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4

2006.07.18

부처별 중복투자·관계기관 비협조·위기대응책 비현실 ˝재난관리 체계 삐걱댄다”

속초소방서 박명식 소방행정과장 고발 “현장인력 확충과 전문화 이뤄져야 더 큰 피해 예방”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6-07-12 17: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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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별 중복투자·관계기관 비협조·위기대응책 비현실 ˝재난관리 체계 삐걱댄다”

    박명식 속초소방서 소방행정과장

    #1 2005년 4월4일 밤 11시53분, 속초소방서 119 상황실에 경보음이 울렸다. 양양 산기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 새벽 3시28분, 강풍에 불길이 삽시간에 번지자 속초소방서는 도내 다른 소방서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산림청과 인근 군부대에 헬기 지원을 요청했다. 날이 밝으면서 산림청 헬기 1대와 군부대 헬기 2대가 진화작업에 투입됐지만 산불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속초소방서는 긴급하게 산림청에 헬기 추가 투입을 요청했다. 그런데 헬기는 산림청 내부의 여러 결재 단계를 거치느라 40~5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오전 10시20분, 산림청은 “산불이 완전 진화됐다”고 발표했다. ‘산불재해지 외곽 경계에 진화선이 설치돼 있고, 산불이 진화선을 넘을 위험이 없게 되었으면 피해구역 안에 남은 불씨가 있어도 산불은 진화된 것으로 본다’는 산림청 훈령 제28조 ‘산불진화완료 판단기준’에 따른 것. 이에 따라 밤새 화마와 사투를 벌였던 소방대원들은 긴급 동원된 시, 군 관계자들에게 잔불 정리를 맡기고 다른 화재현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오후 들어 바람이 거세지면서 다시 산에 불이 붙었고 천년고도의 낙산사까지 불태우고 말았다.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화살은 자리를 이동한 소방대원들에게 쏟아졌다.

    #2 2002년 10월 중순 아침 9시쯤, 대관령 고개에서 관광버스가 50m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는 신고가 접수되자마자 속초소방서 119 응급구조대는 현장으로 출동했다.

    구조작업 후 인원을 확인한 결과 버스 탑승자 38명 중 1명의 행방이 묘연했다. 구조대는 중형 크레인을 동원해 버스를 들어올릴 것을 지시했으나 현장에 나온 관할 경찰서 교통계장에 의해 저지당했다. 인명보다 현장 보존이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협조는 못해줄망정 오히려 방해



    강원도 속초소방서 박명식(59) 소방행정과장이 최근 몇 년간 직접 겪은 일 가운데 일부다. 그는 대형화재와 산불, 태풍, 홍수, 교통사고 등 각종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는데, 간혹 관계기관의 안일한 태도에 불쾌감을 느낀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협조는 못해줄망정 오히려 방해를 받는 황당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1977년 10월1일 강원도 소방공무원 공채 1기로 출발한 그의 소방인생은 올해로 30년째. 2003년 재해대책 유공기관 개인부문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소방공무원으로서 그동안의 공로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그는 정년을 한 해 앞두고 가슴속에 담아뒀던 현장에서의 고충과 한계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았다.

    부처별 중복투자·관계기관 비협조·위기대응책 비현실 ˝재난관리 체계 삐걱댄다”

    지난해 강원도 양양 지역 대형산불 현장에 119 소방대원 등이 긴급 투입되고 있다.

    박 과장은 “재난 현장에서의 느낌, 통제가 되지 않는 처참한 상황, 부하 소방대원들의 애처로움, 시민들의 무한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서게 됐다”며 현장에서 느낀 현 정부 재난관리 체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그는 가장 먼저 현 소방방재청의 비효율적인 조직 구성과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위기대응시스템

    매뉴얼의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소방방재청은 2004년 6월1일 행정자치부의 외청으로 신설된 조직이다. 초창기 소방방재청은 재난에 대처하는 단계에 맞춰 조직을 구성했다. 재난관리 3단계인 ‘예방-대응-복구’에 따라 재난예방을 담당하는 조직,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조직, 사후 복구하는 조직 등 크게 세 조직으로 나눈 것. 소방업무는 두 번째 대응조직에 해당한다.

