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5

2006.07.25

‘한글 창제’에 얽힌 사건…범인을 찾아라

  •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입력2006-07-24 10:3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글 창제’에 얽힌 사건…범인을 찾아라
    여름에 여행서 다음으로 인기 있는 책으로는 추리소설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행간 속으로 떠나는 추리소설 읽기야말로 무더위를 쫓는 좋은 방법임이 틀림없다.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여러 권의 추리소설이 등장했는데 한국 작가의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훈민정음 암살사건’과 ‘뿌리 깊은 나무’다. 두 책은 공교롭게도 훈민정음을 소재로 한 팩션(팩트+픽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배경과 사건 전개과정은 사뭇 다르다.

    ‘훈민정음 암살사건’은 훈민정음 창제의 비밀이 담긴 ‘훈민정음 원류본’을 찾으려는 역사학자 서민영 교수와 강력계 형사 강현석, 이들을 막으려는 일본 우익세력 야마다의 대결 구도로 이루어진다. 이들을 중심축으로 전개되는 내용은 상당히 흥미롭다. 소매치기 사건으로 인해 우연히 등장한 세종대왕의 친필문서, 고문서 감정사의 피살, 훈민정음 원류본 행방의 단서가 되는 암호문, 급기야 야마다의 훈민정음 원류본 위조 등이 숨가쁘게 전개된다.

    이 책은 추리소설의 기본 요건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한글 암호문과 난수표,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이 그렇다. ‘먼은의 재웡의 으아즈닌 긴완으~’으로 시작하는 암호문은 국문학과 역사학에 조예가 없는 사람이라면 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어렵사리 암호문을 풀고 난 해답을 보면 “에이, 쉽잖아” 하고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암호 해독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암호문을 저자의 도움 없이 풀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듯.

    한 가지 더. 이 책은 마치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든다. 범인의 지문을 조회했더니 이미 사망한 특수부대 요원으로 밝혀지는 장면, 강 형사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10대 소녀가 성추행 자작극을 펼치는 장면 등은 전혀 낯설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 소개를 보니 저자는 시나리오 작가다.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 25년(1443) 훈민정음 반포일 이전 7일 동안 궁궐에서 발생한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 살인사건 발생 후 이 사건을 떠맡다시피 한 말단 겸사복(조선시대 왕실친위군) 강채윤은 고군분투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그 후 세 건의 살인사건이 더 일어나는 가운데 채윤은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게 된다. 결국 채윤은 이 사건이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사대주의 성리학자들의 짓임을 밝혀내지만 도리어 위험에 빠지게 된다. 범인의 윤곽이 이미 전반부에서부터 암시돼 있는데도 최종적으로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궁궐 안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뿐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세종대왕과 실용파 학사들의 개혁 노력, 이를 막으려는 사대부들의 정치 음모와 공작, 사대부들에 동조하는 명나라 사신단 등의 이야기들이 탄탄하게 얽혀 있다. 더욱이 성삼문, 정인지, 장영실, 최만리, 이순지, 박팽년 등 역사 속 실재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흥미를 배가시킨다. 물론 그들의 말과 행동은 엄밀히 픽션임을 감안해야 한다.

    ‘훈민정음 살인사건’과 ‘뿌리 깊은 나무’는 추리소설이긴 하지만 역사적 팩트를 다뤘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글 중간 중간 역사 상식으로 알아두면 유익한 내용들이 쉴 새 없이 나온다. 물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지만 말이다.

    훈민정음 암살사건 김재희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380쪽/ 9000원

    뿌리 깊은 나무(전 2권) 이정명 지음/ 밀리언하우스 펴냄/ 각 권 320쪽/ 각 권 9500원



    화제의 책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