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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수 있다” 자신감으로 쌓은 금자탑

불혹의 송골매 한화 송진우 프로 통산 200승 … 뛰어난 자기관리, 매 경기가 신기록

  •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나는 할 수 있다” 자신감으로 쌓은 금자탑

세상사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의미의 불혹(不惑). 올해 마흔인 한화의 베테랑 투수 송진우는 선산의 고목나무 같다. 1989년 빙그레(한화의 전신)에서 프로에 데뷔했으니 벌써 18번째 시즌. 그러나 송진우는 정신뿐 아니라 육체도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그의 나이면 대개 은퇴하고 코치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팔팔한 현역이다.

송진우는 단순한 선수가 아니다. 그는 한국프로야구 개인 통산 최다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개인 최다 패전 기록도 갖고 있다. 최다 이닝과 최다 탈삼진, 최다 피안타, 최다 사사구도 그의 차지다. 그래서 그가 경기에 나서면 이기든 지든, 삼진을 잡든 안타를 맞든 기록이 된다. 한국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이란 별명이 빈말이 아니다.

18번째 시즌 아직 팔팔한 현역

산전수전 다 겪은 송진우도 프로 최초 개인 통산 200승 기록을 앞두고는 긴장했던 것일까. 7월30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199승을 거둔 뒤 무려 다섯 번째 도전 만에 8월29일 KIA를 상대로 200승의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시즌 8승째로 아직 네댓 번의 출전 기회가 더 남아 있어 10승 달성도 바라볼 수 있다. 그는 대체 어떤 선수이기에 불혹의 나이에도 20대 못지않은 젊음과 실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송진우는 자기 관리에 철저한 선수라고 말한다. 그의 몸 관리법은 특별한 듯 평범하다. 누구든 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잘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는 사우나를 하는 모습이다. 그는 욕탕 안에서 항상 왼손으로 V자를 그린다. 온몸을 다 담근 상태에서 왼손의 검지와 중지만은 물 밖으로 내놓는 것이다. 검지와 중지는 투수가 공의 실밥을 챌 때 주로 사용하는 손가락이다. 그래서 투수들의 손가락 끝엔 굳은살이 박여 있다. 송진우는 사우나를 할 때 굳은살이 허물어질까봐 조심하는 것이다.

이렇듯 몸을 아끼는 그이지만 남에 비해 훈련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남보다 훈련을 덜 하는 편이다. 그의 인생에서 오버 페이스는 없다. 팀에서 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훈련할 뿐 과외 훈련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훈련할 때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다. 잠을 푹 자면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한 수석 입학생에 비유할 수 있을까.

송진우는 특별히 챙겨 먹는 보양식도 없다. 된장, 장아찌, 시래기 등 전통 음식과 해산물을 즐겨 먹는다. 부업으로 유성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그가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가 늙지 않는 비결 중 하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다. 요즘도 그는 틈만 나면 “나는 젊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되뇐다. 안 좋은 일은 빨리 잊고 좋은 생각만 하려고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37세 때인 2003년 가을. 시즌 내내 괴롭히던 왼쪽 팔꿈치를 고치기 위해 그는 선수 생명을 걸고 수술대에 올랐다. 당시 그는 “내 몸은 빨리 낫는다. 내년에는 마운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주문을 수도 없이 외웠다. 그리고 그의 주문은 현실이 됐다. 이듬해 그는 규정 이닝을 모두 채우며 11승 8패로 제 몫을 다했다.

일반적으로 팔꿈치 수술을 받은 선수는 대개 한두 시즌을 쉰다. 특히 엄청난 힘으로 공을 뿌려야 하는 투수는 재활 기간이 더욱 오래 걸린다. 송진우처럼 가을에 수술한 뒤 이듬해 봄에 돌아오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송진우라고 해서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0년쯤 뛰었을 때인 1990년대 후반 그의 구속이 갑자기 떨어졌다. 왼손 정통파 투수로 140km가 넘는 직구를 씽씽 던지던 그도 구속이 떨어지면서 1997년과 98년에는 6승씩밖에 거두지 못했다. ‘이제 송진우도 한물갔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은퇴하는 모습 상상 어려워

이때 그는 기교파 투수로의 변신을 꾀했다. 강속구 대신 서클체인지업을 비롯한 변화구를 새롭게 배우고 제구력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 것이다. 1999년 그는 거짓말처럼 15승(5패)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했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 판정을 교묘하게 이용할 정도의 제구력 투수로 거듭난 것이다.

요즘도 그의 투구를 눈여겨보면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절묘한 공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0년 가까운 세월 타자를 상대하면서 몸으로 익힌 경기 운영 능력 역시 발군이다.

2000년과 2001년 겨울을 뜨겁게 달궜던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 출범 때 역시 힘든 시간이었다. 당시 선수협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었는데, 송진우는 모든 선수가 부담스러워하던 선수협 초대 회장을 맡아 사태를 무난히 해결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후 송진우는 ‘회장님’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지난해 말 그는 프로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 번째 다년계약을 했다. 계약 기간은 내년까지다. 그렇다면 2008년부터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송진우는 “내 스스로 힘이 떨어졌다고 느낄 때 은퇴하겠다”고 했다. 지금 추세라면 은퇴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팬들은 한동안 ‘전설’을 현실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간동아 552호 (p70~71)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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