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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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와 인간의 노동

  • 박진열 (주)엘림에듀 ‘늘품 논술’ 상임연구원

    입력2007-01-10 1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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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트로피와 인간의 노동

    춘천댐

    [가] 에너지가 어느 한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로 변환될 때에는 반드시 모종1)의 불리한 상황이 부과된다는 것을 이 법칙은 천명한다. 엔트로피는 더 이상 일로 바꿀 수 없는 에너지의 양에 대한 척도이다. (중략)

    높은 농도로부터 낮은 농도로 에너지가 옮겨갈 때(즉 높은 온도로부터 낮은 온도로) 일이 발생된다. 중요한 점은 에너지가 온도 차이에 따라 옮겨갈 때마다 다음에 사용 가능한 에너지 양은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댐 위의 물이 호수로 떨어지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물이 높은 곳으로부터 아래로 떨어지는 동안 물은 전기를 일으키거나 수차를 돌리거나 또는 다른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바닥에 떨어져버린 물은 더 이상 일을 수행할 수 없다. 바닥의 물은 아주 작은 물레방아조차도 돌릴 수 없다. 댐 위의 물과 바닥에 떨어진 물의 상태를 가리켜 각각 ‘사용 가능한 에너지’ 그리고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의 상태라고 부르기로 한다.

    [나] 저엔트로피 문화와 고엔트로피 문화는 노동과 생산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고엔트로피 문화 환경에서의 인간의 노동력은 현실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를 갖지 못한다. 시스템의 목표는 인간의 노동을 제외시키고 생산과정의 모든 단계를 자동화함으로써 에너지의 흐름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그 경우 생산성과 경제성장이 경제생활의 유일한 목표가 된다. 인력이 재화나 노동의 생산에 반드시 개입되어야 하는 경우에는 과학적 경영이 도입되어 생산 방법을 표준화함으로써 창의성이나 개인의 결정이 배제된다. 일, 특히 육체노동은 통제 조정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품위를 상실하고 사람들은 육체노동을 기피하려 한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손으로부터 모든 일의 기능을 덜어줄 수 있는 ‘노동 절약적’ 장치들로 가득 차 있다. 월급의 등급을 보면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등급 밑바닥에 위치하고 책상에 앉아 근무시간을 보내는 화이트칼라 경영진은 상위 등급을 차지한다.

    [다] 산업주의 관점에서는 생산의 목적을 소비에 두고, 일은 다만 그 목적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그에 반하여 저엔트로피 사회에서의 일은 의식의 깨우침에 이르기 위한 노력의 필수적 요소가 된다. 고엔트로피 사회의 일은 통속화되어 있다. 그 일은 시계와 생산량에 의해 분할되고 측량된다. 그리고 초월적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는 까닭에 짐일 수밖에 없다. 저엔트로피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참으로 누구인가를 알도록’ 도와주는 활동으로서 신성시된다. 이렇게 하여 일에 긍정적 의미가 내재하게 된다. 슈마허는 ‘불교 경제학’에서 이 가치는 3면성을 지닌다고 했다. ‘인간에게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고 계발할 기회를 준다. 인간이 자기중심성을 탈피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의 임무를 해 나갈 수 있게 한다. 실존에 요구되는 재화와 용역을 제공한다.’

    저엔트로피 문화에서의 일은 잠이나 명상이나 오락처럼 삶의 균형을 적절히 맞추는 데 필요한 활동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일이 없다면 인간은 불완전할 것이다. ‘노동 절약’과 여가의 탐닉에 한없이 몰두해 있는 사람은, 소비와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일어나는 환각의 정글을 헤매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현실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간에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일은 무엇보다도 일하는 사람에게 품위와 목적의식을 줄 수 있도록 짜여져야 한다. 그 일에는 인간적인 척도가 있어야 하며 일정한 형태의 조직에 의해 ‘인간에게 그의 능력을 활용하고 계발할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라] 통치한다는 견지2)에서­경제적·정치적 통치­저엔트로피 문화는 ‘최소의 통치가 최선의 정부’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소수 정치에 반하여 대중민주주의가 옹호되고, 각자가 일터나 사회에서 자기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관해 동등한 투표권과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적인 조치들이 강화된다. 노동자가 운영하는 자영기업들과 소규모 민주적 도시국가 체제가 선호되는 경제적·정치적 형태들이 갖추어진다. 지방분권적이며 참여적 민주주의가 선호되는데, 도덕적·철학적 근거에서 그럴 뿐 아니라 그런 형태가 에너지 흐름을 극소화하고 결과적으로 혼란의 축적을 완화해주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번 되풀이하여 보았듯이, 고도의 중앙집권적 경제·정치 제도들은 다만 에너지 흐름을 늘리고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때문에 그런 제도들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들이 한정되어 흐르는 체제에 바탕한 엔트로피 문화에서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마] 저엔트로피 사회에서는 인간을 자연 생태계의 작동으로부터 분리시켜 생각하던 현대의 인간관이 모든 현상의 상호 관련성을 합일적으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저엔트로피 문화는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을 파악하며 따로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은 조작할 도구가 아니라 생명의 원천으로서, 그 생명은 자연의 총체적 작용 내에서 보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인간이 자연과 ‘일체’라는 이해가 성립되면, 그로부터 모든 인간 활동이 적절한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윤리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엔트로피 사회는 다른 종의 생물을 파멸시키는 데 일조하는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불경스럽다고 볼 것이다. 모든 종이 보존되어야 하며, 이것은 존재하고 있는 만큼 그들 고유의 양도할 수 없는 생명권이 주어져 있는 까닭이다. 생태계의 제1법칙은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한 부분이라도 파괴한다면 인간을 포함한 다른 모든 부분에 그 영향이 돌아간다.

