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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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독일 국적 쉽게 못 줘!

헤센 주 등 국적취득 인터뷰 강화 … 많은 독일인 공감, 민족주의 부활 조짐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06-04-19 16: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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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독일 국적 쉽게 못 줘!

    독일 베를린 거리에 서 있는 이슬람권 이민자들(오른쪽 아래)과 프랑크푸르트 시내 전경. 최근 독일은 독일 국적을 취득하고도 자신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고수하며 사는 이민자들에게 독일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독일을 관통하는 3개의 대형 하천 이름을 말하시오.” “독일의 과학자 오토 한(Otto Hahn)이 1938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실험은 무엇입니까?” “2004년 상영된 영화 ‘베른의 기적’은 어떠한 역사적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까?”….

    이제 독일 헤센 주에서 독일 국적 취득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3월14일 헤센 주의 내무장관 폴커 부피어는 국적 담당관들의 인터뷰 지침으로 이와 같은 100여 개의 질문 목록을 제시했다.

    현행 독일 국적법에 따라 독일 거주 외국인들은 8년 이상의 합법적인 독일 체류, 확실한 직업, 충분한 독일어 구사능력만 있으면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1938년 오토 한이 핵분열 실험에 성공했고, 로베르트 코흐가 콜레라와 결핵균을 발견했다는 사실과 같은 독일의 역사·지리·법체계 등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 작은 조치이지만, 다른 여러 주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지리·법체계 공부해야

    1월에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의 인터뷰 지침이 문제가 됐다. 이 지침은 일명 ‘모슬렘 테스트’라고 불리며 조롱거리가 되었는데, 주로 이슬람권 남성의 가치관을 테스트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9·11 테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위에 테러단체와 연루된 사람이 있다면 즉각 신고하겠는가?’ ‘당신 딸이 학교에서 수영 수업을 받고, 수련회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하겠는가?’ 등이 논란을 일으킨 질문들이다.



    이젠 독일 국적 쉽게 못 줘!
    독일 국적 취득 장벽을 한층 높인 이 같은 움직임은 다른 주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니더작센 주는 앞으로 국적 취득 희망자들에게 10시간의 의무 소양교육을 할 계획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독일어 능력시험을 강화할 예정이고, 바이에른 주에서도 모종(?)의 준비를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헤센 주의 새로운 인터뷰 지침이 발표되자 곧장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사민당은 “그러한 지식 테스트는 외국인을 독일 주류사회로 통합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녹색당은 “헤센 주 위정자들은 퀴즈 프로그램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를 너무 열심히 본 것 아니냐”고 조롱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신문은 “이런 시험이라면 독일 지성계의 교황이라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조차도 탈락했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라이히라니츠키는 폴란드 출신으로 1958년 독일 국적을 취득했으며 현재 독일 최고의 문학비평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헤센 주의 편을 든 것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거의 유일했다. 그는 “독일 국적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독일 국적을 얻기 원한다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며 동감을 표했다. 헤센 주 또한 “새로운 국가의 국민이 되려는 사람은 그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웃나라 네덜란드가 최근 행한 국적시험 강화조치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는 지식 테스트를 치를 뿐만 아니라 ‘교육용 영상자료’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이 자료에는 남자들끼리 키스하는 장면, 가슴을 완전히 노출한 해변의 여인, 광적인 록 공연 등이 담겨 있다. 네덜란드인이 되려면 이 정도의 상황은 관용해야 한다는 요구인 것이다.

    독일은 유럽에서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현재 670만 명의 외국인이 독일에 거주하고 있으며, 최근 3년간 40만 명이 독일 국적 취득을 희망했다. 그러나 기존의 국적 취득 절차는 지나칠 정도로 간소했다. 슈피겔지에 따르면, 베를린 외국인관청에 근무하는 페트라 미콜라이트는 2004년 한 해 동안 혼자서 1258명에게 독일 국적을 부여했다. 자세한 서류검사가 있긴 하지만, 인터뷰 당일에 1인당 255유로의 수수료를 받고 자유민주 헌법 질서 준수에 당사자가 서명하고 악수하면 끝이었다.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들은 명목상으로만 독일인이지 실제로는 과거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 고향 사람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전통음식을 고집하며, 위성방송으로 모국의 음악과 드라마를 실시간 접한다. 아이들을 전통 가치관에 따라 교육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독일법에 따르기보다는 그들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려 한다. 아무래도 독일어 실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하는 비율(20%)이 높고, 취업도 잘 되지 않아 이들의 실업률은 독일 평균의 2배(25.9%)에 달한다.

    하지만 독일의 발달된 사회보장제도가 이들을 먹여살린다. 독일의 사회보장시스템에 과도한 압박이 가해지는 셈이다. 지난 슈뢰더 정권에서는 ‘다문화 사회와 관용’의 구호가 한창 드높았지만, 결국 남은 것은 독일이라는 본류 안에 터키·이란·중국이 별도로 존재하는 ‘평행사회(Parallel Gesellschaft)’뿐이었다. 이 때문에 더욱 실효성 있게 외국인들을 독일 주류사회로 편입시키려면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3년간 40만 명 독일 국적 취득 희망

    무엇이 독일적인 것이고, 또 독일인이 되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오래전부터 독일에서는 나치 시절의 과오 때문에 국가 정체성을 묻는 것이 금기시돼왔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가 상당 부분 아물고 전 세계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시점에서 독일의 민족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과거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독일인들이 독일 국기를 흔드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독일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그렇게 한다. 두 달 후에 열리는 2006년 독일월드컵을 ‘독일 민족 중흥의 계기’로 삼겠다는 각오가 도처에서 느껴진다.

    헤센 주의 국적 취득 시험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보수파의 승리로 끝났다. 독일 국적을 얻으려면, 정말로 ‘독일 사람’이 될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 많은 독일인들이 공감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독일 민족주의의 부활 조짐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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