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4

2007.05.08

아기곰 크누트 “연예인 인기 안 부럽네”

어미에게 버림받은 뒤 세간의 관심 커져 슈퍼스타 등극 … 관람객 북적, 캐릭터 상품 봇물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07-05-02 1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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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곰 크누트 “연예인 인기 안 부럽네”

    ‘슈타이프’가 선보인 크누트 인형.

    화창한 4월 어느 날, 베를린 동물원 앞은 동물원 구경을 나온 인파로 북적였다. 요즘 독일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북극곰 크누트(Knut)를 보러 온 사람들이다.

    크누트는 지난해 12월5일 이 동물원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의 어미곰 토스카는 크누트와 또 한 마리의 새끼곰을 순산했다. 30년 동안 아기곰이 태어나지 않았던 베를린 동물원으로서는 큰 경사였다. 그러나 토스카가 새끼들을 거두지 않아 한 마리가 나흘 만에 죽었고 크누트는 심한 열병을 앓았다. 그냥 두면 죽는 것은 시간문제. 동물원은 크누트를 인큐베이터에 넣고 44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크누트 전담 사육사인 토마스 되르플라인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크누트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동물원 지극정성으로 죽을 위기 넘겨

    “눈도 뜨지 못하고 몸에 털도 없는 크누트는 마치 초라한 두더지 같았죠. 며칠 후 눈을 떴어요. 파란 눈으로 저를 빤히 쳐다보는데, 그건 말이죠….”

    크누트와의 첫 눈맞춤이 무척 감동적이었는지 되르플라인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810g으로 태어난 크누트는 3월15일 신체검사에서 8.2kg 판정을 받고 세상에 공개됐다. 크누트가 세상 사람들과 처음 만난 3월22일, 전 세계 50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와 사진 공세를 퍼부었다. 다음 날에는 수천 명의 관람객이 크누트 앞으로 몰려들었다. 생후 15주밖에 안 된 북극곰이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등극한 것이다.

    어미에게 버림받은 크누트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독일의 대중잡지들은 크누트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예의주시했다. 베를린 지역방송 RBB는 동물원의 협조 아래 크누트의 성장과정을 녹화해 방영했고, 지역 신문들은 이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외국 언론까지 크누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3월 들어서부터다. ‘뉴욕 타임스’는 3월21일과 23일 크누트를 둘러싼 ‘동물보호’ 논쟁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는 야생의 맹수인 북극곰을 인간이 키우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관한 논란이었다. 동물의 권리 보장을 주장하는 이들은 “인간에게 키워진 동물은 훗날 자연으로 돌아간다 해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며 “크누트를 강아지처럼 키우기보다 차라리 안락사시키는 게 낫다”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쏟아내 전 세계 누리꾼을 분노하게 했다.

    이처럼 크누트에 세계적인 관심이 쏟아지자 독일 정부도 이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연방환경부 장관 지그마르 가브리엘 장관은 정부가 앞으로 크누트에 대한 일체의 보육권을 행사할 것을 맹세했고, 2008년 독일 본에서 열릴 ‘국제 종 보존학회’의 상징 캐릭터로 크누트를 내세울 것을 약속했다. 독일 국영방송인 ARD는 RBB에서 제작한 크누트의 성장 모습을 3월24일부터 매주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첫 회부터 100만여 명의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들였다.

    음악인들도 나섰다. 크누트를 주제로 한 노래를 만들어 크누트의 귀여운 행동을 찬양했다. 크누트 캐리커처도 선보였다. 크누트를 주인공으로 삼은 컴퓨터 게임도 개발됐다. 테디베어로 유명한 인형회사 ‘슈타이프’는 크누트 인형을, 식품회사 ‘하리보’는 크누트 모양 사탕을 출시했다. 그 밖에도 크누트의 귀여운 모습을 담은 티셔츠, 엽서, 비디오, 머그컵 등이 제작돼 인기리에 팔려나가고 있다. 이처럼 크누트는 단시간에 독일 소비시장을 뒤흔드는 ‘파워 캐릭터’로 급부상했다. 이를 반영한 듯 유명 라이프스타일 잡지 ‘배니티 페어’는 5월호 표지모델로 크누트를 싣기도 했다.

    야성 탓 인기 오래 못 갈 것 ‘전망’

    크누트가 누리는 폭발적인 인기는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그리 오래갈 것 같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크누트가 언제까지나 ‘귀여운 아기곰’으로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사람은 사육사 되르플라인이다.

    매일 크누트와 놀아주는 그는 요즘 들어 크누트의 힘이 부쩍 세진 것을 느낀다. 크누트는 그의 손을 입에 문 채 머리를 힘껏 흔든다. 이는 북극곰이 먹잇감을 잡을 때 흔히 쓰는 방법이다. 또 살금살금 뒤로 다가오거나 뛰어오르고 사육사의 다리를 입으로 무는 등의 행동을 하는데, 모두 먹이사냥과 관련된 전형적인 북극곰의 몸동작이다. 크누트 역시 어쩔 수 없는 한 마리 맹수일 뿐이다. 크누트가 자식처럼 여겨져도 언젠가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되르플라인은 잘 알고 있다.

    여전히 독일 사람들은 동물원 앞에 기꺼이 줄을 서고, TV로 크누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크누트를 캐릭터로 활용한 상품은 시장에 나오기가 무섭게 팔리고 있다. 모두가 크누트의 귀여운 모습을 즐거워하며 기꺼이 소비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무엇일까? 크누트라는 하나의 생명체일까, 아니면 그에 관한 이미지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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