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6

2006.05.23

“노 와이어, 노 스턴트맨” 순도 100% 생짜 액션

  • 입력2006-05-22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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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와이어, 노 스턴트맨” 순도 100% 생짜 액션
    그는 남자다. 평범하게 걷는 모습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힘이 응축돼 있다. 그의 눈은 매섭다. 웃고 있어도 그 뒤에 숨어 있는 무술인 특유의 날카로움은 감추지 못한다. 고난도 액션 장면이 들어가는 한국 영화에는 빠짐없이 그의 이름이 오른다. 정두홍. 그는 스턴트맨으로 시작해 한국 영화 크레디트에 무술감독의 지위를 확고하게 올려놓은 사람이다. ‘매트릭스’, ‘와호장룡’의 원화평이나 ‘영웅’의 정소동 같은, 세계적으로 진가를 인정받은 홍콩 출신 무술감독들 못지않은 보물을 우리 영화계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대표라는 수식어가 남발되고 있지만, 그는 진정한 국가대표 무술감독이다.

    이런 그가 언제부턴가 스크린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배우들의 무술을 지도하거나 대역으로 발차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배우가 되어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대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처음엔 어색했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그가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다. 그 영화를 만든 류승완 감독과 이번에는 공동 주연을 맡았다. 영화 ‘짝패’는, 그러니까 배우 같지 않은 두 명의 영화인인 감독 류승완과 무술감독 정두홍이 주연을 맡은 버디 무비다. 연기를 하면서 각자 감독과 무술감독의 임무도 차질 없이 해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그들은 이 영화의 공동제작자이기도 하다.

    순제작비 25억원이 들어간 ‘짝패’는 최근 한국 영화 평균제작비로 치면 저예산 영화에 속한다. 가장 절감됐을 법한 부분이 배우들의 출연료다. 제작자 겸 감독, 주연을 맡았으니 출연료가 책정되기야 했겠지만 가져갈 형편은 아니다.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액션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그 이후에도 절친한 감독들, 가령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나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등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연기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 류승완 감독이 주연을 맡고, 정두홍 감독까지 꼬드겨 제작까지 맡게 했다면 거의 배수진을 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만큼 흥행에 성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영화에 가득하다.



    대개 감독이 제작자를 겸할 경우 예산 초과를 우려해 눈에 띄지 않게 타협해가며 스케일을 줄이는 편이다. 그런데 ‘짝패’는 그 반대다. 두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만큼 적어도 액션 면에서는 한국 최강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짝패’의 공식 제작사는 ‘외유내강’이다. 알려진 대로 남편 류승완과 그의 부인 강모 씨의 성씨를 딴 이 회사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 몇 번 기획으로는 참여했지만 제작 타이틀을 내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두홍 감독도 이 영화에 상당 부분 투자를 했기 때문에 공동제작자로 이름이 올랐다.

    정두홍은 인천체육전문대학 무도과를 나왔다. 1966년생으로 불혹을 넘긴 그이지만, 그는 여전히 이팔청춘처럼 허공을 날아다닌다. 현장에서는 당연히 ‘노친네’ 소리를 들을 나이임에도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벽을 차고 그 탄력으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360도, 아니 450도 회전하며 발차기하는 모습을 보면 속이 다 후련하다. 카타르시스란 바로 이런 것이다.

    제작자·주연·무술감독 1인 3역 “한국 최고 액션영화 자신”

    ‘짝패’의 액션 신은 한국 최고다. 이 영화를 뛰어넘는 액션을 당분간 보기 힘들 것이라고 장담한다. 청주와 양수리 오픈 세트에서 촬영된 영화는 대부분 액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류승완, 정두홍 두 사람의 액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두 사람은 대역 없이 촬영했다. 거의 ‘노 와이어, 노 CG’다. 맨몸을 던진 이른바 생짜 액션의 땀냄새가 화면 밖에까지 풀풀 난다.

    “노 와이어, 노 스턴트맨” 순도 100% 생짜 액션

    정두홍이 주연한 첫 영화 ‘짝패’.

