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0

2006.11.14

New 철강 메카 당진 쇳물 활기로 지역 들썩

현대제철 비롯 5개사 대규모 투자 … 수심 깊은 항구, 중국과 가까워 입지조건 탁월

  • 당진=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6-11-08 17: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기아자동차 인수를 완전히 마무리짓고 1999년 7월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곧이어 기아자동차 생산 공장들을 방문했다. 화성공장을 둘러본 정몽구 회장은 바다 건너편을 바라보더니 옆에 있던 임원에게 “저곳은 어디인가”라고 물었다.

    “충남 당진지역입니다.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이 바로 한보철강 공장입니다.”

    정몽구 회장은 “음, 그래!” 하더니 한참이나 그 임원이 가리키는 곳을 주시했다. 현대차그룹 임원들은 “그때 정 회장은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루지 못한 일관제철소 건설 꿈을 떠올리면서 도전 의지를 다졌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과 한보철강 당진공장(현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어서 맑은 날이면 상대 공장 근로자들의 움직임이 훤히 보일 정도다.

    정몽구 회장은 10월27일 충남 당진군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열린 일관제철소 기공식에서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은 한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배가시킬 뿐 아니라 조선, 전자, 자동차 등 국가 기간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일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개별 기업의 기공식으로는 이례적으로 노무현 대통령도 참석했다.

    인구 증가로 2008년 시 승격 기대



    현대제철은 이곳에 350만t 규모의 고로(용광로) 2기를 지어 연간 조강 생산능력 70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한다. 일관제철소가 완공되면 현대제철은 조강 생산량이 현재의 1050만t에서 1750만t으로 늘어나 2005년 기준 세계 31위에서 10위권의 철강업체로 부상하게 된다.

    New 철강 메카 당진 쇳물 활기로 지역 들썩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충남 당진군이 새로운 철강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일관제철소 건설은 포스코의 포항·광양제철소에 이어 국내 세 번째다. 오상기 당진 부군수는 “한때 일부 주민이 환경오염의 우려를 지적하면서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에 반대했으나 현대제철 측과 협의가 잘돼 지금은 현대제철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면서 “예정대로 2008년 시 승격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당진지역에 들어선 철강업체는 대기업만 해도 현대제철을 비롯해 5개사. 우선 연 200만t의 냉연강판을 생산하는 현대하이스코가 있다. 현대하이스코는 현대제철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보철강 인수에 뛰어들었던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하이스코는 한보철강 인수자금 8100억원 가운데 1800억원을 분담해 구 한보철강 당진공장 내 B지구의 냉연공장을 인수했다.

    B지구 냉연공장은 70%의 공정이 진행된 상태에서 한보철강 부도로 방치됐는데, 현대하이스코는 인수 이후 추가로 3600억원을 투자해 완전 정상화했다. 현대하이스코 오현운 이사는 “이 정도 규모의 냉연공장을 새로 짓는 데 1조5000억원 정도가 들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이 공장의 원가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동부제강도 지난해 연산 260만t 규모의 냉연공장을 완공했다. 철강업계에서는 동부제강이 냉연강판의 원료인 핫코일 자급을 위해 박(薄) 슬라브 미니밀 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한 상태. 박 슬라브 미니밀 공장은 일관제철소와 달리 고철을 녹여 만든 쇳물로 핫코일을 생산한다. 반면 일관제철소는 철광석을 거대한 용광로에서 녹여 핫코일과 후판 등을 생산, 전 공정의 생산체제를 갖춘 제철소다.

    당진에는 또 환영철강이 75만t의 철근 공장을 갖고 있으며, 신안그룹 계열 휴스틸은 연산 50만t 규모의 파이프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동국제강도 현대제철 인근 부지 20만 평에 연산 150만t 규모의 후판 공장을 내년 초 착공해 2009년 8월 완공할 예정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당진지역에 철강업체가 모인 이유는 무엇보다 입지 조건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산업연구원 김주한 박사는 “일관제철소는 철광석과 원료탄을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항구가 필수적인데, 당진은 서해안 지역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곳이다. 또 중국과도 지리적으로 가까워 대(對)중국 철강 교역을 하는 데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New 철강 메카 당진 쇳물 활기로 지역 들썩

    현대제철 인근에 자리잡은 동부제강 냉연공장(위). 현대하이스코가 개발한 첨단 용융아연도금강판 생산 라인(아래). 하이스코 관계자들은 “세계 철강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설비”라고 자랑했다.