    저엔트로피 사회에서는 자연을 ‘정복’한다는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생물들과 전체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믿음이 대체된다. 모든 다른 형태의 생명체들처럼 하나하나의 인간은 지상을 거쳐가는 길손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뒤에 올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들이 삶을 즐길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자연을 보존할 책임이 주어진다. -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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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음은 이 글에 나타난 ‘고엔트로피 문화’와 ‘저엔트로피 문화’의 특징을 비교한 것이다. ( ) 부분을 완성하시오.

      고엔트로피 저엔트로피
    노동의 가치 부정적 ( ① )
    정치 형태 ( ② ) 지방분권화
    자연의 개념 ( ③ ) ( ④ )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은 만물의 영장 ( ⑤ )
    생산의 목적 소비 ( ⑥ )


    2. 이 제시문에 나타난 ‘저엔트로피 문화’에서의 ‘일’과 의 ‘물레질’이 가지는 공통점을 200자 내외로 설명하시오.

    보기) 근대 산업문명은 사람들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끊임없이 이기심을 자극하며, 금전과 물건의 노예로 타락시킬 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평화와 명상의 생활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로 인하여 유럽의 노동계급과 빈민에게 사회는 지옥이 되고, 비서구 지역의 수많은 민중은 제국주의 침탈 밑에서 허덕이게 된다. 여기서 간디 사상에 물레의 상징이 갖는 의미가 드러난다. (중략)물레는 무엇보다 인간의 노역에 도움을 주면서 결코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인간적 규모의 기계의 전형이다. (중략)물레는 간디에게 그러한 공동체의 건설에 필요한 인간 심성의 교육에 알맞은 수단이기도 했다. 물레질과 같은 단순하지만 생산적인 작업의 경험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위에 기초하는 모든 불평등 사상의 문화적·심리적 토대의 소멸에 기여할 것이다. - 김종철, ‘간디의 물레’


    각 단락의 소주제문

    [가] 엔트로피는 더 이상 일로 바꿀 수 없는 에너지의 양에 대한 척도이다.

    [나] 고엔트로피 문화에서는 생산성 향상과 경제성장을 제일 목표로 삼고 있으므로 인간의 노동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다] 기술의 대규모화, 중앙집권화 그리고 인간 활동의 분업화, 권위주의는 고엔트로피 문화의 결과이다.

    [라] 저엔트로피 문화에서는 대중 중심의 민주주의가 옹호되고 동등한 투표권과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치들이 강화된다.

    [마] 저엔트로피 문화에서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자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이 글에 대하여

    이 글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을 근거로 현대 물질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필자는 우리가 진리라고 믿어왔던 기계론적 패러다임이 왜 붕괴될 수밖에 없는지를 경제·에너지·제도·과학 등의 각 분야별로 고찰하고, 21세기가 지향해야 할 변화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즉, 생태주의적 시각에서 문명을 비판함으로써 인간은 자연의 여타 생명체들이 존속하는 한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유한한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동양의 전통사상, 서양의 유기론적 세계관으로서의 귀의를 연상케 함으로써 인류의 존속을 위한 발상의 대전환을 호소하는 글이다.

    어휘풀이

    1) 모종(某種) : 불확실하거나 밝히기 어려운 어떤 것

    2) 견지(見地) : 사물을 관찰하거나 판단하는 처지. 관점

    정답 및 예시답안

    1. ① 긍정적 ② 중앙집권체제 ③ 정복의 대상 ④ 보호의 대상 ⑤ 인간은 자연의 일부 ⑥ 의식의 깨침에 이르기 위한 필수적 노력

    2. 문화에서의 노동은 ‘우리가 참으로 누구인가를 알도록’ 도와주는 활동으로서 신성시된다.

    에서 간디의 물레는 인간의 노역에 도움을 주면서도 인간을 소외하지 않는, 공동체 건설에 필요한 인간 심성의 교육에 알맞은 수단이다. 그러므로 저엔트로피 문화에서의 ‘일’과 ‘물레질’은 모두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소외하지 않고, 또한 인간 심성의 발달을 돕는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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