    박 과장은 “재난관리 단계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대응인데, 소방방재청의 인력 구성을 보면 307명 중 일반직이 241명으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대응조직인 소방직은 67명에 불과하다”면서 “재난의 최전방에서 사투를 벌이는 소방조직은 일반직들에 의해 부가조직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소방직 67명으로는 소방방재청 내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비록 각 지자체에 소속돼 있는 지방직이지만 전국 소방공무원 2만7000여 명, 의용소방대원 8만7000여 명, 의무소방원 2800명 등 11만 명에 달하는 방대한 소방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에도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소방방재청이 설립된 법적 근거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이 법에 따르면 각종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시·도 긴급구조통제단장은 소방본부장이, 시·군·구 긴급구조통제단장은 소방서장이 된다고 규정돼 있다. 본부장은 지자체장인 시장이나 도지사, 군수 등이 맡는다. NSC가 각종 재난에 대비해 마련한 위기관리 매뉴얼도 바로 이 법 규정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매뉴얼 집행 법과 현실은 전혀 달라”

    매뉴얼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관련 법 규정이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박 과장이 그동안 현장에서 접한 현실은 법과 동떨어져 있었다.

    “법만 통제단장이지 소방서장의 말은 구청 말단 공무원이나 경찰서 순경도 잘 듣지 않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통제단장의 역할과 책임을 보장해주려면 법 규정을 좀더 명확하게 하고, 벌칙조항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든 매뉴얼이야말로 탁상행정의 표본이다. 소방서장이 통제단장의 역할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또 관련 기관 간의 협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매뉴얼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통제단장의 역할 강화와 부처 간 협조체제가 우선이고, 매뉴얼은 그 다음이다.”

    부처별 중복투자·관계기관 비협조·위기대응책 비현실 ˝재난관리 체계 삐걱댄다”

    2000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진고개 관광버스 추락사고 현장에서 경찰과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행정부처 간 예산 확보를 위해 벌이는 무리한 사업영역 확장도 문제다. 이는 결국 중복투자와 사업의 부실화를 초래한다는 것이 박 과장이 그동안 현장에서 체득한 ‘상식’이다.

    박 과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보건복지부의 ‘129(대한응급환자이송단)’와 ‘1339(응급의료정보센터)’를 꼽았다. 129는 1991년 노태우 정권 시절 보건복지부의 전신인 보건사회부가 119 응급구조대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대한적십자에 의해 위탁 운영된 이 조직의 설립목적은 ‘응급환자가 언제 어디서나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러나 129는 비싼 요금에 잦은 교통사고, 무자격자에 의한 응급환자 이송 등 갖가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다가 1997년 이송 서비스를 중단하고 1339로 번호를 바꿔서 응급의료 정보만 제공해주는 기구로 전환했다. 하지만 129는 ‘응급환자 이송단’이라는 사단법인 형태로 남아 있다.

    박 과장은 “환자가 긴급 상황일 때는 속초 지역 이외까지도 119 구급차가 무료로 이송해주는데, 병원에서 119 대신 응급환자이송단을 불러서 환자들에게 불필요하게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응급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129는 지난해 11월 ‘보건복지콜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주요 업무는 보건복지관련 정보 제공 및 상담이다. 여기에는 응급의료 등에 대한 상담도 포함돼 1339의 업무와 일정 부분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박 과장은 “정부가 10여 년 동안 129나 1339에 쏟아부은 예산을 119 구조대에 지원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산림청에서 설립한 ‘산불공중진화대’도 박 과장의 눈에는 한심하다. 이 조직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산불 진화용 헬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산속에서 화재를 진압할 능력을 갖춘 전문요원은 확보하고 있지 않다는 게 박 과장의 지적이다. 결국 산불 진화는 소방대원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박 과장은 소방방재청 내부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민방위를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재난현장에 민방위 대원을 동원하기 위해 관리도 하고 계획도 짠다. 하지만 내가 관할했던 지역에서 실제 동원된 민방위 대원은 내가 아는 한 전혀 없다. 그들이 바로 피해 당사자인데 어떻게 동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중에 보면 민방위 대원 동원 통계가 나온다. 아이러니 아닌가.”

