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0

2017.01.01

사회

최순실은 재벌 민원창구였나

박근혜 대통령, 재단 설립 위해 최씨의 월권 방조·묵인한 듯

  •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 ceo@chaebul.com

    입력2016-12-30 16: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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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연일 터져 나오는 의혹들은 이 사건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만들 정도다. 이 사건의 윤곽은 검찰 및 특검 수사로 어느 정도 밝혀지겠지만, 실체적 진실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이 사건을 둘러싸고 대통령, 청와대 비서진, 장관, 차관, 고위 공직자, 정부기관 등 수많은 국가기관과 재벌, 의사, 교수 등 사회지도층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 사건의 실체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국정농단과 불법모금

    이 사건을 정리하면 비선(秘線) 실세가 국정에 개입한 이른바 ‘국정농단’이라는 사건과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벌어진 재벌로부터의 ‘불법모금’이라는 사건으로 이뤄져 있다. 사실 두 사건은 별개의 성격을 지닌다. ‘국정농단’은 국가통치 과정에서 벌어진 정치적 성격의 사건이고, ‘불법모금’은 권력형 경제비리 사건이다.

    그럼에도 이 두 사건이 단일 사건처럼 인식되는 이유는 그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연결고리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건의 성격적 분류를 기준으로 본다면 대통령의 책임 부분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국정농단 사건은 박 대통령의 법률 위반 책임보다 ‘직무유기’나 ‘직무태만’이라는 도덕적 책임의 성격이 더 크다. 하지만 재벌로부터 ‘불법모금’한 부분은 다르다.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앞세워 모금한 것은 강제성 여부와 상관없이 법적, 윤리적 지탄을 동시에 받을 수밖에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재벌로부터 돈을 모으는 과정과 목적이다. 검찰 및 특검 수사의 핵심인 불법모금은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과 삼성 등 일부 재벌의 최순실 모녀에 대한 금전적 지원 등이다. 이들 두 사안에서 박 대통령과 최씨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공모관계에 있다는 것은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하지만 재벌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과정과 목적에서는 차이가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기부금 모금은 대통령-경제수석-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18개 재벌이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반면, 최순실 모녀에 대한 금전적 지원은 최순실-삼성·SK·롯데 등이 직접 연결돼 있다. 돈을 모으는 과정을 놓고 보면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은 박 대통령이 중심에 있고, 최순실 모녀에 대한 지원은 최씨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결국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은 대통령의 사적이해와 연관되고, 최씨와 삼성 등 일부 재벌 간 은밀한 거래는 최순실 모녀의 사적이해와 관련 있다는 얘기다. 이는 최씨가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 위원들에게 “재단 설립은 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고 주장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이 검찰 및 특검 수사에서 “대통령의 지시사항”이라고 자백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선의의 기부를 한 기업들에게 죄송하다”고 밝혀 자신이 두 재단 설립과 모금을 주도했음을 시사했다. 삼성 등 일부 재벌의 최순실 모녀에 대한 지원도 사실상 개인적 차원의 지원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 두 사건이 표면상 한 덩어리로 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사적이해를 충족하려는 두 사건의 동일한 주체들이 재벌과의 은밀한 거래에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은 물론, 최순실 모녀와 재벌의 거래에 관련된 자들은 거의 동일한 인물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재단 설립에 관련된 차은택, 고영태, 노승일, 박헌영, 정동춘이 두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



    ‘공공이익’으로 포장된 사적 비밀거래

    둘째, 미르·K스포츠재단, 최순실 모녀와 재벌 간 거래가 매우 불투명한 비밀거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미르·K스포츠재단은 전경련이 주도해 만든 재단으로 알려졌다. 실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안 전 정책조정수석은 정부 개입이 없었다고 주장했고, 전경련과 재벌들도 “국가 공익사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설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및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발적 거래가 아닌, 강제성이 높은 모금임이 밝혀졌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도 수사 과정에서 “정부의 강제성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처음에는 두 재단의 설립을 은폐하려 했지만, 나중에 실체가 드러나면서 진실을 고백한 것이다. 최순실 모녀에 대한 삼성의 지원도 비슷하다. 당초 삼성은 대한승마협회의 요청으로 유망 승마선수를 선발, 지원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뒤늦게 개인적으로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셋째,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재벌의 기부와 최순실 모녀에 대한 재벌의 지원이 공공이익보다 사적이해와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두 재단의 설립 과정 및 주체가 공공이익에 부합해야 하고, 절차적으로도 투명해야 한다. 기부금 모금을 중간에서 매개한 전경련은 공공법인이 아닌, 민간 사단법인이다. 만약 기부금 모금을 공공적 성격을 가진 시민단체가 주도했거나 정부 관련 국가기관이 했다면 ‘공공성’이 뒷받침될 수 있었다. 최씨와 일부 재벌 간 거래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최순실 모녀에게 거액을 지원하면서 대한승마협회를 매개로 ‘유망 승마선수 지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최씨 모녀는 삼성의 지원금을 개인 용도로 썼다. SK와 롯데도 대가성을 부인했지만, 최씨가 설립한 개인 기업과 수십억 원을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최씨의 개인 기업을 위해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수십억 원을 지원한 것은 공공이익과 무관한 일이다.

    이를 전제로 유추하면 이 사건은 박 대통령이 재벌로부터 거액을 모아 재단을 설립하는 과정을 지켜본 최씨가 재단 설립의 도우미를 가장해 권력에 취약한 재벌을 흔들어 사익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최씨의 월권행위를 인지했으나 자신이 추진하는 재단 설립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재벌들은 두 재단과 최씨에게 거액을 지원하면서 자신들의 약점을 해결하는 민원창구로 활용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사건에 연루된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과 비서진, 장관, 차관, 공공기관장 등은 최씨의 요청으로 이뤄진 박 대통령의 지시를 수행한 행동대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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