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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없는 우리당, 번지점프 하다

100년 정당은커녕 ‘권불삼년’ 끝없이 추락… 활로 막막한 암초에 걸린 난파선

  • 헤럴드경제 이태경 기자 unipen@heraldm.com

날개 없는 우리당, 번지점프 하다

날개 없는 우리당, 번지점프 하다

2월6일 김한길 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 23명이 국회에서 탈당을 공식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장면1= 2004년 4월15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 청과물시장 내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중앙당사. 4·15총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당시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다. 대승이었다. 뚜껑을 연 결과 열린우리당 152석, 한나라당 121석. 과반수 의석을 훌쩍 넘겼다. 창당 5개월 만에 이룬 쾌거였다. 정 의장은 “새 정치의 서막”이라며 ‘100년 정당’을 국민 앞에 약속했다. 여흥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 장면2=2007년 2월6일 오전 9시30분. 국회 기자회견장에 23명의 우리당 의원이 들어섰다. 김한길 전 원내대표,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 등 불과 며칠 전까지 지도부였던 의원들의 얼굴이 곳곳에 보였다. 고개는 들지 못했다. 이들은 “우리당 중심의 국민통합신당 창당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3년 3개월여 만에 사실상 분당되는 순간이었다.

동화와 달리 끝내 백조가 되지 못한 ‘미운 오리 새끼’. 화려하게 돛을 올렸지만 종착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바다 속으로 침몰한 비운의 ‘타이타닉’. 이런 회한, 절망의 이미지와 가장 잘 연결되는 집단이 바로 ‘열린우리당’이다. 100년 정당의 꿈은 정말 물거품이 된 것일까. 암초에 걸린 채 허우적거리는 우리당의 현재 모습에선 좀처럼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심해(深海)로 가라앉을 운명처럼 보인다.

탄핵 역풍으로 원내 1당 차지

2003년 11월 창당한 우리당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불과 47명 현역의원으로 출발했지만, 창당 기치인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개혁’에 상당수 국민이 박수를 보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뒷배’도 큰 힘이 됐다.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 등 이른바 ‘천·신·정’을 중심으로 우리당은 신바람을 냈다.

제1당이자 집권 여당이 된 것은 탄핵 역풍 덕분이었다. 하지만 108명의 초선의원을 탄생시킨 탄핵 효과는 우리당의 비정상적(?)인 출발을 가져왔고, 이는 훗날 태생적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됐다.

날개 없는 우리당, 번지점프 하다

2003년 11월11일 열린우리당 중앙당 창당대회 모습.

4·15 총선을 두 달도 채 안 남긴 2004년 2월24일. 노 대통령은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대통령이 선거중립 의무를 위배했다며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3월9일 국회에서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하지만 감성 정치에 익숙한 노 대통령과 우리당 의원들에게 탄핵은 결과적으로 역전의 기회가 됐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전국에서 일었고, 여론은 반전됐다. 결국 4·15 총선에서 우리당은 과반수(152석)를 차지한 원내 1당이 됐으며 민주당은 10석도 가지지 못한 군소정당으로 전락, 권불십년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총선 압승의 기쁨이 너무 앞섰던 탓일까. 우리당 의원은 오만했고 ‘개혁 대 실용’이라는 정체성 논란이 불거졌다. ‘개혁 대 실용’ 논란은 ‘난닝구와 빽바지’라는 감정 섞인 비속어 논쟁으로 비화되면서 참정연, 안개모, 국참연 등 이념 스펙트럼별로 분열되는 결과를 낳았다.

2004년 12월 240시간의 연속 의원총회를 통해 민생과는 동떨어진 국보법 폐지, 과거사법, 사학법, 언론개혁법 등 4대 개혁입법을 전면에 내걸었으나 좌절되면서 큰 상처를 입었다. 우리당의 개혁 동력은 급속도로 약화됐다.

승부수 노무현 대통령 극적 드라마 연출하나

정책 콘텐츠는 더욱 빈약했다. 경제 문제에서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반대’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에 앞장서면서 ‘반시장주의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었다. 급기야 선거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2004년 총선 이후 총 5차례의 국회의원 선거 등을 비롯해 크고 작은 선거 40차례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40전(戰) 0패(敗)에서 알 수 있듯, ‘백전백패’ 정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러는 동안 ‘점수’는 깎일 대로 깎였다. 17대 총선 직후 50% 가까이 치솟았던 지지율은 2년여 만에 10% 전후로 추락해 ‘식물 정당’으로 전락했다.

극도의 위기의식을 느낀 우리당 내에서는 또다시 신당 창당과 탈당론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탈당론은 처음엔 바늘구멍만하더니 어느새 둑을 뚫을 수 있을 정도의 큰 ‘구멍’으로 커졌다.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김한길 등 창당 주역마저 연일 “우리당의 정치실험은 실패했다”는 자기 부정을 쏟아냈다. ‘고양이 방울을 누가 다느냐’가 문제였지 탈당은 대세였다.

정계개편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다급해진 의원들은 당을 뛰쳐나갔다. ‘김한길·강봉균 그룹’의 집단탈당으로 정점을 이뤄 어느덧 30명이 됐고, 그 결과 우리당은 원내 2당으로 추락했다.

탈당파와 우리당 잔류파로 나뉘면서 우리당이 구상 중인 범여권 정계개편 앞날도 불투명하게 됐다. 유일한 성과는 현재 ‘김근태 계’와 당 사수파 중심의 우리당, 김한길 의원 중심의 중도보수신당, 천정배 의원 중심의 개혁신당 등으로 큰 줄기가 엮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벌써 정운찬, 문국현, 박원순 등 외부 후보 영입을 위한 치열한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범여권 인사의 영입을 통합신당의 주도권 잡기 교두보로 여기는 듯하다. 물론 그럴듯한 얘기도 나돈다. 탈당파와 우리당 잔류파는 ‘같은 뿌리’로, 대선 직전에 다시 합친다는 시각이다. 이른바 ‘위장이혼’ 의혹이다.

이런 가운데 노 대통령의 탈당은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어쨌든 노 대통령이 범여권 정계개편의 중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당이 ‘승부사’ 노 대통령의 지휘 아래 이번 대선에서 다시 한 번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할지, 아니면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지 주목받는 이유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고 했던가. 우리당은 3년간 그야말로 정상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날개 없는 새’다.



주간동아 2007.02.27 574호 (p52~53)

헤럴드경제 이태경 기자 unipen@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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