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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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좋은 프로 … 안방에선 욕하던 프로 선택

  • 배국남 마이데일리 대중문화 전문기자 knbae24@hanmail.net

    입력2006-05-08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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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만 좋은 프로 … 안방에선 욕하던 프로 선택

    ‘별난 여자 별난 남자’, ‘하늘이시여’

    한 나라의 시청자 수준과 유권자 수준은 같다는 말이 있다. 국회의사당을 비리와 부정부패, 무능으로 얼룩지게 하는 일부 의원들을 4년 내내 욕하다가 총선 투표날에는 어김없이 비리와 부정부패에 연루된 의원을 찍는 유권자가 적지 않다.

    시청자들은 늘 요구한다. 자극적인 저질 프로그램만 방송하지 말고 좋은 프로그램, 훌륭한 작품을 방송하라고. 그러나 막상 제작진이 정성과 노력, 그리고 막대한 시간과 돈을 들여 독창성과 실험성, 주제의식이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면 상당수 시청자는 그 프로그램을 외면한다. 그들은 평소 저질이라고 욕하던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린다.

    요즘 시청률 1, 2위를 기록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이 같은 시청자의 이중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엎치락뒤치락하며 30%대 시청률로 전체 프로그램 시청률 1, 2위를 기록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KBS의 일일 드라마 ‘별난 여자 별난 남자’와 SBS 주말 드라마 ‘하늘이시여’다. 이 두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에도 ‘한국 드라마 병폐의 종합전시장’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다.

    시청률만 높으면 드라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무조건 늘리고 본다는 고무줄 편성까지 닮은 두 드라마는 묘하게도 비슷한 폐해를 보인다. 우선 애당초 기획보다 횟수를 대폭 늘리면서 드라마의 긴장감이 떨어지고 불필요한 에피소드가 많아지는 등 늘리기 폐단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 획일성의 주범으로 꼽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자랐지만 순수하고 착한 여성과 외모·조건이 출중하면서도 성격까지 좋은 재벌 2세 또는 완벽한 남자라는 정형적 캐릭터, 갈등의 증폭 국면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과 중병, 지극히 작위적인 선정성과 자극성에 따른 논란 촉발까지 두 드라마는 유사점이 많다.

    여기에 더해 ‘하늘이시여’는 임성한 작가의 자기 복제에 가까운 캐릭터 반복, 상황설정, 갈등전개 방식 등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고, ‘별난 여자, 별난 남자’는 수십 년 동안 전혀 바뀌지 않은 착한 며느리와 극악한 시어머니의 갈등, 혈연 집착주의 등 스테레오타입의 묘사로 인해 구시대적 편견를 심화시킨다는 병폐를 노출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병폐와 자극성이 야누스의 얼굴처럼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두 드라마의 독성(毒性)에도 불구하고 그 독성에 길들여져 새로운 주제나 독창성으로 무장한 드라마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욕하면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시청자의 이중성은 개선돼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은 하늘”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구악의 행태를 반복하듯, 시청자의 이중성은 “좋은 프로그램 만들면 뭐 해, 보지도 않는 걸”이라는 방송사 제작진의 자조를 자아내고,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면 선정성도 폭력성도 서슴지 않는 방송사의 무한질주를 조장한다. 또 프로그램과 장르의 획일성 심화,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의 감소 등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한다.

    최근 수년 동안 한 장애인 가족을 추적한 완성도 높은 다큐멘터리가 방송됐지만 시청률은 불과 5%대에 그쳤다. 방송가에서는 오늘도 작품 제작에 최선을 다하고도 낮은 시청률에 절망하는 제작진의 한숨 소리가 터져나올 것이다. 이제 여기에 시청자들이 답할 차례다. 겉으로는 좋은 프로그램 제작을 요구하고, 안방에선 바깥에서 욕하던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리는 이중성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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