선까지 이른 두 팀은 5월10일 첼시의 홈구장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경기한다. 5월19일에는 런던의 뉴웸블리 스타디움에서 FA컵 결승전으로 만나고, 만일 두 팀이 챔피언스리그 4강의 늪을 탈출하면 5월24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또 한 차례 맞붙는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짜릿한 경기들, 그 역사와 이면을 몇 개의 키워드로 풀어본다. - 편집자
    호날두 vs 램퍼드 “네 발끝에 V 있다”
    맨유의 영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응원가 중 ‘Come on You reds’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버스비 베이브스는 언제나 나를 감동시켰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을 떠올려봐.’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 한쪽 담벼락에는 ‘뮌헨 메모리얼 클락’이라 불리는 시계가 걸려 있다. 시곗바늘은 멈춰 있고 날짜 또한 1958년 2월6일에 고정돼 있다. 그때 맨유는 유럽챔피언스컵(오늘의 챔피언스리그의 이전 명칭) 8강 2차전 원정경기를 위해 유고슬라비아로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뮌헨에서 비행기 참사가 일어나 8명의 선수를 포함해 15명이 사망했다. 당시 감독이 맷 버스비. 응원가에 나오는 바로 그 이름이다.

    참혹한 사고였지만 이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버스비 감독은 ‘비운에 죽은 선수들을 위해 산 자의 몫을 해야 한다’는 아내의 설득에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보비 찰튼을 비롯한 선수들과 북아일랜드의 전설 조지 베스트 같은 신예들을 불러 영광의 길을 모색했다. 많은 팬들이 ‘버스비 베이브스’를 열렬히 응원했다. ‘버스비 베이브스’ 맨유는 드디어 1968년 5월29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챔피언스컵 결승전에서 포르투갈 벤피카를 꺾으며 우승했다.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로 불리는 웸블리 스타디움은 5년여의 공사 끝에 ‘뉴웸블리’ 스타디움으로 탈바꿈했다. 바로 그 성지에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지난날 ‘버스비 베이브스’가 이뤘던 영광을 5월19일 첼시와의 FA컵 결승전에서 재현하려 한다.

    첼시의 복수



    런던을 연고로 하는 첼시는 103년의 역사 동안 공식 엠블럼을 다섯 차례 바꿨다. 최초의 엠블럼은 첼시의 연금수령자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것으로 50년 가까이 썼는데 1952년 부임한 테드 드레이크 감독이 ‘연금수령자’ 대신 ‘더 블루스’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혁신적인 이미지를 원해 잠시 새 디자인을 썼으나 클럽 이니셜을 짜맞춘 것이어서 오래 사용하지 못했다. 53년 마침내 첼시의 역사를 자랑하는 엠블럼이 만들어졌다. 첼시 자치구 문장에서 따온 이 엠블럼은 33년 동안 사용됐는데 위엄 있는 사자, 강건한 지팡이, 아름다운 장미, 축구공이 결합된 것이었다.

    그러다 엠블럼은 1986년 또 한 번 바뀌게 된다. 이 무렵은 첼시가 그라운드 안팎에서 좌충우돌하던 시기로, 팀의 간판선수들이 팔려나갔고 성적은 추락했으며 하위 디비전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급기야 홈구장 스탬퍼드 브리지의 소유권을 둘러싼 법정분쟁이 부동산 시장의 붕괴와 맞물리면서 팀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러한 시기에 네 번째로 엠블럼까지 바꿨지만 팀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2005년. 팬들은 첼시 역사 100주년을 맞아 옛날 디자인으로의 복귀를 간청했고 드디어 지금 사용되고 있는 엠블럼이 2005년 5월부터 등장했다. 첼시가 프로구단으로서 확실한 면모를 갖추고 그에 상응하는 성적까지 낸 1950년대 엠블럼을 바탕으로 새롭게 다듬은 오늘의 엠블럼은 호세 무리뉴 감독과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전통 명문은 아니지만 부침을 거듭해 오늘에 이른 첼시의 흥망성쇠가 이번 시즌에 달린 것이다.

    호날두 vs 램퍼드 “네 발끝에 V 있다”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 한쪽 담벼락에 걸려 있는 ‘뮌헨 메모리얼 클락’. 첼시의 엠블럼(오른쪽).

    퍼거슨의 욕망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축구장에 미디어가 깊숙이 개입한 뒤로 각 구단의 명장은 선수를 지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 자주 입을 열게 됐는데 그 대상은 늘 라이벌 팀의 감독이다.

