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9

2007.01.16

후세인 처형, 혼돈에 기름 부은 격

처형시기·현장 모습 동영상 공개로 상황 악화 … 종파·무장조직 간 충돌과 폭력 확산 우려

  • 이스라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7-01-10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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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30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마침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공식 사망시간은 교수대에 그의 목이 매달린 지 10분 만인 오전 6시10분. 지난 사반세기 동안 이라크를 철권통치하면서 중동의 맹주로 군림했던 세월이 무상하리만큼 신속한 형 집행이었다. 11월5일, 1년여를 끌어온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이에 불복하는 항소가 12월25일 기각된 지 불과 5일 만에 집행된 처형이었다.

    장례절차 또한 신속하게 이뤄졌다. 형이 집행되고 채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후세인의 주검은 티크리트 주, 그의 고향 마을에 자리한 가족묘에 안치됐다. 이 가족묘에는 2003년 미군 침공 당시 사살된 후세인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가 이미 묻혀 있다. 후세인의 죽음으로 세 부자가 재회한 셈이다.

    후세인의 죄목은 1982년 이라크 남부 두자일 마을에서 148명의 시아 무슬림을 포함해 총 159명을 학살한 것이다. 이 밖에도 부녀자와 어린이에 대한 고문, 399명에 대한 불법 체포 및 구금 등도 추가됐다. 사실 그의 죄를 논하자면 재판정에서 언급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후세인이 생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일례로 1988년 화학가스를 사용해 학살한 쿠르드인의 수가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검찰이 유독 두자일 학살사건으로 후세인을 기소한 것은 다른 사건에 비해 혐의 입증을 위한 조사가 쉬웠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세인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 중 극히 일부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진 셈이다.

    승자의 정의 vs 순교자 추앙 복수 다짐



    후세인의 처형 소식에 이라크 내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그의 통치하에서 압제를 당했던 시아 무슬림과 쿠르드족 밀집 지역에서는 대대적인 환호가 터져나온 반면, 후세인 추종세력들은 재판과 형 집행 과정을 두고 미국에 의해 주도된 ‘승자의 정의’라며 비판했다. 이들은 후세인을 순교자로 추앙하고 복수를 다짐했다.

    대외적으로는 처형 시기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후세인이 처형당한 날이 이슬람의 ‘최대’ 명절인 이드알아드하가 시작되는 날이었기 때문. 이드알아드하는 수니, 시아 무슬림이 모두 지키는 단 두 차례 명절 중 3일간 지속되는 명실공히 이슬람 최고의 명절이다. 화해와 용서가 화두가 돼야 할 명절에 처형이 집행된 것을 두고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은 “이슬람을 모독하는 처사”라는 내용의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그의 처형 당시 현장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된 일이다. 현장에 있던 누군가에 의해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된 동영상에는 형장에 서 있는 후세인을 조롱하는 시아 무슬림 관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동영상은 수니 무슬림으로 대표되는 후세인 추종세력의 분노를 샀으며, 이후 이라크 상황이 더욱 혼란의 늪으로 빠지게 되리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후세인의 처형 소식을 둘러싼 세계의 관심은 그의 사후에 이라크 정국이 어떻게 변할지에 모아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현 이라크 상황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현재의 혼란 상황을 사담 후세인에 대한 반대세력과 추종세력 간의 대립구도로 파악한다면, 후세인의 죽음은 이라크의 안정화 여부에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는 전쟁 초기 미국 부시 행정부가 가졌던 생각이기도 하다. 즉 후세인에 반대하는 시아 무슬림과 쿠르드족이 미국에 동조할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소수파인 후세인 추종세력과 기득권을 잃은 수니 무슬림의 반발을 제압해 이라크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으리라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이라크의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2003년 12월 후세인이 체포된 뒤에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이라크 내 각 세력을 하나의 시아, 하나의 쿠르드, 하나의 수니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가 아니었다. 가령 같은 시아 무슬림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종교지도자를 따르는 여러 집단으로 분화돼 있었던 것. 수니 무슬림도 마찬가지다. 과거 후세인의 집권 여당이었던 비종교적 성향의 바스당 세력을 비롯해 서로 다른 종교지도자를 따르는 다양한 성향의 수니 무슬림으로 나뉘어 있다. 이 같은 분화는 인종, 지역, 부족, 가문 등이 결부되면 더욱 복잡해진다.

    후세인의 통치 시절과 이라크전 초기에는 이처럼 분화된 각각의 이라크 내 세력이 친후세인 혹은 반후세인의 기치하에 연합함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축출된 뒤에는 종파 간, 파벌 간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운동이 결부된 것이 지난 4년간 이라크 혼란의 본질이다.

    부시, 전투병력 3만명 증파 계획

    현재 이라크의 모든 정당과 정치조직은 자체 무장조직을 가지고 있다. 거의 모든 장관들이 사병을 거느리고 있으며 부족, 가문, 집안별로도 자체 민병조직을 가동 중이다. 이러한 무장조직 간의 충돌과 폭력은 오늘날 이라크 혼란의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후세인의 처형이 이라크 상황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고 그가 체포됐을 때부터 이미 그는 정치적 선전도구 이상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사담 후세인을 처형한 것이 이라크의 혼란을 종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단기적으로 후세인의 죽음이 그의 추종세력의 투쟁 의지와 병력 모집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나온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하루 평균 6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새해가 되기 직전 미군 사망자 수가 3000명을 기록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내 사병조직을 해체하지 못하는 누리 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지도력을 신임하지 못하고 있고, 말리키 총리는 무장조직을 해체하지 않은 채 권력을 이양한 미국의 무책임과 무장조직에 맞서기엔 턱없이 모자란 군사 지원을 비난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이라크에서 발을 빼라는 여론이 거세다. 12월7일 공개된 미국의 ‘이라크 연구그룹(ISG)’의 보고서는 2008년 초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의 숫자를 절반 이하로 감축하라며 부시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주간동아’ 566호 참조).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1월 중 예정된 미국의 새로운 대(對)이라크 정책 발표에서, 보고서의 권고와 달리 최대 3만명의 전투병력을 증파할 계획임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이라크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인(動因)이 있다면, 그것은 후세인의 죽음이 아니라 이 같은 미국의 정책변화일 가능성이 더 크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서 발을 빼라는 여론의 압박을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공화당은 중간선거 패배로 의회 주도권을 민주당에 넘겨줬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가 이라크 병력증파 계획을 관철한다고 해도 ‘한시적’이라는 조건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미군은 정해진 시한 내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라크 내 반정부 단체의 색출과 무장조직 소탕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는 증파되는 미군 병력이 ISG의 권고처럼 지원이나 구호병력이 아닌 전투병력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같은 미국의 정책에 의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이라크 내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이번 미국의 계획이 성공해 2007년이 부분적으로나마 이라크의 안정화와 민주화의 초석을 다지는 해가 될 수 있을지 여부에 세계인의 관심과 희망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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