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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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전화로 야구중계 했는데…

현대 유니콘스 11년 만에 해체 위기

  • 김성원 중앙일보 JES 기자 rough1975@jesnews.co.kr

    입력2007-01-24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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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이 전화로 야구중계 했는데…

    2003년 10월25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03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승리한 현대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골프공이 날아가다 러프에 빠졌다. 지켜보던 아들이 순간 아버지의 표정을 훔쳐보다 슬쩍 말을 꺼냈다.

    “아버님, 야구경기 말인데요. 우리가 삼성을 크게 눌렀답니다.”

    “허허, 그래? 아, 기분 좋구먼.”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아들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이 야구시합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전하자 아이처럼 웃으며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 현대 유니콘스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판이다.

    매각절차를 진행 중인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는 재정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채 그렇게 무너져내렸다. 급기야 지난주 농협중앙회가 인수를 결정하고 실사에 들어갔으나 농협노조 및 농민단체의 반발, 주관 부서인 농림부의 원칙적인 불가 입장 표명 등으로 다시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인수계획은 불투명한 데다 현대 역시 더 이상 야구단을 운영할 여력이 없는 듯하다. 유니콘스의 대주주인 하이닉스는 이미 농협에 주식 처분을 마무리지은 상태.



    사라지기 일보 직전인 현대 야구단의 추억과 주위를 놀라게 했던 현대 오너들의 야구단 사랑을 회고해본다.

    고 정주영 회장 “야구는 속이는 게임이야!”

    프로야구 태동 시절인 1980년대 초반. 당시 정주영 회장은 야구단 창단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가 88서울올림픽 유치를 책임져야 하는 데다 야구를 별로 좋은 스포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사장이 전화로 야구중계 했는데…
    “야구는 속이는 게임이야! 투수는 타자를 속이고, 또 베이스에 나가면 투수 몰래 뛰고….” 정 회장은 평생을 땀 흘려 돈을 벌어온 기업인으로서 야구의 속성이 못마땅했던 듯하다.

    현대가(家)는 원래 알아주는 스포츠 가문이다. 정몽준 씨가 지금도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고, 정몽윤 회장은 사회인야구팀인 해상화재의 1루수로 뛰고 있다. 정몽윤 회장은 고 정 회장의 아들 중 가장 야구를 좋아하는 인물로, 과거 아마야구 대한야구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야구와의 인연을 묻자 “아버지께서는 아들들이 모두 각 스포츠 종목의 수장을 맡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중앙고에 다닐 때부터 동기인 윤몽호(전 야구인)의 플레이에 푹 빠져 그야말로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동대문을 들락거렸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런 정몽윤 회장이었지만 이전까지는 워낙 아버지가 야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윽고 88서울올림픽이 끝났다. 출범 후 매년 계속돼온 프로야구의 인기는 여전히 식지 않았다. ‘왕회장’의 마음도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는 ‘왕회장’이 현대그룹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현대는 1989년 8월 MBC 청룡을 인수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결국 포기했다. 이어 쌍방울을 인수하기 위해 첫 번째 협상에서 합의를 다 해놓고 다시 틀어졌다. 당시 쌍방울이 무주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준비하던 시점이라 대회 건물을 지어주는 조건을 놓고 옥신각신하다 무산된 것. 여기에는 기존 구단의 반대도 한몫했다. ‘공룡’ 현대가 프로야구판에 들어오면 전력 평준화도 깨지고 독불장군식으로 나갈 것이라는 게 구단들의 걱정이었다.

    그러자 ‘불도저’ 현대는 기존 구단을 인수한다는 계획을 바꿨다. 아마야구 현대 피닉스를 창단하고 이현태 현대석유화학 상임고문(당시 현대석유화학 회장)을 수장에 앉힌 것이다. 현대 피닉스는 아마야구 최고 유망주들을 싹쓸이하면서 기존 구단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피닉스를 끌어들이지 않고선 아마의 젖줄을 송두리째 빼앗길 판이었다.

