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8

2016.12.21

집중 추적

노후 경유차, 네 죄를 알렸다!

서울지역 운행 시 1회 과태료 20만 원…서민 생계수단 막혀, 졸속·탁상행정 비판도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12-16 16: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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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이전 서울시에 등록된 2.5t 이상 노후 경유차는 내년 1월 1일부터 배기가스 후처리장치(DPF)를 달지 않는 한 서울시내 전역에서 운행이 제한된다. 환경부는 서울시가 미세먼지를 줄이고자 2012년부터 일부 지역에 한해 실시해오던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제도를 서울지역 전체로 확대키로 했다. 문제는 운행이 제한되는 노후 경유 화물차가 대부분 서민의 하루벌이 생계수단이라 실제 단속을 진행할 경우 큰 반발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환경부는 이를 무마하고자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마련했다. 수도권지역에 등록된 노후 경유차의 경우 폐차 금액을 전액 지원하고, 폐차 후 신차를 구매하면 운전자에게 최대 143만 원의 세금 할인혜택을 제공키로 한 것. 이 밖에도 차량에 DPF를 달 경우 설치비의 90%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다. 언뜻 보기에는 파격적인 지원이지만 정작 노후 경유차 운전자들은 난색을 표한다. 세금 지원만으로는 신차 구매 부담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지원책은 노후 경유차 운전자가 추가로 자비를 부담해야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졸속·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노후 경유차 사업 예산 부족으로 난항

    멀쩡하게 타고 다니던 차량에 대한 서울시의 갑작스러운 운행제한 조치는 2015년 7월 개정된 ‘수도권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수도권 대기 특별법)에서 비롯됐다. 이 법 제28조의2가 ‘서울특별시장 등 각 자치단체장은 대기환경개선을 위해 배출가스저감장치를 부착하지 않았거나 저공해엔진으로 개조 또는 교체하지 않은 차량의 운행을 제한할 수 있다. 운행제한 조치를 어긴 차량에 대한 과태료 부과액은 각 시도의 조례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도권 대기 특별법상 운행이 제한되는 차량은 수도권에서 2005년 이전에 등록된 2.5t 이상 노후 경유차다. 이 법안에 따라 환경부는 7월 “노후 경유차 운행 제한지역(LEZ)을 서울에서 시작해 인천, 경기로 확대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서울은 내년, 인천은 2018년, 경기는 2020년이면 노후 경유차 운행이 금지된다. 전국 경유차 약 300만 대 중 수도권에 등록된 경유차는 100만 대가량. 이 가운데 2.5t 미만 경유차(약 40만 대)와 DPF 부착 경유차(약 10만 대)를 제외한 45만 대 정도가 LEZ 확대에 영향을 받는다.



    2.5t 미만 노후 경유차라도 안심할 수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내년에는 2.5t 이상 노후 경유차만 서울시내 운행이 제한되지만 차츰 2.5t 미만 노후 경유 승용차나 승합차로 대상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노후 경유차 운전자는 모두 차를 바꾸거나 차량에 DPF를 부착해야 하는 것.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 환경부는 먼저 12월 5일부터 2017년 6월 30일까지 노후 경유차를 폐차하고 새 차를 사는 사람에게 세제 지원 혜택을 주기로 했다. 최대 세제 감면액은 개별소비세와 교육세, 부가세를 더해 총 143만 원(개별소비세 100만 원+교육세 30만 원+부가세 13만 원)이다.

    서울시는 운행제한 차량이 DPF를 부착하지 않은 채 서울지역에 진입하면 2010년 11월에 제정된 ‘서울특별시 공해차량제한지역 지정 및 운행제한에 관한 조례’ 제5조에 의거해 첫 번째 적발 시에는 경고하고 두 번째 적발부터는 20만 원씩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과태료는 최대 10회까지 추가로 부과된다. 즉 운행제한 대상인 노후 경유차를 몰고 계속 서울 도로를 활보할 경우 최대 200만 원 과태료를 내야 하는 것. 사실 서울시는 2010년 자체 조례 제정 후 이를 근거로 2012년부터 서울남산공원 등 일부 지점(서울 전역의 5%)에서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제도를 실시해왔다. 환경부의 이번 운행제한 조치는 서울시가 일부 지역에서 해온 제도를 서울 전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서울시는 2017년부터 진입도로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로 번호판을 인식해 운행제한 차량을 색출할 예정이다. 이를 피하려면 차량에 DPF를 부착하면 되는데, 부착 비용은 300만 원 안팎이다. 이 비용은 정부가 45%,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45%, 차량 소유주가 10%를 부담한다. 저소득층(4인 가구 기준 월 소득 223만4000원 이하)은 DPF 부착 비용을 정부와 지자체가 전액 지원한다.

    문제는 과연 환경부와 서울시 재정으로 DPF 부착 비용을 모두 지원할 수 있을지 여부다. 환경부와 서울시는 2012년부터 노후 경유차의 배출가스를 줄이고자 각각 예산을 절반씩 부담해 노후 경유차의 조기 폐차 및 DPF 부착 등 저공해 조치를 유도해왔다. 그러나 환경부는 2012년 사업을 시작하던 해 476억9500만 원이던 예산을 2014년 320억7900만 원으로 33%(약 156억 원) 삭감했다. 2015년에는 소폭 증액한 353억8800만 원을 배정했다. 환경부는 올해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한 사회 이슈로 부각되자 그제야 관련 사업 예산을 450억6500만 원으로 증액했다. 이 밖에도 환경부는 9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노후 경유차 사업 예산을 36억 원 증액하기로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환경부와 동일한 금액을 내놓아야 하는 서울시의 재정이 모자라 예산 확충이 미뤄진 것이다.

