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0

2006.04.11

투쟁보다 더 빛나는 ‘용서의 삶’

  •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입력2006-04-05 1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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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보다 더 빛나는 ‘용서의 삶’
    만델라와 김대중. 차별과 독재에 대한 투쟁, 탄압, 옥고, 대통령, 노벨평화상…. 이들만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또 있을까? 같은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은 서로 통했다. 이들과 관련된 이야기 한 토막. 1997년 당시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만델라 대통령이 자신의 딸을 통해 선물을 보내왔다. 만델라가 27년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항상 지녔던 손목시계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주주의와 정치적 기적을 지켜본 상징적인 물건”이라는 설명이 함께 전해졌다. 김 후보는 답례로 자신이 20여 년 동안 사용해온 낡은 가방을 선물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인생 선배 만델라의 뒤를 이어….

    이렇듯 각별한 두 사람이 합작해 책을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만델라 전 대통령이 쓴 책을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번역한 것이다. 출간 당시 이 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였으나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당시 사정으로 독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읽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만델라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삶이 깨알같이 기록돼 있다. 그의 삶은 개인의 삶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하다. 그의 삶은 남아공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역사이고, 나아가 세계 인권운동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에 저항해 투쟁을 이끌었고 이후 정부의 탄압과 투옥을 견뎌낸 뒤 대통령 당선이라는 극적 하이라이트를 맞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의 투쟁보다 용서에 더 눈길이 간다. 첫 출간 이후의 이야기들이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여기에 만델라의 용서에 관한 내용이 있다. 만델라는 1960년 70여 명이 숨진 ‘샤프빌 대학살 사건’에 충격을 받은 뒤 폭력 무장투쟁으로 돌아섰다. 그 후 1962년 체포돼 오랜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신념은 더욱 강해졌지만 그와 비례해 용서하는 마음도 함께 커졌다.

    세계 인권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1994년 5월10일 만델라 대통령의 취임식. 그는 로벤 섬 감옥에서 자신을 감시하던 백인 교도관 3명을 귀빈석으로 초대했다. 자신의 달라진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진정으로 이들을 용서한 것이다. 이밖에도 만델라의 용서와 화해 사례는 많다.

    대통령 취임 후에 자신을 감옥으로 보냈던 보타 전 대통령을 먼저 찾아갔고, 자신을 박해했던 남아공 정보책임자 니엘 바너드와 로벤 섬의 총사령관 윌렘스 장군을 만찬에 초청함으로써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밀었다. 또한 냉혹한 성격의 전 로벤 교도소장 야니룩스 장군을 오스트리아 주재 대사로 임명하는 등 자신을 탄압한 이들도 요직에 기용하는 아량을 베풀었다.

    만델라는 ‘모든 인간의 깊은 마음속에 자비와 관용이 있다’는 점을 늘 잊지 않았다. “피부 색깔이나 가정 배경과 종교 때문에 다른 사람을 증오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책의 제목은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이다. 그러나 ‘자유를 향한 용서의 길’이라고 이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넬슨 만델라 지음/ 김대중 옮김/ 두레 펴냄/ 964쪽/ 2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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