    결국 현대는 1995년 9월 인천, 경기, 강원을 프랜차이즈로 하는 태평양 돌핀스를 470억원(현금 400억원, 부채 인수 70억원)에 포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의 숙원이 드디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현대는 건설이 모태다. 공사판에서 잔뼈가 굵었다. 오늘 계획하면 내일까지 처리돼야 한다. 이렇다 보니 창단 준비과정에서 별 해프닝이 다 일어났다. 현장 실무자들이 구단 고위측에 운동장 개선 문제, 시설물 보수 문제를 건의하면 즉석에서 오케이였다. 그 자리에서 “걱정하지 마라. 울산에 널린 게 땅이고 인부들 시켜 뚝딱 만들면 된다”고 답했다.

    구단주는 여러 명 교체됐지만 실제 야구단을 가장 많이 챙기는 이는 바로 정몽윤 회장이었다. 정몽윤 회장은 회사 업무를 위해 해외 출장을 갈 때면 당시 정진구 사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정진구 사장이 전화로 ‘음성 중계방송’을 해야 했다. 정몽윤 회장은 투수 로테이션도 챙기고 게임 분석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이 오너였으니 현대가 단기간에 무려 4회나 우승한 명문팀이 된 것은 당연할 수밖에….

    단기간 4회 우승 삼성과 자존심 싸움

    사장이 전화로 야구중계 했는데…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야구 한일전이 끝난 뒤 정몽윤 회장을 헹가래치는 한국 선수들. 정 회장의 야구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전까지 야구단 지원에선 국내 최고를 자랑하던 삼성과의 자존심 싸움도 볼만했다. 프런트끼리의 충돌도 곧잘 있었다. 한번은 삼성이 대구 구장에서 현대 관계자들의 VIP 좌석을 마련해놓지 않은 실수를 하자 현대도 곧바로 앙갚음했다. 인천 구장에서 치러지는 삼성 경기에 삼성 관계자석을 따로 만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이조차도 한국시리즈가 개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우승이 아니라고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이후 2002년 우승을 거두기까지 단 한 번도 정상에 서보지 못했던 삼성과 달리, 현대는 프로 후발주자로 입성한 지 2년 만인 1998년에 우승을 했다. 현대의 승승장구와 비교했을 때 이 기간 삼성 라이온즈가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을지는 지금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잘나가던 현대가 한 발 더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야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시점과 맞물려 모기업에 이상징후가 보이기 시작됐다. 쌍방울을 인수하는 신생팀 SK가 서울 입성을 요구하자 기존 구단들이 강력히 반대했다. 그렇다면 SK는 들어오지 않겠다고 몽니를 부렸다. 현대가 ‘솔로몬의 지혜’로 가장한 비책을 타 구단에 제시했다. 현대의 원래 연고지인 인천, 경기를 신생구단 SK에 주고 자신들은 서울에 들어오겠다는 것이었다.

    계산도 아주 간단했다. 현대가 기존 연고지를 SK에 건네기 때문에 연고지 분할금을 받게 된다(54억원). 이 돈을 다시 기존 서울 구단 LG와 두산에 건네주는 식이었다. 현대는 돈 한 푼 안 내고 서울 프리미엄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2001년 대주주였던 하이닉스반도체가 경영난을 겪었고 모기업의 지원금이 뚝 끊겼다. SK로부터 받은 54억원은 결국 구단 운영자금으로 대체됐다.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이 사망하자 구단 운영은 더욱 어려워졌고 사촌 격인 현대자동차그룹, 현대해상화재보험 등으로부터 매년 70억~80억원의 지원금을 받으며 연명해왔다. 정몽윤 회장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구단 매각을 논의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선수를 팔든지 해서 어떡하든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정으로 가꿔온 야구단이 그렇게까지 망가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가장 화려하게 입성한 현대 야구단은 이제 만 1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인수자가 끝내 나타나지 않을 경우 KBO의 관리(30일 기한)로 넘어갔다가 선수들은 나머지 7개 구단으로 트레이드되는 등 공중분해될 전망이다.

    현대가 보여준 모습은 프로야구에서의 공격적인 경영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됐다. “다시는 저렇게 화끈하게 팀을 지원하는 구단은 탄생하지 못할 것”이라는 모 야구인의 말이 새삼 와닿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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