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2

2006.11.28

겨울 철새떼 화려한 비상, 황홀한 군무

가족과 함께 떠나는 탐조여행 가이드 … 한강 밤섬에서 창녕 우포늪까지 진객들로 가득

  • 김해창 국제신문 환경전문기자 seablue5@hanmail.net

    입력2006-11-22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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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철새떼 화려한 비상, 황홀한 군무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만난 오리류의 군무.

    요즘 한반도 상공엔 ‘겨울의 진객’인 철새들이 줄지어 날아든다. 멀리 북쪽 시베리아에서부터 남쪽의 호주,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대항행을 하는 이들 ‘지구의 새’에게 한반도 습지는 중간 기착지이자 쉼터다.

    마치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듯 연일 한반도의 갯벌에 내려앉는 고니, 기러기, 오리떼들. 서울 밤섬에서부터 임진강, 강화도, 철원, 서산 천수만, 금강 하구, 창녕 우포늪, 낙동강 하구 을숙도, 제주도 성산포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곳곳엔 ‘철새 공화국’이 들어선 지 오래다.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여행으로 ‘탐조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으리라.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새들의 하늘길 따라 새가 되어 이 세상을 한번 느껴보면 어떨까.

    탐조여행이라 해서 굳이 멀리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하천이나 늪, 갯벌에만 가도 새들을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집 주변에 유실수 한 그루만 있어도 직박구리나 동박새 등을 불러들일 수 있다.

    탐조는 단순히 새만 보는 것이 아니다. 새를 통해 자연을 만나는 것이다. 생물종의 다양성 측면에서 중요한 지표가 되는 새. 따라서 새가 살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결국 우리 인간도 살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새를 보러 가는 여행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찾아가는 여행이자 근본을 생각하는 사색의 여행이다. 새들의 울음 속에 묻혀 새들의 하늘 길을 보면서 한 해가 아닌, 한평생을 설계해볼 일이다.



    철새들을 위한 에티켓 … 원색 계통 옷과 향수 등 피해야

    우리가 찾아가는 갯벌과 습지는 ‘철새공화국’, 즉 새들의 나라다. 그만큼 방문객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무엇보다 새들의 활동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원색 계통의 옷을 피하고, 향수나 담배연기 등으로 새들의 후각을 자극하지 말아야 하며, 가능한 한 자세를 낮춰 조용히 새를 만나야 한다. 탐조를 한 뒤 자신의 발자국 외엔 아무것도 남겨선 안 된다. 가능하다면 쌍안경이나 새 도감, 메모지, 사진기, 방한복, 모자와 장갑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럼 이제 탐조여행을 떠나보자.

    여행은 크게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 두 축으로 잡을 수 있다.

    서울에서는 한강 밤섬이 탐조 1번지다. 여의도 쪽에서 반대편 마포구 신수동 쪽으로 가 다리 밑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서강대교에서 여의도 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 1968년 여의도 개발사업 당시 자갈과 모래를 얻기 위해 폭파했던 이 섬이 지금은 서울의 보물섬이 됐다. 파괴된 채 방치된 덕분에 무수한 철새들의 서식처가 된 것이다. 이곳에선 고방오리, 청둥오리, 흰비오리, 개개비, 황조롱이, 흰꼬리수리, 쇠부엉이, 원앙 등을 볼 수 있다. 밤섬은 여의도 LG상록재단이 운영하는 밤섬철새조망대에서도 망원경으로 조망할 수 있다.

    탐조를 더 즐기고 싶은 사람은 중랑천 하구에 가봐도 좋다. 국철 응봉역에서 가까운 하구에선 오리류를 근접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고, 한강과 만나는 동호대교 밑에서는 댕기흰죽지와 흰죽지떼가 지천이다.

