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1

2007.04.17

우린 우려한다, 수상한 밥상을

뼈 쇠고기·유전자변형식품 안전성 확보 장치 시급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7-04-11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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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우려한다, 수상한 밥상을
    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유전자변형식품(GMO)은 물론 방사선 검역 농산물, 농약을 과다하게 사용한 식품까지 무차별적으로 우리 식탁에 등장할 우려가 커졌다. 게다가 개방경제란 단순한 해외 오염식품의 위협을 넘어 조류독감이나 브루셀라, 광우병 등 치명적인 전염병의 문턱까지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 안전 문제가 예전보다 훨씬 심각하고 광범위해졌으며 ‘어떻게 안전한 식탁을 유지할 것인가’가 소비자들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번 FTA 체결로 인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역시 광우병의 전파 경로로 의심받는 ‘뼈 쇠고기’와 우리에게 GMO로 알려진 LMO(유전자조작생물체)의 유입에 따른 생태계 교란이다. 미국산 뼈 쇠고기와 유전자 조작식품의 안전성 여부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차례 환경단체들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 주장이 뚜렷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한계로 지적돼왔다.

    “미국은 전체 도축소 0.1%만 광우병 검사”

    그러나 위험성만큼은 명확하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국장은 미국산 뼈 쇠고기의 수입은 저렴한 가격으로 국민의 관심을 끌 게 분명하지만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은 전체 도축소의 0.1%만 광우병 검사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우리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유무를 확인할 수가 없다”며 “뼈 있는 쇠고기 수입은 국민 건강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미국산 뼈 쇠고기를 개인의 취사선택에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소비자가 개인 안전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외면하더라도 한번 유통되기 시작하면 마치 중국산 김치가 한국을 정복했듯 시나브로 한국 식탁을 장악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업과 학교 등의 급식에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쓰일 가능성이 높다.



    임지애 환경운동연합 생명안전본부 국장은 “국내에서 농축산물의 이력추적제와 음식점에서 쓰이는 쇠고기의 원산지 표시제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는 것이 문제다. 시중에 유통되는 쇠고기가 미국산인지 아닌지를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농축산물의 원산지 표시제를 매장 면적 100평 이상인 업소에 한해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음식을 다루는 모든 매장, 동네 김밥집, 학교급식소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또한 원산지 표시제를 위반한 경우 강력한 행정조치도 필수적이다.

    우린 우려한다, 수상한 밥상을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4월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미 FTA 협상 반대 집회를 열고 광우병으로부터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LMO 역시 쇠고기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국내에서도 유전자 콩을 이용한 두부 파동 등 이미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위험성에 대해 많은 국민이 인식하고 있다.

    특히 이번 FTA 협상에서 LMO에 대한 수입규제 완화를 미국 측이 요구하고 나서면서 파장이 커졌다. 미국에서 안전성이 검증된 농산물이라면 한국으로의 수출 시 수입승인 절차와 안전검사를 생략하자고 요구한 것이다. 한미FTA소비자대책위원회 이재욱 위원장은 “검역 관련 법체계에 대한 정비와 검역 주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자세가 우리 정부에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말한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검역만큼은 관세 철폐와 무관하게 어떤 상황에서라도 안전장벽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LMO 역시 과학적 검증이 진행 중인 논란거리지만, 우리 소비자들이 미국 소비자들이 처한 상황과 다른 문제는 바로 식습관 때문.

    “미국에서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콩이나 옥수수는 대부분 가축 사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간이 섭취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문재현 ‘학교급식조례제정을 위한 공동본부’ 대표)

    잡곡에 내장까지 먹는 식습관 때문에 더 위험

    이는 쇠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인은 우리처럼 뼈와 내장까지 먹지 않고 살코기만 먹는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 따라서 국내 생명 관련 단체들이 이번 FTA협상을 놓고 “섬유와 자동차를 팔아먹기 위해 환경주권을 포기한 협상이다. 이번 협상 자체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개방경제 속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연구와 투자가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은 철저한 검역으로도 모자라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해왔다. 이것도 모자라 최근 다시 규정을 바꿔 12~17개월 연령의 소로 수입정책을 바꿨다. 이는 일본 내에서 도축되는 모든 소에 대한 광우병 검사를 통해 국제수역사무국(OIE)보다 뛰어난 과학적 근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밖에도 소비생활 안전과 관련한 한미 양국간의 위해정보 공유 및 문제해결을 위한 집행 협력과 공조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표시 관련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한미FTA소비자대책위원회는 지난해 광우병 위험에 이어 미국산 쇠고기에서 발암물질로 알려진 다이옥신을 검출해 미국 당국의 불성실한 검역을 입증한 적이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갖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신이 단순하지 않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대책위 이재욱 위원장은 정부가 국민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면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보조를 맞춰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수입 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올 경우 이를 강력히 거부하겠다는 견해를 유통업체들에 통보했다. 그러자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변한 업체가 5개 업체에 달했다. 이처럼 원산지 표시제와 이력추적제 등 소비자 요구사항을 공급자에게 강제하고, 이를 정부가 돕는다면 국민의 안전은 지켜지리라고 본다.”

    일본의 철저한 검역

    먹을거리 결벽증 … 혀 내두를 수입 조건


    일본은 왜 한국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체결할 수 없었을까.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농업 및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 가지 이유를 끄집어낸다. “먹을거리에 결벽증이 있는 일본 국민이 미국 농축산물이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FTA 환경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FTA 협상의 전제조건은 사실상 농축산물의 완전 개방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전 총리는 6년 재임기간(2001~2006년) 국민에게서 꾸준한 지지를 얻었지만, 먹을거리 문제 때문에 정치적 시련을 겪어야 했다. 2005년 12월, 2년 만에 재개된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광우병 위험 부위인 등뼈가 발견됐기 때문. 수입 재개 한 달 만에 미국산 쇠고기는 일본에서 쫓겨났고, 일본 시민사회는 통상압력에 굴복한 고이즈미의 ‘저자세 외교’를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미국의 거센 압력에 부딪혀 불과 6개월 만에 일본은 다시 쇠고기 시장의 빗장을 열어야 했다. 그런데 일본이 내세운 전제조건에 미국의 축산 관계자들조차 “우리가 손해 보는 장사”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006년 당시 일본이 내세운 수입 재개 조건은 △일본이 미국 내 식육처리시설 35곳을 직접 사찰할 수 있을 것 △미국은 식육처리 작업 매뉴얼을 정비하고 직원들에게 일본 수출조건을 철저히 주지시킬 것 △미국 농무부가 행하는 무작위 추출검사에 일본 검사관이 입회할 것 △일본 도착 시 공항 등에서 통관검사를 다시 할 수 있게 할 것 등이다. 심지어 미국으로 건너간 일본 검사관들은 마치 핵시설을 사찰하듯 육류가공시설 등을 조사해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고 한다. 먹을거리 시장을 미국에 고스란히 내주게 된 우리로서는 부러움을 넘어 시기심까지 생길 만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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