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0

2006.06.20

미술관이야 예술작품이야

서울대 미술관 우여곡절 끝 개관 … ‘현대미술로의 초대’ 첫 기획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06-14 16:4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술관이야 예술작품이야

    현존하는 건축가 중 도시 설계·기획에서 세계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는 램 쿨하스의 서울대 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미술관으로 대학과 지역 주민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기대를 모은다.

    6월8일 우리나라의 대학에 소속된 미술관으로는 첫 번째가 되는 서울대학교 미술관이 문을 열고 개관전 ‘현대미술로의 초대’를 시작했다.

    “개관까지 너무 힘든 일이 많아서 기쁘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앞으로 전문가가 봐도 인정할 만한 기획을 계속해나갈 생각입니다.”

    초대 미술관장 정형민 미술대 교수(동양화)의 ‘힘들다’는 말은 공연한 엄살이 아니다. 1995년에 시작된 미술관 건축이 IMF와 공사상의 문제점, 미술관 운영을 둘러싼 대학 내 갈등까지 겹치면서 몇 차례나 공사가 미뤄지고 바뀐 끝에 올해 들어와서야 결실을 보게 됐기 때문이다. 삼성이 미술관 건물을 기부하고, 지난해 말 학예실이 완전히 새로 꾸며져 이번에 정식 개관을 하게 됐다. 하지만 미술관의 정체성 확립과 예산 확보 등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서울대 미술관의 최대 특징이자 자랑은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램 쿨하스가 설계한 기념비적인 건물. 지하 3층, 지상 3층의 미술관 내부는 중앙계단으로 이뤄진 코어 공간, 강의 및 교육 공간, 전시공간 등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코어 공간은 강의실과 전시실을 철골구조물로 연결해 잡아주는 축으로, 모든 공간들은 공중에 기둥도 없이 떠 있다. 교육과 전시, 공연과 영화 상영이 가능한 다목적 공간은 관악산의 자연 경사면을 그대로 설계에 도입한 곡선 계단이다.

    정체성 확립·예산 확보 등 넘어야 할 산 높아



    개관전 ‘현대미술로의 초대’ 또한 세계 현대미술 걸작의 ‘요점 정리’인 듯 깔끔하다. 프랭크 스텔라, 로스 블레크너, 제니 홀저,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고 서세옥, 이우환, 이상남 등 한국작가들의 추상작품들도 사이사이에서 쟁쟁한 빛을 발하고 있다.

    개관전을 기획한 정신영 큐레이터는 “소재의 특징을 살린 ‘형식주의적 추상’과 흰색 평면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고민한 ‘반복의 미술’, 대량생산 시대의 ‘기계적 미학’, 추상에 반항한 ‘재현의 충동’ 등 4개 특징으로 현대미술을 설명했기 때문에 미술을 알고자 하는 관람객에게 매우 유용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선 서울대 안의 3만 명 식구들이 모두 한 번씩은 다녀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미술관 옆 서울대 박물관

    2만여 점의 소장품 수준도 높아


    미술관이야 예술작품이야

    고종의 장례식에 모인 인파. 대한문 앞의 통곡 모습(1919). 덕혜옹주의 마지막 소학교에서의 모습(1925, 오른쪽)

    서울대 미술관의 바로 옆에는 서울대 박물관이 있다. 미술관의 소장품은 300여 점이 채 안 되기 때문에 상설전이 불가능한 반면, 경성제국대학 시절부터 수집해온 박물관의 소장품은 2만여 점을 넘을 만큼 방대하고 수준도 높다. 서울대 미술관을 방문한다면 박물관도 필히 들러보길 권한다. 박물관 전시실은 10월15일 개교기념일에 맞춰 새롭게 정비될 예정.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마지막 황실, 잊혀진 대한제국’전이 열리고 있는 박물관에도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이 전시는 조선 침탈에 관여한 일본 관리가 경성제국대학 자료실에 남겨놓은 사진앨범 세 권을 발굴 공개한 것. 장례식마저 일본식으로 치러진 비운의 고종황제, 강제 유학을 갔던 영친왕, 일제에 의해 정신병자로 알려졌던 덕혜옹주의 기품 있는 모습 등 오래된 사진 한 장 한 장에서 대한제국의 비극과 백성의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일본어로 쓰인 ‘국어독본’을 읽고 있는 덕혜옹주의 사진 앞에서 나이 든 관람객들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8월19일까지.


    미술관이야 예술작품이야

    ① 리처드 롱, ‘San Circle’. 1993년 작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찾은 화강암으로 작업.<br>② 이상남, ‘Arcus+Spheroid1008’.<br>③ 조지 시걸, ‘Rush Hour’. 개관 기념 행사에 정운찬 서울대 총장, 홍라희 삼성 리움미술관장 등 대학 안팎 인사들이 참석했다.<br>④ 댄 플래빈, ‘무제(타틀린을 위한 기념비)’.<br>⑤ 이우환, ‘점에서’.

    강의실에서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초대 큐레이터 헨리 겔드젤러가 교류했던 현대작가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 영화 ‘누가 예술을 정의하는가?’가 하루 4회 상영 중이다. 미술관에서 직접 수입해 자막까지 붙인 작품으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아쉬울 만큼 재미있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가족단위 관람객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관람 무료, 8월 중순까지 전시 예정.

    램 쿨하스의 건축물

    대학과 지역 연결 … 소통 의지 표현


    미술관이야 예술작품이야

    미술관이 자리 잡은 관악산의 경사 지형을 그대로 살린 미술관 내부의 다목적 강의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건축가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공간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네덜란드와 우리나라를 가깝게 만든 또 한 명의 세계적 스타가 바로 건축가 램 쿨하스다.

    암스테르담 출신의 램 쿨하스는 2004년 개관한 삼성 리움미술관 설계에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등 두 거장과 함께 참여한 바 있다. 서울대 미술관 건물은 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단독 설계한 작품.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거대 도시화에 비판적이면서도 상업주의의 속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램 쿨하스의 건축 이념이 서울대 미술관에도 잘 드러나 있다는 평이다.

    서울대 정문 왼쪽의 자연 경사면을 그대로 살리고 몸을 굽혀 자리 잡은 미술관은 관람객이 교문을 통하지 않고 곧바로 입장할 수 있어서 대학과 지역을 연결하는 기능도 한다. 원래 부식철로 외관을 설계했다가 반투명 ‘유글래스’로 바꾼 것은 소통의 의지를 표현한 것. 유리 외관과 기둥 없이 ‘공중에 뜬 공간’ 때문에 리움미술관과 비슷하다는 인상도 받지만, 램 쿨하스는 “서울대 미술관이 먼저 설계됐고 첫 번째 단독건물이어서 더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