    갯골이 살아 꿈틀대는 강화도 남단 갯벌은 매일 광활한 갯벌쇼를 연출한다. 식전에 분오리돈대에서 보는 일출은 장관이다. 식사 후 강화 남단을 천천히 이동하면서 갯벌이나 논에서 두루미, 기러기류를 관찰한 뒤 초지진이나 광성보 등의 역사유적을 둘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강화도에서는 매년 초지리 부근 갯벌과 농경지에 10여 마리의 두루미가 월동한다. 분오리~선두리~동검도~초지진에 이르는 갯벌에서 물이 들거나 날 때 갯골에서 두루미가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장화리는 일몰이 장관이다. 생태마을인 장화리에선 하룻밤을 묵을 수도 있다. 강화시민연대(www.ghpn.or.kr)에 문의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 철원은 철새들에게는 오히려 ‘자유의 땅’이다. 이곳은 시베리아에서 일본 규슈 남단의 이즈미시로 이동하는 천연기념물 제203호 재두루미의 중간 기착지이자, 천연기념물 제202호 두루미의 국내 최대 월동지다. 서울에서 철원까지는 승용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철원에서의 숙박은 철원온천관광호텔이나 민통선 안쪽 마을 양지리의 두루미펜션(033-452-9194) 등을 권한다. 양지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현지 주민에게 방문 신청을 해 군부대 초소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해 뜰 무렵 동송읍 양지리 토교저수지에 가보면 저수지가 얼지 않은 경우 수만 마리의 기러기들이 떼를 지어 하늘을 덮는 광경을 볼 수 있으며, 저수지가 얼었을 땐 아이스크림 고지 인근 논밭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 수십 마리가 학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토교저수지 둑에선 500마리 정도의 독수리들이 월동을 한다. 탐조시간으로 약 3시간을 잡으면 된다.

    이곳에서 1시간 정도 걸려 연천 태풍전망대로 이동하면 임진강 중류의 아름다운 모습과 논에 있는 두루미들을 볼 수 있다. 시간이 나면 반구정이나 문산천 합류부에서 탐조를 해도 좋다. 오두산 전망대에서는 철조망으로 보호되고 있는 임진강 한강 하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산 천수만은 가창·청둥오리 등 수십만 마리 축제의 장

    철새들의 자연농장이자 우리나라 탐조 1번지로 알려진 충남 서산의 천수만에선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창오리와 청둥오리 10여 만 마리, 큰기러기 수만 마리, 노랑부리저어새 수십 마리, 흑두루미 10여 마리가 초겨울의 축제를 펼친다. 해 뜰 무렵 가창오리떼의 화려한 군무는 환상적이다. 그러나 갯벌을 매립한 현대아산농장이 5~6년 전부터 이곳 농지를 일반인에게 매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출입함에 따라 새들의 천국이 이제는 ‘실락원’으로 변하고 있다.

    전북 군산의 금강 하구에 자리잡은 충남 서천군의 유부도는 세계적으로 1만 마리밖에 없는 천연기념물 제326호 검은머리물떼새 3000여 마리가 겨울을 나는 곳이다. 군산항 제6부두 대우자동차 후문에서 선외기로 5분 거리에 있는 이 섬의 하늘 위를 부리가 붉고 배가 흰 검은머리물떼새가 날면,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흑백이 뚜렷해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감이 젖어드는 유부도. 그러나 이 섬도 매립의 광풍에 노출돼 있다.

    지난 3월 한국의 네 번째 람사습지로 등록된 전남 순천만 갯벌의 대대리 들판에서는 흑두루미떼를 볼 수 있다. 근래에 개관한 순천만 에코센터를 둘러봐도 좋고, 다리와 목도를 통해 순천만의 우거진 갈대숲을 거닐어도 즐겁다. 선착장에 가면 어른 1인당 5000원에 배를 타고 약 40분간 순천만을 둘러볼 수 있다. 이 지역의 특산물인 짱뚱어요리 맛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도 탐조하기 좋은 곳이다. 이 코스에서는 낙동강 하구, 창녕 우포늪, 주남저수지가 대표적이다. 부산 낙동강 하구는 1966년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된 문화재보호구역이다. 부산 사하구 다대포 아미산 중턱의 몰운대성당 앞 공터에선 낙동강 하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탐조를 마치고 다대포 인근의 할매집 같은 푸근한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해도 좋다.

