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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근혜 교육독재의 회상

정치로 시작해 파국으로 치닫는 국정 역사교과서

‘하야 요구’ 맞선 대통령의 국정 복귀 카드 “내용 공개 즉시 폭탄 터질 것”

  • 김기중 서울신문 기자 gjkim@seoul.co.kr

정치로 시작해 파국으로 치닫는 국정 역사교과서

정치로 시작해 파국으로 치닫는 국정 역사교과서

2015년 11월 3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기자회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동아일보]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요. 교육부 사람은 대부분 ‘그냥 멈췄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일 겁니다.”

교육부 한 관계자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11월 초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였다. 그의 한숨에는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 공개를 앞둔 교육부의 고민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국정 역사교과서는 미뤄졌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바람으로 그쳤다.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예정대로 공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비선(秘線)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로 흔들리던 국정 역사교과서가 결국 ‘강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교육부는 11월 28일 교과서 형태로 제작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하겠다고 21일 밝혔다. 박성민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부단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현장 검토본 작업은 사실상 끝난 상태다. 28일 별도 인터넷 홈페이지에 전자책을 올리고 취재진에게 교과서 형태로 배부해 공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행’ 가닥 잡은 역사교과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최근 ‘최순실 역풍’을 맞는 듯했다. 학계와 시민사회가 ‘최순실 교과서’라고 이름 붙이고 거세게 반대했다. 전국 역사·역사교육 대학교수 560여 명과 교사 모임인 전국역사교사모임, 19개 지역별 역사교사모임 등이 정부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중단을 요구했다. 특히 1년 전 국정화에 찬성했던 보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마저 “친일·독재 미화, 건국절 제정 등 교육현장의 여론과 배치되는 방향으로 (국정 역사교과서가) 제작되면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방침을 바꿨다.



야 3당의 공격도 거셌다. 이들은 11월 16일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중단 및 폐기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총리 후보자가 공공연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진보진영과 야권은 물론, 그동안 국정교과서를 지지해왔던 보수 교육계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최순실 씨 국정농단 파장이 점점 더 커지자 결국 교육부 내부에서도 ‘보류 또는 재검토’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거부한 직후다.

검찰이 대통령을 조사하겠다고 하자, 청와대는 교육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관련 발표 하루 전날인 11월 20일 검찰 조사 거부 방침을 천명하며 ‘탄핵하라’는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그리고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 대통령의 ‘국정 복귀’ 상징이 됐다. 그동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교육부 의지보다 대통령 의지가 더 컸다”는 말이 많았다. 이 말이 기정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과정에 박 대통령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음은 지난 과정에서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6월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일간지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청소년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청소년 역사교육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는 응답자들이 ‘북침’과 ‘남침’ 용어를 혼동해 나온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 발언 이후 같은 달 25일까지 일주일 동안 3번에 걸쳐 같은 취지의 발언을 반복했다.

이후 발생한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파동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2013년 8월 30일 국사편찬위원회 검정심의위원회가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해 적합 판정을 내렸는데,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사실 오류도 많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진보진영의 반격이 거셌다.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0%대에 그쳤고,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진영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논란이 계속되자 교육부가 나섰다. 2013년 12월 서남수 당시 교육부 장관이 교과서 검정 단계에서 오류를 완전히 바로잡을 수 있도록 “검정시스템을 전면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이듬해 1월 당정협의를 거친 뒤 국정 전환을 포함해 근본적인 교과서 체제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국정화를 시사한 셈이다. 이어 2014년 7월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같은 해 10월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여론조사가 진행됐다. 이때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는 해를 넘겨 2015년 4월에야 공개됐다. 일반인 2000명, 교사 5000명, 학부모 3000명 등 1만 명이 참여한 조사에서 응답자 48.6%는 국정제를, 48.1%는 검정제를 찬성한다고 밝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사실상 정해놓은 상태에서 근거를 확보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처럼 추진 과정에서 상당히 무리한 대목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정부는 결국 지난해 11월 3일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못 박았다. 황교안 총리는 이 내용을 밝히는 자리에서 “전국 학교의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고 했다. 전국 2300여 고교 가운데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곳이 3곳밖에 안 됐다는 얘기다.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빚은 교학사 교과서를 뺀 나머지 교과서를 모두 편향적인 교과서로 규정한 셈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발표한 직후부터 많은 문제가 노출됐다. 대표 집필을 맡기로 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여기자 성희롱 발언으로 중도 하차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를 역이용했다. 최 명예교수의 갑작스러운 사퇴가 언론 탓이라고 주장하면서 집필진 보호를 구실로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과정을 모두 비공개로 전환한 것이다.



너무도 정치적인, 너무도 파괴적인

정치로 시작해 파국으로 치닫는 국정 역사교과서

2015년 11월 20일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연가투쟁’에 참가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이 ‘국정화 철회’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일보]

최 명예교수 사퇴 이후 현재까지 알려진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은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전국 480여 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네트워크)는 46명의 집필진 가운데 신 명예교수 외 서모 D대 교수(고대사), 윤모 D대 교수(고구려사), 박모 K대 명예교수(고려사), 허모 S대 명예교수(서양사), 손모 K대 교수(조선사·한일관계사), 한모 K대 교수(근대사), 이모 K대 교수(중세사) 등 7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강모 M대 교수와 허모 K대 교수 등 2명은 심의위원 16명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대부분 우편향 학자로 알려진 이들은 현재 교과서 집필 여부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상태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이에 대해 “현재 확인된 집필진은 대부분 재야 학자로 학계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라며 “네트워크 측이 밝힌 명단이 맞다면 앞으로 큰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이번 교과서 대표 집필자인 신형식 명예교수는 신라사 전공자다. 학계 일각에서는 “신 명예교수는 남한에서 번성한 신라가 역사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원로 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국정 역사교과서에 이런 국수주의적 관점이 반영됐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큰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건국절’ 논란 역시 국정 역사교과서 공개 후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건국절은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봐야 한다는 뉴라이트 등 보수진영의 주장을 수용한 용어다. 이번에 공개될 국정 역사교과서에는 건국절이라는 단어 자체는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날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 아닌, ‘대한민국이 수립된 날’로 기술할 예정이라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진보진영은 벌써부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정교과서가 나오더라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1월 22일 성명을 내고 국정화 강행 시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 검토 과정에 서울교육청 소속 교사의 참여를 거부하도록 하고 각 학교장과 운영위원장, 역사교사를 중심으로 국정 역사교과서 타당성을 주제로 대규모 토론회도 열 예정이다. 서울을 비롯한 각 시·도교육감은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 공개 직전인 24일 이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교과서 대금 지급 거부나 교과서 배포 거부 등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최순실 씨의 비선 실세 논란으로 정국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검찰 조사가 예정된 가운데 자신을 탄핵해보라고 맞서는 대통령의 대응 신호탄이다. 이 신호탄 뒤로 수류탄이 터질까, 아니면 핵폭탄이 터질까.






주간동아 2016.11.30 1065호 (p50~51)

김기중 서울신문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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