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4

2006.05.09

“호주 해안서 고래 잡지 마라!”

일본 과학적 탐구 이유로 마구잡이 포획 … 호주 정부 “포경완전금지법 추진” 전면戰

  • 애들레이드=최용진 통신원 jin0070428@hanmail.net

    입력2006-05-04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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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해안서 고래 잡지 마라!”

    1월17일 일본의 ‘유신마루’호가 호주 인근 해안에서 고래를 잡고 있다.

    최근 또다시 불거진 한-일 간 독도 외교전은 호주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호주도 일본과의 관계가 껄끄럽다. 영토가 아니라, 고래 때문이다.

    고래의 주요 이동경로 중 하나는 남극해와 인접한 호주 해안인데, 일본이 호주 해안에서 마구잡이식으로 고래를 잡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학적 탐구’라는 명분으로 호주 해안에서 매년 상당한 양의 고래를 잡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잡아들이는 고래의 양이 모두 과학적 탐구에 쓰인다고 보기엔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일본이 잡아가는 고래는 매년 1360여 마리. 지난해에는 935마리의 밍크고래를 잡아갔다. 요즘에는 혹등고래는 물론이요, 핀고래까지도 마구잡이로 낚아 올리고 있다.

    매년 1300여 마리 잡아가

    1986년 세계적으로 고래사냥이 금지되면서 ‘과학적 탐구를 위해서는 고래를 잡을 수 있다’는 국제협약이 만들어졌다. 일본은 이듬해부터 바닷속 생태학을 연구하는 프로그램을 잇달아 만들어 이 협약에 따라 호주 해안에서 고래잡이를 시작했다. 고래의 이동경로, 번식과정 등을 조사한다면서 자기 나라도 아닌 호주 해안에서 당당하게 고래를 잡아온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고래를 바다에 그대로 버릴 수 없다’고 규정한 까닭에 연구를 마친 고래는 일본 어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호주 사람들이 단단히 화가 날 이유가 충분하다.



    최근 호주 정부는 ‘과학적 탐구를 위해 고래를 잡는다’는 일본 주장에 대한 반박 근거를 찾기 위해 전 세계 14개국 과학자 62명을 모집해 호주의 탐사선에 태웠다. 10주 동안의 조사를 통해 일본이 과학적 연구를 위해 고래를 굳이 살상할 필요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다.

    연구팀의 조사 결과는 ‘아니다’였다. “굳이 고래를 살상할 필요가 없으며, 고래는 해양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동물이기 때문에 살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 연구팀은 “특히 호주와 인접한 남극 인근해의 생태계 유지에 고래가 큰 기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일본은 “해양학자들이 과학적인 목적으로만 고래를 잡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의혹의 눈길은 여전하다. 왜냐하면 현재 고래를 잡고 있는 일본 연구단체 ‘세타센리서치협회’를 후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일본어업협회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자민당 내 국수주의 성향의 의원들이기 때문이다.

    포경 막던 그린피스 사고로 호주인들 분노

    게다가 일본은 상업 목적의 고래잡이 허용을 위한 국제적인 로비까지 조용하게 벌이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국수주의자이자 전직 외교관 출신인 마사쿠키 고마추는 일본의 고래잡이 정당성을 주장하는 발언으로 국제사회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그는 “미국, 영국, 호주 등 고래잡이에 반대하는 나라들은 오래전부터 농업과 목축업이 발달돼 어류 섭취보다 육류 섭취에 익숙하지만, 일본은 어류 섭취에 더 익숙하다”며 “죽은 고래가 일본에서 유통되는 것은 문화 특성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년 동안 고래잡이가 금지돼 고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면서 “고래 수를 조절하기 위해서라도 고래잡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해 국제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호주 해안서 고래 잡지 마라!”

    일본의 고래잡이 어선을 뒤쫓는 그린피스 선박.

    호주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호주의 환경장관 캠벨은 “올 6월 개최될 국제포경위원회에서 정식으로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의 고래잡이를 완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고래의 나이를 알아본다며 고래의 귀만 자른다고 해놓고서는 몸 전체를 토막 내 일본 어시장에서 팔게 하는 일본 정부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며 일본을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고래잡이 전면금지’를 위한 회원국들의 합의는 그리 쉽지 않을 전망이다. 상업적인 고래잡이가 전면 금지된 이후 일본은 꾸준하게 카리브해 인근의 섬나라들과 남태평양 연안의 국가들을 상대로 경제적인 원조를 약속하며 일본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해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래 개체수가 증가해 어획량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까지 도출해내 이들 국가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호주인들의 일본에 대한 ‘악감정’은 한국인들 못지않은 형편이다. 일본이 순수하게 과학적 목적으로만 고래를 잡고 있다고 믿는 호주 사람들은 거의 없다. 호주 해안에 잠복하고 있다가 일본 어선이 고래잡이를 시도할 때마다 이들의 어업 행위를 방해하고 있는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에게 호주인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때론 사고로 이어진다. 1월 일본 어선이 그린피스 선박에 고의로 부딪혀 그린피스 선박이 좌초할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일본은 이 사고를 “우연한 충돌사고”라고 주장하고 있어 일본에 대한 호주인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고래잡이가 전면 금지된 이후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이 잡은 고래의 수는 현재까지 2만5000여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래잡이 반대 국가와 찬성 국가 사이의 ‘고래싸움’이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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