    퍼거슨 감독은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4월22일 맨유 대 미들즈브러의 경기 막판 이동국에 대한 존 오셔의 태클은 결코 페널티킥이 아니며 주심은 올바른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못박았다. 퍼거슨 감독이 이를 특별히 언급한 것은 첼시의 무리뉴 감독이 ‘음모론’을 펼쳤기 때문. 리그 우승을 향한 8부 능선에서 뉴캐슬과 득점 없이 비기는 바람에 맨유의 한 걸음 뒤에 머물게 된 무리뉴 감독은 “프리미어리그에는 맨유의 상대 팀에 페널티킥을 주지 않는 법칙이 있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1986년 부임해 20여 년 동안 세계 축구사를 새로 써온 ‘Sir’ 퍼거슨 감독은 그러나 좀더 엄밀한 의미에서 맨유 종가 부활을 위해 자신과 선수들에게 다짐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무리뉴의 도박

    첼시의 호세 무리뉴 감독은 축구계의 순수 혈통이 아니다. 선수 경험도 전무. 그라운드에 서본 경험이라고는 명장 보비 롭슨이 FC포르투의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통역사를 한 것이 전부였다. 때로는 이와 같은 ‘아웃사이더 기질’이 한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는 법. 체육 교사이자 통역사였던 무리뉴는 롭슨 밑에서 축구를 배웠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거쳐 잉글랜드로 입성했다. 그는 슈퍼스타와 감독들이 즐비한 유럽 축구계에서 단 한 번도 선수 경험이 없으면서 최고 자리에 오른 자신을 ‘이방인’이자 독보적인 존재로 의식한다. 그것으로 인해 첼시는 리버풀이나 아스널을 대신해 맨유와 맞서는 강팀이 됐다.

    그러나 또 한 명의 이방인이 있다. 그 역시 축구선수 경험이 없으며 잉글랜드 혈통이 아니라 러시아 출신이고, 첼시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다름 아닌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다. 문제는 구단주와 감독, 즉 아브라모비치와 무리뉴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무리뉴는 파격적인 발언과 행보로 늘 관심의 초점이 됐다. 그것이 이따금 먹혀들었고 그만큼 성적도 좋았다. 그런데 그의 축구는 구단주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브라모비치는 예측불허의 화려한 스타일을 원했으나 무리뉴는 단단하게 내실을 다지는 방식을 추구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자주 충돌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무리뉴 감독이 첼시를 떠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잡초류’의 대표자인 무리뉴 감독이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비록 상대가 강력한 구단주라 해도 말이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양 팀이 벌이는 흥미진진한 연속극에는 수많은 주인공이 있다. 유년기부터 맨유에서 성장해 축구 인생의 모든 것을 바친 라이언 긱스, 잉글랜드 축구의 캡틴으로 떠오른 첼시의 존 테리, 현대 축구의 맨 앞에서 달리고 있는 맨유의 웨인 루니, 공격형 미드필더가 갖춰야 할 모든 것에 더해 남성미까지 갖춘 첼시의 프랭크 램퍼드 등.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다. 그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극심한 야유 대상이 됐다. 8강전 때 같은 팀 소속인 잉글랜드의 루니가 A매치 2경기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는데 호날두는 그때 비신사적인 윙크를 했다는 이유로 줄곧 야유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포르투갈 선수의 사타구니를 밟은 루니에게 있었다. 더욱이 독일월드컵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각국 선수가 경기력이 아니라 연기력으로 출전했다는 점이었다. 지금 세계 축구는 안전하면서 동시에 거친 길로 가고 있다. 모험을 하는 감독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라운드의 상식을 깨는 선수는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점 때문에 호날두에게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 걸출한 신인들과 새로운 기술, 획기적인 전술과 예측불허의 작전. 이러한 것에 의해 현대 축구는 새 길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당장 맨유의 호날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역 최고의 테크니션인 그는 언제나 예측불허의 드리블을 감행하고 그 놀라운 질주 속에서도 눈부신 기술을 선보인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기술이 카메라를 의식한 쇼맨십이 아니라 골을 향한 욕망이 빚어낸 아름다운 선택이라는 점이다. 현대 축구는 호날두의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글로컬라이제이션

    호날두 vs 램퍼드 “네 발끝에 V 있다”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사진 왼쪽)과 첼시의 호세 무라뉴 감독.

    ‘세계화’라는 말이 있기 전부터 축구는 세계화됐다. 1980년대 이후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문호를 개방하면서 유럽은 세계 축구를 주도하게 됐고 지금은 잉글랜드가 그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전 세계 뛰어난 선수들이 유럽으로 모이고 유럽 명장들이 세계 각국의 축구를 지도한다.

    이 흐름에 세계를 하나로 묶는 미디어와 인터넷이 결합했다. 이제 맨유와 첼시는 잉글랜드의 어느 지역 이름이 아니라 전 세계 젊은이들의 문화 아이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은 다르지만 비슷한 세대라면 언제든 대화가 통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실현되는 세계화 속에서 축구는 단연 대표적인 예가 된다. 맨유와 첼시가 벌이는 시즌 막판의 혈전은 그런 점에서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가 된다. 그 핵심은 강력한 지역성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맨유와 첼시는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지역이자 강렬한 속도와 아름다운 스타일을 선망하는 세계인의 문화적 상징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널리 번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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