    “독립된 ‘소방청’ 신설 필요”

    최근 소방방재청이 전국적으로 모집하고 있는 자율방재단은 기존의 의용소방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각 시·군에 30~60명씩, 전국적으로 8만7000여 명의 의용소방대가 구성돼 있다. 이들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조직이다. 소방서장이 임명하는 이들은 출동수당과 제복 등을 제공받는다.

    박 과장은 “소방방재청은 지역별 자율방재단에 일반인들의 참여가 저조하자 의용소방대원의 참여도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미 구성된 조직이 있는데 이들을 활용하지 않고 또다시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소방방재청 업무의 대부분을 일반직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부처별 중복투자·관계기관 비협조·위기대응책 비현실 ˝재난관리 체계 삐걱댄다”
    박 과장은 무엇보다도 소방인력의 확충과 전문화가 가장 아쉽다고 말한다. 강원도 각 소방서의 119 구조대원의 구성은 9명 내지 11명이다. 이 중 정예요원은 2~3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7~8명은 일반 화재진압요원 중에서 차출해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1개조에 4~5명씩으로 나눠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산악지대가 많은 이 지역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들은 목숨을 걸고 구조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주어진 무전기는 일반 경찰이 사용하는 것보다 성능이 떨어져 위급 상황에서 교신이 끊어지기 일쑤다.

    박 과장은 이 같은 총체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립된 ‘소방청’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소방방재청 조직(소방정책본부 6개 팀)으로는 소방조직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연간 100만 건 이상의 사고를 처리하는 데도 역부족이다. 또 소방본부장과 소방서장의 현장 지휘권이 확보되지 않는 한 재난피해를 줄이기 어렵다.”

    박 과장은 “소방공무원 대부분이 지방공무원이지만 동일한 신분법을 적용받고 있어서 ‘소방청장’을 정점으로 원활한 지휘통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으며, 이미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 4개 시·도에서 민방위와 방재 업무를 소방으로 완전 또는 부분통합해 운영하고 있다”면서 단독 소방청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임을 강조했다.

    소방방재청의 반박

    "현장 지휘 어려움, 통합 지휘망 구축되면 해소"


    부처별 중복투자·관계기관 비협조·위기대응책 비현실 ˝재난관리 체계 삐걱댄다”
    소방방재청은 속초소방서 박명식 소방행정과장의 지적에 대해 일부 사실과 다른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소방방재청은 "본청의 주요 기능은 현장집행 업무가 아니라 법과 재도 등 주요 정책적 사상을 관장하는 것"이라며 "정원 309명 중 일반직 198명, 정무직 및 별정직 9명, 기능직 35명과 비교해볼 떄 소방직 67명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자율방재단과 관련해서는 "소방 업무 보조로 임무가 한정돼 있는 의용소방대와 달리 재난의 예방·대응·복구 등 재난관리 전 분야에서 민간의 참여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민간의 방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또 "자율방재단은 '자연재해대책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의용소방대를 개편해 자율방재단을 만들려면 법적인 제한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게 부연설명이다.

    소방방재청은 통제권 문제에 대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령상 통제단장의 역할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지만 향후 통합지휘망(TRS)등이 구축되면 해소될 것"이라고 밝혓다.

    또한 민방위 대원 동원 문제에 대해서는 "현 민방위는 재난피해를 당한 대원이 동원돼야 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동원이 곤란하다"며 박 과장의 지적을 인정했다. 소방방재청은 "폭설, 태풍, 산불 등 각종 재난복구 등에 만방위대장(통·리장)과 대원(주민)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고, 통계도 자율적으로 참여한 실적만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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