    낙동강 하구둑을 지나면 1987년 하구둑 건설 이래 육지가 된 을숙도가 나온다. 을숙도 광장에서 을숙도 남단 쪽으로는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을숙도 남단 갯벌을 비롯한 낙동강 하구에는 겨울철에 3000마리나 되는 고니가 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쪽을 약간 비켜가며 건설 중인 명지대교의 다릿발을 보면 마음이 애잔해질 것이다. 낙동강하구살리기시민연대 등이 줄기차게 명재대교 건설 반대 투쟁을 벌였지만, 결국 대법원이 개발 주체의 손을 들어줬다. 을숙도를 빠져나와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명지주거단지 남동쪽 제방에서는 맞은편 명지갯벌과 대마 등 주변 갯벌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지금 이곳 단지엔 15~20층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낙동강 하구에선 3000여 마리 고니떼로 장관

    낙동강 하구에서는 고니류 외에도 오리, 갈매기, 가마우지류를 만날 수 있다. 또한 물수리, 참수리, 흰꼬리수리, 말똥가리 등 국내에서 가장 많은 맹금류를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운이 좋으면 노랑부리저어새 10~30마리도 만날 수 있다. 이곳을 탐조할 경우, 미리 을숙도 전망대 2층에 자리잡은 ‘습지와 새들의 친구’(www.wbk.or.kr)에 연락하면 단체로 하구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마산 방면으로 가다가 진영 IC에서 빠져나가 표지판을 보고 15분 정도 따라가면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가 나온다. 주남저수지는 겨울에 50여 종

    1만~2만 마리의 철새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큰고니, 각종 기러기류와 오리류를 만날 수 있는데 때로는 가창오리의 군무도 볼 수 있다. 인접한 동판저수지에선 수면 위에서 노니는 물닭과 흰비오리를 보면서 고요함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저수지 주변 식당은 붕어찜으로 유명하다. 1인당 1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인근 부곡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며 1박을 해도 좋다.

    부곡온천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가면 창녕 우포늪이 나온다. 우포늪에 들어서면 시간이 멎은 듯 고즈넉한 정적이 흐르고 태고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 람사습지인 우포늪은 대대제방 쪽과 목포 사지포 쪽을 찾는 두 가지 코스가 일반적이다. 대대제방 쪽은 일반인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 우포늪이 한눈에 들어오며, 목포 사지포 쪽에선 우포늪의 자연스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대제방은 2시간, 목포 사지포 쪽은 3시간 정도면 충분히 탐조할 수 있다. 우포늪에는 우포생태학습원(www.woopoi.com)이 있어서 관련 전시물을 볼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목포늪 쪽으로 가면 사단법인 푸른 우포사람들(www.

    woopoman.co.kr) 건물이 있다. 이곳에는 1층 방문자센터와 2층 생태학습장이 있다. 주남저수지와 창녕 우포늪은 2008년 10월28일부터 11월4일까지 제10차 람사총회가 열린다.

    나는 2002년 ‘그곳에 가면 새가 있다’라는 책을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습지 18곳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그 책의 상당 부분을 수정해야 한다. 새만금갯벌을 비롯해 매립으로 인해 사라진 습지가 너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잃고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한국 습지의 파괴를 보면서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생활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게는 국경이 있어도 철새들에게는 국경이 없다. 원래 자연은 경계 없이 하나로 연결된 것 아닌가. 새만금갯벌이나 낙동강 하구 갯벌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구촌 시민의 것이자 지구촌 모든 생물의 것이기도 하다. 이 겨울, 한 해를 마감하면서 우리는 새처럼 좀더 자유로워질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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