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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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군 ‘곤충천국’…꿈같은 나날

샐러리맨 털고 생태학교 만든 이강운 씨맨손으로

  • 장옥경 자유기고가 writerjan@hanmail.net

    입력2006-09-26 18: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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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군 ‘곤충천국’…꿈같은 나날

    진정한 미식가처럼 자연에 밀착해 살아가는 이강운 씨 부부.

    진정한 미식가는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는 사람이 아니다. 보통 사람이 버리는 부분까지도 맛보는 사람이다. 살을 발라 추려낸, 보기 좋고 먹기 좋은 일부만 취하는 게 아니라, 쓰고 시고 떨떠름해서 버리는 것까지도 두루 섭렵하는 사람이다. 그래야 비로소 식품이 가진 전체의 맛과 영양을 고루 즐길 수 있다.

    1997년 여름,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새골의 두메산골에 들어와 ‘홀로세생태학교’를 세운 이강운(48) 교장은 환경운동연합이나 녹색연합 같은 환경단체에서 강의를 하면서 “환경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 “더구나 책상에서는 이야기하지 말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서도 안 된다” “온몸으로 부딪쳐라”는 주문을 한다.

    생태환경의 가이드가 아닌 커뮤니케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미식가처럼 ‘일물 전체식(一物 全體食)’을 체험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가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지난 10년 동안 자연과 밀착해 체험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여기 와서 7~8년간은 주로 노동을 하며 살았습니다.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돌밭 고르고 풀 뽑고 베고 삽질하고 도끼질하는 일들이 눈떠서 잘 때까지 하는 일상이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나무와 꽃을 심으며 구석구석 곤충과 식물, 새와 민물고기가 살 수 있는 서식지를 조성하고….”

    처음 산골로 왔을 때 ‘미친놈’ 소리 들어



    마실 물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아내와 아들, 딸 네 식구가 그야말로 원시적인 생활을 했다. 곤충들이 살기 좋은 명당, 천국을 만들기 위해 홀로세생태학교 1만5000여 평을 일일이 손으로 보듬었다. 홀대받았던 자생 들꽃들이 피어나자 비단벌레와 산홍단딱정벌레, 사슴벌레, 나풀거리며 날아다니는 꼬리명주나비 같은 곤충들이 모여들었다.

    이 교장은 생태학교 주변 새골에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나비의 70%가 있고, 생태학교에는 나비 70여 종과 딱정벌레류 20여 종, 수서곤충 40여 종, 토종 들꽃(야생화) 160여 종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10년 꼬박 공든 탑을 쌓은 뒤 이제야 비로소 생태환경 보고서를 쓰며 연구다운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틀을 세우게 됐단다.

    “행복은 혼자서 즐기는 것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의 인정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지요. 그들과 비교할 때 제 나이 또래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사력을 다해 살아도 아까운 것이 인생인데,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내 운명이 다른 사람 손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본다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하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면 저는 70% 이상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일군 ‘곤충천국’…꿈같은 나날

    곤충 표본 만들기도 많은 노력을 요하는 일 중 하나다.

    이 교장은 동아문화센터에서 14년간 근무하고 사표를 냈다. 문화기획부에서 일하며 7년간 ‘전국 자연생태계 학습탐사’의 탐사단장을 했다. 1년에 두 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교육부 추천을 받아 각 시·도에서 전문가 한 명과 함께 탐사단을 구성해 우리나라의 지질, 새, 곤충, 식물, 해양생물 등 환경과 관련한 기초적인 공부를 했다. 회사 일이지만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관심을 가질수록 모르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커지면서 관련 서적을 뒤지고 탐사단을 지도했던 교수를 찾아가 따로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97년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편리하고 보장된 도시생활을 버리고 강원도로 들어올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친놈’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속된 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꼴이었기 때문. 그러나 이젠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잘 했다” “고생했다”며 격려하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70%의 행복과 30%의 불만

    그런데 이 교장은 다른 사람보다 좀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지난 세월 동안 자연과의 교감이나 교육적인 측면도 있지만, 사소한 생물군인 곤충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혁혁한 공로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체험학습이니 생태자연학습이니 하는 말들이 익숙하지만 10년 전엔 그런 단어가 생소했습니다. 그런 말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전부 따라오려 해요. 반딧불축제, 잠자리축제, 나비축제…. 이런 프로그램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이벤트나 축제, 전시회에 꼭 끼여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데서 홀로 비전을 세우고 일궈온 삶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러나 언제나 행복한 건 아니라고 한다. 생태학교를 찾은 아이들은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나고 번데기에서 성충이 나오고 나비가 교미하고 산란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환호성을 지르지만, 그 이면엔 준비해야 할 것들이 부지기수다. 알에서 비롯된 나비가 자연상태에서 생존할 확률은 2%밖에 안 된다. 새들의 먹이가 되기 때문으로, 따라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매일 각종 나비들이 좋아하는 나뭇잎을 뜯어 먹이를 챙겨주어야 하고 배설물도 치워야 한다. 이틀만 걸러도 나비들이 굶어 죽으니 가족여행 한 번 떠날 수가 없다. 나비나 곤충들을 채집하고 분류해 종(種)을 가린 뒤 날개를 펼쳐 표본도 만들어야 한다.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면 1분, 1초도 눈을 돌릴 수 없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태풍이 분다 해도 자연의 변화상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주 생생하게 느낍니다. 태풍이 분다면 소똥구리 사육실, 풍뎅이 박물관, 야외 학습장, 야생화 정원, UFO 나비집, 식물생태관 등의 문단속을 하고 전기 코드를 뽑고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자연현상을 오감으로 느끼면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깨닫지만, 자연재해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극렬하게 체감한다.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외지 산골에 있다 보니 서울 한 번 나가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 문화생활을 하려면 시간을 잡아서 작정을 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20~30%는 불만이란다.

    이 교장은 100% 만족할 수 있는 대안적인 삶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자신이 좋아서 빠져들고 남들도 그 가치를 인정해준다면 그것이 행복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샐러리맨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다른 삶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음 네 가지를 조언한다. 첫째는 현재 생활에서 전력투구를 하며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좋아하는 분야를 찾았으면 공부를 해라. 전문성은 새로운 분야를 찾아나설 때 시행착오를 피하게 할 수는 없으나 줄여줄 수는 있다고 한다. 이 교장은 대학시절 사학을 전공했지만 나중에 필요를 느껴 곤충분류학(석사), 곤충생태학(박사)을 공부했다.

    셋째는 가족의 동의를 얻으라는 것. 이 교장이 사표를 낼 때 아내가 반대했다. 그러나 전국 자연생태계 학습탐사단장으로 활동하며 모든 탐사활동에 가족을 동반했었기에 아내도 결국 남편의 열정에 동의했다고 한다.

    넷째는 경제적 문제로 곤란을 겪지 않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이 교장은 강원도로 들어갈 때 부동산과 주식 등을 처분한 여윳돈이 충분했다고 한다. 운 좋게 불린 자금이 있었기에 배짱 있게 일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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