    정두홍 감독이야 스턴트맨으로 잔뼈가 굵은 무술 전문 감독이라지만, 류승완 감독도 자신이 직접 액션연기를 했다. 일반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원래 류승완 감독은 성룡의 ‘취권’을 보고 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한 ‘액션 키드’다. 발차기는 당연히 상대의 머리 높이로 올라간다.

    정두홍의 공식 무술 경력은 태권도 4단, 합기도 5단이며 그외에도 격투기, 유도, 권투 등을 섭렵했다. 그는 어린 시절 장동휘, 박노식 등의 액션 영화를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중절모자를 쓴 중년 신사들이 멋있게 발차기하면서 위기에 빠진 여성을 구하는 모습에 액션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막상 이쪽 일을 해보니 스턴트맨은 제작 현장에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독하게 마음먹었다. 대접을 안 해주면 대접받을 만한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노력해서 그는 한국 액션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됐다. 그리고 1999년 설립한 서울 액션스쿨에서 수많은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서울 액션스쿨은 현재 파주 헤이리 아트벨리로 거처를 옮겼다. 연건평 350평에 3층으로 된 건물 안에서 한국 액션의 세계 진출이 모색되고 있다. ‘짝패’에도 그의 제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스턴트맨들이 마땅히 훈련할 장소가 없어서 한국체육진흥회 회장님 앞에서 무릎 꿇고 애원해 보라매공원 체육관을 빌린 게 8년 전이다. 이번에 파주에 새로 건립한 마샬아트 센터에서는 체계적인 교육도 할 수 있고 와이어 액션 촬영도 가능하다. 샤워시설도 있다.”

    2003년 보라매공원 체육관이 리모델링을 하면서 퇴거 지시가 떨어졌다. 그는 자신만 쳐다보던 후배와 제자들을 위해 술을 마신 뒤 강우석 감독을 찾아갔다. 너무나 쉽게 강 감독은 승낙했고, 시네마 서비스가 땅과 건축비 전액을 조달한 뒤 서울액션스쿨에 운영권을 양도했다.

    80여 명의 지원자 가운데 60명을 추려 6개월 동안 교육하면 15명 정도 남는다. 물론 교육비는 전혀 없다. 충남 부여 시골에서 월사금도 못 낼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난 그를, 태권도장 관장님이 무료로 받아주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정두홍은 없었다. 그래서 돈 없어도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었다.

    미국 B급 영화시장 겨냥 올해 말 감독 데뷔

    “외국 DVD 숍의 액션 코너에 한국 영화가 꽂혀 있기를 바랐다. 이번 영화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영화에 투자해서 저예산으로 만들면 앞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짝패’는 그가 류승완 감독과 의기투합해서 만든 순도 100%의 액션영화다. 인라인스케이트나 산악자전거까지 등장하는 힙합 버전의 액션도 등장한다. 정두홍 감독이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아이디어였는데, 이소룡·이연걸·성룡의 뒤를 잇는 아시아의 무술스타 토니 자의 ‘옹박’에 비슷한 장면이 등장해서 너무 속상했다고 한다.

    “십자인대가 끊어지면 보통사람은 걷기도 힘들다. 류승완 감독은 촬영 도중 무릎의 십자인대가 끊어졌는데도 촬영이 다 끝난 뒤에야 복원수술을 받았다. 내가 류 감독의 연기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지만 액션 배우로는 100점이다.”

    정두홍 감독은 후배이자 액션영화의 절친한 동료인 류승완 감독을 이렇게 평했다. 이제 정두홍 무술감독 이름 앞에서 무술이라는 글자를 뺄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는 빠르면 올해 말, 감독으로 데뷔한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임스 리를 주인공으로 해 미국 B급 시장을 겨냥하고 찍는 영화다. ‘바운서’(가제)는 정두홍 감독의 데뷔작이면서 한국 액션영화의 세계 진출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짝패’의 싱싱하게 살아 있는 액션을 보면 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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