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8

2006.10.31

해산물이 당기는 것은 ‘원초적 본능’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10-25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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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산물이 당기는 것은 ‘원초적 본능’
    나는 남녘 바닷가 소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바다가 있고, 어시장이 있었다. 30여 년 전만 해도 내 고향 바다는 맑디맑았다. 고향을 떠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릴 때 먹고 자란 이 ‘바닷것’들의 강렬한 향이 온몸 구석구석에 배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바닷것들은 식탁에 오르면 벌써 그 맛이 변한다. 다듬고 씻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그 향을 잃는 까닭이다. 내 기억 속 최초 바닷것의 맛은 굴이다. 바위에 닥지닥지 붙어 있는 굴을 돌멩이로 깨뜨려 날름 핥으면, 찝찌름한 맛에 이어 ‘화~’한 굴향이 요동을 치다가 달콤함이 잔잔하게 밀려온다. 그 맛에 한번 중독되면 굴 껍데기 때문에 생채기가 나는지 밀물이 들어와 바다에 갇히는지도 모르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조개구이집들이 번창 중이다. 어릴 적 고향에선 조개가 반찬용이었지, 조개 그 자체만을 요리로 즐기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조개구이가 별미였다. 바다 옆 유리공장에서 나오는 폐유리가 구이판이었다. 유리병이 되지 못한 유리 덩어리에 남은 열은 나무를 대면 불이 날 정도로 강렬했다. 불기운이 조금 잦아들면 여기에 조개를 올렸다. 조개는 올리자마자 ‘딱!’ 하고 벌어진다. 그 진하디진한 조개 육즙의 맛이란! 요즘 조개구이집에서는 이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아마 수족관에 오래도록 담겨 있어서 맛이 다 빠진 탓이리라.

    어릴 적 강렬한 향 몸에 남아 불쑥불쑥 입맛 자극

    ‘청소년’ 소리를 들을 무렵부터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것들이 꽤 다양해졌다. 큰 바위 밑을 뒤져 해삼을 건지고 뻘 속을 헤집어 낙지를 잡기도 했다. 대부분 그 자리에서 먹어치웠는데, 해삼이며 낙지는 이가 안 들어갈 정도로 딱딱했다. 원초적인 맛 바로 그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낚시를 했다. 세 살 위인 작은형과 망둥이, 놀래미, 전어 같은 ‘잡어’들을 잡았는데 가끔 숭어 같은 ‘고급 어종’을 낚을 때도 있었다. 이를 바로 회쳐서? 하지만 집에 가져와 비늘 치고 배 따서 말린 뒤 찌거나 구워 먹었다.

    해산물이 당기는 것은 ‘원초적 본능’
    나는 생선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식으로 찜이나 구이를 꼽는다. 회가 최고 아니냐고? 회도 맛있지만 바다향을 느끼기에는 약하다. 생선을 구덕구덕하게 말리면 바다향은 더 은은해지고 감칠맛은 깊어지는데, 이를 굽거나 찌면 그 향과 맛이 한결 좋다.

    생선을 깨끗이 손질한 다음 굵은 소금을 뿌려 생선 몸 안에 있는 잡물을 뽑아내야 구이든 찜이든 맛이 난다. 반드시 채반에 널어 생선에서 나오는 물이 바깥으로 떨어지게 해야 한다. 빨래 널듯 말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어물전에선 비닐봉지에 생선을 담아 소금을 팍팍 뿌려주는데, 이를 그대로 냉장 보관하면 맛을 버린다. 하루 정도 채반에 널어두었다가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다.)

    중학교 때 바닷것들에 대한 탐험이 더욱 과감해졌다. 물속으로 들어가 확인(?)한 뒤 잡으려 들었다. 작은형과 나는 ‘잠수 2인조’였다. 커다란 고무 튜브에 살림망, 작살 등 도구를 챙겨 배를 타고 약간 먼 바다로 나갔다. 바다 바닥에 돌덩이가 많을수록, 수초가 잘 자라는 곳일수록 먹을 수 있는 바닷것들이 많았다. 회맛이 최고라는 작살고기! 그러나 어린 우리들의 작살에 맞아주는 물고기는 아주 드물었다. 꽃게는 참 많이 잡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났다. 어머니는 서울 시장판의 바닷것들을 하나같이 ‘못 먹을 것들뿐’이라고 하셨다. 갈치, 조기, 고등어, 임연수어가 전부이고 그나마 냄새 풀풀 풍기는 한물간 것들만 즐비했다. 시장의 바닷것들을 보면 항상 고향 생각이 났다.

    서울 생활 20여 년. 그동안 이 도시의 먹을거리들이 참 많이도 바뀌었다. 8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온통 갈비와 삼겹살만 먹어대더니, 90년대에는 광어회로 잔치를 벌였다. 근래에는 다종다양한 바닷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전어, 짱뚱어, 쥐치, 주꾸미, 개불, 물메기 같은 허접한(?) 것들에서도 깊은 맛이 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하다.

    양수가 바닷물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 인간의 생명 근원이 바다에 있다는 증거일 게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양수를 온몸으로 맛본다. 바닷것이 당기는 것은, 그러니까 내가 바닷가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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