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4

2007.02.27

옷, 은밀한 감성을 입는다

후보 가치관 표출과 지지층 유인 … 몸으로 표현하는 화려한 호소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7-02-14 14: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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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인사의 옷차림은 그의 지지층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부시 미국 대통령, 루아얄 프랑스 대선 후보에서 모델 패리스 힐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입은 옷은 그들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를 잘 드러낸다. 그뿐 아니라 어떤 정치·경제적 계층에 호소하는지도 나타낸다. 때로 스타일은 그의 ‘혀’를 배반해 ‘은밀한’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의 대선후보로 떠오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각 대선후보 진영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의 대통령은(남성의 경우) ‘제일모직, LG패션의 슈트와 금강제화 구두 등 국내 브랜드를 부인이 골라주는 대로 입은 사람’이 될 확률이 100%다. 또 모든 후보들은 넥타이 선물을 ‘무척’ 많이 받아 그중에서 선택해 착용한다.

    그러나 TV나 신문 등을 통해 보여지는 대선후보들의 슈트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제외하고 완벽한 피팅을 보이고 있다. 1급 재단사가 고급 소재로 맞춤했거나, 최소한 고급 기성복을 몸에 맞도록 세심하게 재가봉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을 만하다.

    한 대선후보가 “서울 시내 한 양복점의 재단사가 집으로 찾아와 치수를 재간다”고 한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했다. 또 대부분 “외제 브랜드는 입지 않지만 팔이 길어 국내 기성복은 잘 맞지 않는다”고 대답한 점도 특이하다.

    사실 명품 브랜드 담당자들 사이에서 대선후보들은 VIP 단골로 거론되기도 한다. 대선후보가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덕에 정치 지망생과 기업인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기도 한다고. 대선후보들이 ‘파워 드레서’로 떠오른 것이다.



    베스트 드레서 박근혜, 가장 무심한 김근태

    남성 대선후보들은 “외모에 신경 쓴다”는 말을 들을까 봐서인지 모두 ‘부인’을 스타일리스트로 꼽는다. 그러나 완벽한 피팅과 스타일링, 노출된 슈트의 수 등으로 볼 때 스스로도 패션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점퍼 차림 등 캐주얼에서 나타나는 전형성-지나치게 밝고 젊은 컬러 선호 등-은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의 분석 등을 종합해보면 ‘베스트 드레서’는 역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박 전 대표는 여성임을 감안하더라도 스타일이 분명하며, 주변과 정치 상황에 따라 옷을 매우 잘 활용한다. 박 전 대표의 모든 옷과 목걸이, 헤어스타일은 한결같이 긴 목을 강조하는 데다 ‘블랙 · 화이트’가 주조여서 고고함을 연출한다.

    또 남성 의원들 사이에 있을 땐 여성스러운 플레어스커트-외국 여성 정치인들에게선 볼 수 없는 아이템-를 입고 어깨와 허리를 약간 숙인 모습을 보여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반면 정책 발표나 강연을 할 때는 외국 여성 앵커들이 즐기는 화려한 실크셔츠에 재킷을 코디한다. 그래서 한 이미지 전문가는 “박 전 대표는 정치인으로는 너무 많은 옷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옷차림에 제일 ‘무심’한 대선후보는 김 전 의장이라는 평이다. 김 전 의장 측 관계자도 “3년 전에 양복점에서 맞춘 옷을 가져가 기성복 매장에서 구입하며, 구두도 1년 넘어 허름한 것을 신고 다닌다”고 설명했다. 그가 입는 빨간 풀오버, 빨간 넥타이, 빨간 머플러는 ‘파격’이라기보다 그가 옷에 관한 한 주변의 말을 그냥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언제라도 남성 패션쇼에 올라도 될 만큼 완벽하다. 이 전 시장이 즐겨 입는 흰색 드레스셔츠와 얇게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짙은 색 슈트는 빈틈없는 최고경영자 (CEO)로서의 능력과 보수적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는 “옷에서 카리스마가 발산된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한 기자가 그의 코트를 칭찬하자 “영국 버버리 아웃렛에서 150달러를 주고 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손 전 지사의 ‘스카이블루’ 셔츠는 서구에서 그러하듯, 실용적이고 대중친화적인 노선으로 읽힌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방송인 출신이어서 베스트 드레서로서 좋은 조건을 갖췄음에도 ‘아쉽다’는 평이 많았다. 기대가 크기 때문일까. 정 전 의장의 재킷들은 3버튼, 1버튼, 2버튼 등으로 유행을 따르고 있지만 넥타이 선택, 슈트 컬러와 스타일 감각은 시간이 갈수록 보수화해 에너제틱해 보이지 않는다. 가르마를 자주 바꾸는 것이 독특하다.