    예산 부족으로 노후 경유차 대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동안 서울시내를 활보하는 노후 경유차는 더욱 늘어났다.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위반으로 서울시의 단속을 받은 건수는 2012년 343건에서 2013년 410건, 2014년 746건, 2015년 2651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8월까지 총 631건이 적발됐다.



    정부 지원에도 노후 경유차 운전자는 부담 커

    11월에만 5차례나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올해 초부터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자 7월 환경부와 서울시는 “현재 11만3000대인 서울시내 노후 경유차를 2020년까지 모두 저공해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세부 목표치는 2017년 5만2000대, 2018년 3만1000대, 2019년 3만 대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단속을 강화해 저공해 조치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속 강화를 위해 서울시는 “10월 운행제한 단속 지점을 기존 7개소에서 내년까지 13개소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정부가 마냥 노후 경유차 운전자를 압박한 것은 아니다. 환경부와 서울시는 노후 경유차를 조기에 폐차할 경우 차량 연식에 따라 차량 가치에 해당하는 잔존가액을 보상해준다. 2000년 12월 31일 이전 제작된 차량은 잔존가액을 100% 지원한다. 2001~2005년 제작된 차량은 상한액이 있다. 3.5t 미만 차량은 165만 원, 3.5t 이상 배기량 6000cc 이하 차량은 440만 원, 4.5t 이상 배기량 6000cc 초과 차량은 770만 원이다. 예를 들어 2002년식 2.5t 트럭을 폐차한다면 잔존가액 165만 원에 폐차 후 고철가격 약 30만 원과 신차 구매 시 최대 세금 감면액 143만 원을 합해 총 338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자동차업계에서는 노후 경유차 교체 수요를 붙잡고자 이들 차량을 대상으로 신차 교체 지원 프로모션을 진행할 계획이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 및 지자체가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단속과 폐차 후 신차 구매 지원 혜택을 동시에 강화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여전히 노후 경유차 운전자의 부담이 크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운송업계 한 관계자는 “노후 경유차 운전자가 대부분 영세업자라 30만원대의 차량 소유주 부담의 DPF 부착 비용도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정부 지원책에도 차를 구매하지 않는 이유는 신차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2.5t 트럭인 현대자동차 ‘마이티’의 신차 가격은 최저 3891만 원. 실제로 영업용으로 자주 사용하는 ‘올 뉴 마이티 2.5t’은 최저 4600만 원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신차 구매에만 수천만 원이 드는데, 안 그래도 운송업계 사정이 좋지 않아 정부가 일정 비용을 지원해준다고 해서 덥석 차를 바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DPF를 부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환경부와 서울시의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조치에 대한 현장의 불만이 일리가 있다고 진단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노후 경유차를 조기 폐차하고 새 차를 구매할 때 들어가는 비용에 대한 보조금을 더 늘리는 등 정부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와 서울시가 무리하게 목표치를 정한 뒤 단속을 통해 노후 경유차를 줄이겠다고 나서면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서민”이라고 지적했다.

    노후 경유차 운전자가 큰마음 먹고 조기 폐차를 결정했다 해도 자부담 금액이 일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폐차 비용은 환경부와 서울시가 전액 지원해주지만 조기 폐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먼저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과하지 못한 일부 차량은 폐차 보조금을 받으려면 차를 고쳐서 폐차해야 한다.  

    이처럼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조기 폐차 지원 정책의 근거인 수도권 대기 특별법 시행규칙 때문이다. 시행규칙 제37조에 따르면 조기 폐차를 신청할 수 있는 경유차는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정밀검사 결과 적합 판정을 받은 차여야 한다. 또 △수도권 대기관리권역에 2년 이상 연속해 등록돼 있어야 하고 △최종 소유자가 보조금 신청일 기준으로 6개월 이상 차량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어야 하며 △정부 보조금을 받아 DPF를 부착했거나 엔진 개조를 한 적이 없어야 한다.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조기 폐차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환경부는 6월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내놓으며 노후 경유차에 DPF를 부착하기보다 조기 폐차를 유도하는 형식으로 관리 대책 방법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조기 폐차 유도가 DPF 부착보다 미세먼지 저감 효율성이 훨씬 높다는 감사원의 지적 때문이었다. 환경부는 조기 폐차를 장려하고자 폐차 보조금도 확대했다. 기존에는 폐차 비용의 85%만 지원하던 것을 올해 6월부터는 100%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폐차 보조금 받으려면 차량 수리부터 해야?

    그러나 정작 문제 여지가 있는 ‘정밀검사 결과 적합 판정을 받은 차’라는 요건은 변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9월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서 “상식적으로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초과하는 차량부터 폐차하는 것이 맞다. 일반적인 차량 정비로는 배출 기준을 만족하기 어려운 경유차에 이 기준을 맞춰 와야 폐차 보조금을 준다는 것은 이중부담이자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환경부 관계자는 “배기가스 배출 허용 기준보다 많은 양을 배출하는 차량에는 폐차 보조금을 줄 계획이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어차피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차량은 운행이 불가능해 폐차해야 한다. 폐차 보조금은 현행법 내에서 운행이 가능한 차량 운전자가 국민 건강과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미리 차량을 폐차하는 행위에 대한 보상이지 무조건 경유차를 줄이려고 지급하는 돈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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