    아산만 지역은 포스코가 지질조사 등을 통해 80년대 초 이미 제2제철소 건설 부지로 내정해둔 곳. 당시 포스코 관계자는 “그런데 전두환 정권이 ‘호남 배려’ 차원에서 호남지역에 지어야 한다고 ‘압력’을 넣는 바람에 광양지역으로 변경됐다”고 기억했다. 한보철강 시절 정태수 총회장의 한 측근은 “정태수 총회장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중국의 경제성장을 고려해 당진지역에 제철소 건설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당진의 입지적 이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을 비롯해 서산지역의 위아, 로템, 다이모스, 현대파워텍 등 철강 수요업체들이 반경 100km 이내에 모여 있는 데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수도권도 가깝다”고 설명했다.

    2004년 현대제철이 한보철강을 인수한 이후 지역경제도 점차 활력을 되찾고 있다. 오상기 당진 부군수는 “1997년 한보철강 부도 이후 매년 1000~2000명씩 인구가 줄었는데, 2004년 현대가 인수한 이후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최근 군내 최초의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짓겠다는 투자자가 나타났다”면서 “호텔이나 콘도 신축 등을 원하는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현대제철이 들어선 이후의 변화”라고 덧붙였다.

    물론 당진 주민이 모두 개발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 반대운동을 주도한 당진환경운동연합 김병빈 사무국장은 “현재 당진지역은 화력발전소와 인근 대산 석유화학단지 및 고대·부곡 국가산업단지 내 공장에서도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고 있는데, 일관제철소까지 들어서면 지역주민의 삶의 질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대제철은 이런 반대운동에 대해 ‘포용정책’으로 일관했다. 지난해 11월 지역주민들을 유럽과 일본의 일관제철소에 보내 환경오염 실상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눈으로 보게 했다. 당진군개발위원회 김현기 부위원장은 “이후 주민들의 분위기가 찬성 쪽으로 흘렀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환경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자신 있다”는 입장이다. ‘밀폐형 제철원료 처리시설’을 짓는 것도 이런 의지의 반영이다. 철광석과 유연탄 등의 야적장을 아예 구조물로 밀폐시킴으로써 이들 원료가 바람에 날리는 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홍승수 전무는 “이 설비로 인한 추가 투자비만 2000억~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정확한 투자비를 산출할 수 없는 이유는 세계 최초의 시설이기 때문이다”라고 자랑했다.

    New 철강 메카 당진 쇳물 활기로 지역 들썩

    노무현 대통령이 10월27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기공식에 참석해 정몽구 현대제철 회장(앞줄 맨 왼쪽),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함께 공장 조감도를 보며 손뼉을 치고 있다.

    현대제철 경쟁력이 성공 포인트

    현대제철은 지역 업체에 대해서도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 김현기 부위원장은 “현대제철은 현재 제품 운송 등을 위해 17개의 운송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는데, 이 가운데 8개 업체가 지역주민이 운영 중이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현대제철이 들어온 이후 지역에서 운송업체가 몇 개 생겨났는데, 이런 것이 바로 현대제철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간접 효과가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반기는 사람은 한보철강 시절부터 몸담고 있었던 직원들이다. B열연압연부 남호진 씨가 대표적인 예. 1996년 4월에 입사한 그는 그해 8월 아들까지 낳아 겹경사를 맞았지만 다음 해 1월 한보철강 부도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1999년 4월엔 휴업 대상자가 되면서 월급도 70%밖에 받지 못했다. 남씨는 “당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정체된 도로에 나가 커피를 팔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엔 배 이상 오른 연봉을 믿고 빚을 얻어 당진에 35평형 아파트를 마련했다”며 밝게 웃었다.

    그렇다면 당진 철강벨트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그것은 이 벨트의 ‘중심’인 현대제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연구원 김주한 박사는 “세계 철강업계가 대형화 추세인 데다 중국산 중·저급 철강제품이 국내에 몰려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현대제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급강으로 승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연구개발 인력과 기술인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들은 “경쟁력에 관한 한 자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한 관계자는 “올해 7월 미탈스틸이 아르셀로를 합병함으로써 연간 조강 생산량 1억1000만t 규모의 초대형 회사가 탄생하게 됐지만, 몸집 불리기의 효과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조강 생산량 1100만t 규모의 중국 바오철강이나 대만의 차이나철강 등이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들 두 회사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강 생산량이 700만t 내외에 불과했다”는 것.

    현대제철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 자신감을 피력했다.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한보철강과 기아자동차는 묘하게도 1997년 외환위기의 주범이란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그 두 회사를 현대차그룹이 인수해 정상화해 놓았다는 것은 현대차그룹의 저력을 보여주는 예다. 당진 철강벨트의 경쟁력을 말할 때는 이 점을 감안해야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