    사진작가 김용호씨는 “대선후보들의 모습을 TV나 방송으로 자주 보게 되지만, 이상하게도 카메라, 즉 정면을 응시한 사진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눈을 내리깔거나 다른 정치인을 보고 있다. 선거용 포스터에서도 시선은 렌즈 밖을 보고 있다. 이는 어쩐지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서 “기자들의 카메라, 즉 국민을 향한 시선에서 당당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최현숙 동덕여대 교수(의상학)는 “대선후보들의 패션도 물론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유권자들에게 즉각적이고 감성적으로 전달되므로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이어서 내면의 것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진실’은 그들의 입은 옷에도 담겨 있다.

    옷, 은밀한 감성을 입는다
    이명박

    뛰어난 체형에 언제나 반듯한 자세와 적극적인 표정을 유지한다. 이는 본인이 평소 자기관리 면에서 부지런했을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슈트를 착용한 그의 다양한 모습은 조화를 이룬다. 특히 타이를 중심으로 한 트라이앵글 존의 경우, 힘이 있는 인상을 전달하는 줄무늬의 레지멘털 타이를 비롯해 좋은 취향을 보여준다. - 최현숙 동덕여자대학교 의상학과 교수

    화려한 신화를 이룬 기업가답게 중후한 중년 신사의 모든 스타일을 절대로 튀지 않게 소화해낸다. - 김용호 사진작가

    소문난 베스트 드레서로, 그리 크지 않은 체형을 의상으로 잘 커버한다. 하지만 회색 바지에 빨간 점퍼는 ‘워스트’였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캐주얼에 대한 지식이 없고 훈련이 돼 있지 않은데,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나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진을 제안한다. 워싱되지 않은 블랙진, 짙은 블루진이라면 무난하다. - 박윤수 패션디자이너

    이 전 시장은 다소 무서워 보인다. 그의 능력은 온 국민이 알고 있으니 도전적 인상보다 포용력 있게 보이는 게 중요하다. 강렬한 레드톤 넥타이보다 골드, 겨자색 넥타이와 조직감 있는 화이트, 핑크 셔츠를 추천한다. - 서은영 스타일리스트


    옷, 은밀한 감성을 입는다
    박근혜

    박 전 대표는 지금까지 ‘따뜻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박 전 대표 패션의 다양함과 흥미로운 디테일이 주는 즐거움을 누린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헤어스타일은 어머니의 이미지를 계승하기보다 자신을 더욱 부각해야 할 시점이라는 점에서 조신한 공주형보다는 활동적인 스타일이 더 좋아 보인다. 전문성을 가진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상하 동일 색상의 중간 길이 스커트 정장이나 바지 정장이 적절하다. - 최현숙 동덕여자대학교 의상학과 교수

    옷에 변화가 너무 많은 편이다. 박 전 대표는 여성성이 강점이라 생각하므로, 이전의 헤어스타일에 호감을 갖고 있다. 목선이 강조되는 의상은 우아해 보이며 중저음의 음성은 강직한 느낌을 준다. 5인의 대선후보 중 가장 포토제닉하다. - 김용호 사진작가

    패션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틀에 박힌 듯’한 인상을 주므로 트렌드인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스타일을 제안한다. 헤어스타일의 변화는 매우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 박윤수 패션디자이너

    박근혜 전 대표의 틀어올린 헤어스타일은 등산복을 입었을 때조차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그러나 단발머리의 박 전 대표는 드라마에서 작은 배역을 맡은 탤런트 같다. 브라운과 베이지가 잘 어울리고, 블랙 & 화이트는 강한 인상을 준다. - 서은영 스타일리스트


    옷, 은밀한 감성을 입는다
    손학규

    균형 잡힌 체격에 자세가 당당하다. 웃는 모습도 편안하다. 그래서인지 ‘부잣집 도련님 출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지난 ‘대장정(?)’ 동안 수척해진 모습과 텁수룩한 수염(기르고 싶어도 그렇게 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이 연일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균형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최근 유행하는 울과 실크혼방에 약간 광택이 나는 소재로 된 슈트를 착용할 때는 신중을 기하면 좋겠다.- 최현숙 동덕여자대학교 의상학과 교수

    푸른 셔츠에 핑크 넥타이 등으로 대선후보들이 함께 있을 때 단연 시선이 꽂힌다. 그러나 흰색 드레스셔츠 차림으로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자신감을 보여주면 좋겠다.- 김용호 사진작가

    강한 컬러의 셔츠와 타이로 젊고 활기찬 인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데, 그럴수록 컬러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블랙, 네이비, 그레이에 은은한 줄무늬 소재를 선택하고 이너웨어는 한 톤 낮아야 한다. 현재보다 약간 타이트한 재킷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 박윤수 패션디자이너

    양복은 소재가 중요하다. 밀도가 너무 높아 광택이 심한 소재는 자칫 은갈치처럼 번쩍이므로 가벼운 인상을 줄 수 있다. 손학규 전 지사는 편안한 마스크인 반면 샤프해 보이지 않을 수 있는데, 이는 스타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 서은영 스타일리스트


    옷, 은밀한 감성을 입는다
    김근태

    점잖고 단아한 선비 이미지를 구성하는 그의 옷차림은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색상과 스타일을 가진 일련의 정장이다. 간혹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색상의 조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 최현숙 동덕여자대학교 의상학과 교수

    학자적 풍모를 풍기지만 헤어스타일은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검정바지와 구두에 회색 양말은 잘못된 코디로 옥의 티. - 김용호 사진작가

    정치인과 예술인을 혼합한 듯한 매력을 가졌다. 눈빛은 날카롭고 쿨한데 부드러운 마스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나이보다 ‘올드’해 보인다. 재킷이 힙을 덮지 않도록 하고, 칼라 라펠이 좁은 원버튼을 선택하면 훨씬 세련돼 보일 것이다. - 박윤수 패션디자이너

    경선에 나선 후보들 사이에서 언제부터 빨간 넥타이가 유행했는지 궁금하다. 진취적 인상을 심어주겠다는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붉은색 넥타이만 열심히 맨다. 김 전 의장은 강한 이미지가 필요한 마스크지만, 주황이 섞인 붉은 넥타이는 오히려 더 가벼워 보인다. 패턴도 멋지지 않고 셔츠 컬러도 일정치 않아 주는 대로 입은 것처럼 보인다. 믿음직스런 짙은 감색을 추천한다. - 서은영 스타일리스트


    옷, 은밀한 감성을 입는다
    정동영

    슈트 차림에서 익숙하게 보여지는 깔끔한 이미지, 산뜻한 색상의 점퍼, 콤비 스타일 등 세련된 모습이 매우 좋다. 그런데 정치권에 들어온 지 수년이 되다 보니 정치인 코드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다시 ‘젊은 오빠’로 우리에게 다가오길 바란다. - 최현숙 동덕여자대학교 의상학과 교수

    포멀한 슈트, 셔츠와 넥타이를 스스로 코디하는 능력이 있어 보인다. 단, 최근엔 자신의 장점과 스타일을 살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듯하다. - 김용호 사진작가

    스마트하고 열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컬러 코디네이션이 탁월해 보인다. 컬러풀한 아이템도 무난할 듯하며 권위적인 의상 선택을 하지 않아야 더 젊어 보일 것이다. - 박윤수 패션디자이너

    정 전 의장은 자로 잰 듯 융통성이 없어 보이고, 공부는 잘하는데 좀 얄미운 우등생 이미지가 있다. 좀더 편안한 분위기를 권한다. 김근태 후보와 패션스타일을 나누면 어떨까 싶다. - 서은영 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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