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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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에 무관심? … ‘예술’ 좇는 노희경식 드라마

  • 배국남 마이데일리 대중문화 전문기자 knbae24@hanmail.net

    입력2006-03-27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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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률에 무관심? … ‘예술’ 좇는 노희경식 드라마
    우리 드라마는 두 가지로 나뉜다. 붕어빵과 붕어빵이 아닌 것. 기계틀에서 빠져나오는 똑같은 붕어빵처럼 드라마끼리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 재벌 2세, 신데렐라 혹은 억척녀 캐릭터에 출생의 비밀과 중병을 적당히 버무리는 사랑 이야기. 붕어빵 범주에서 벗어나는 드라마를 찾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이런 드라마가 브라운관을 점령한 지 오래다. ‘한국 드라마는 두세 편만 보면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는 외국 언론의 지적마저 이제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요즘 ‘붕어빵 아닌 드라마’가 눈에 띈다. KBS 2TV에서 수요일과 목요일에 방송하는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 이 드라마는 한마디로 너무나 ‘노희경적’인 드라마다. ‘노희경적’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말기를. ‘하늘이시여’의 임성한 작가처럼 자기 작품의 상투성을 확대재생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노희경적’이라는 수식어에는 분명 작가의 일관된 세계관과 스타일을 견지하는 작가주의라는 무게가 실려 있다.

    노희경은 시청률로 대변되는 상업성의 거대한 해일을 뚫고 자신의 작품들에 현저한 개성과 독창적 스타일, 그리고 심오한 의미를 관통시키고 있는 작가다. 우리 방송가에선 “예술 하냐”는 말은 곧 욕이다. 예술은 시청률에 하등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방송사의 확신이다. 방송사의 이 무서운 확신 앞에 작가는 붕어빵 드라마를 찍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희경은 ‘예술’을 한다. 미군기지 주변 두 술집 작부를 다룬 ‘세리와 수지’로 1995년 MBC 베스트극장 극본에 당선될 때부터 지금의 ‘굿바이 솔로’까지 자신만의 예술을 펼치고 있다. 삶에 대한 기대, 사랑에 대한 믿음, 사람에 대한 희망이라는 굳은 심지를 가지고.



    질기고 질긴 삶의 의지, 세상의 편견과 삶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이를 따스하게 보듬는 시선은 이전의 작품들처럼 ‘굿바이 솔로’를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노희경 드라마의 캐릭터는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너무나 일상적인 인물이어서 외면하고픈 사람들이다. 어머니의 외도로 태어났고 그래서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민호(천정명), 수시로 바뀌는 엄마의 남자들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수희(윤소이), 애써 출세시킨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배종옥), 데려다 키운 딸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벙어리가 된 식당 할머니(나문희) 등 ‘굿바이 솔로’는 우리가 그러하듯 한 움큼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노희경의 관심은 ‘흥미’가 아닌 ‘인간’이다. 상처 많은 사람들을 통해 그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노희경은 ‘굿바이 솔로’에서 특유의 정공법 대사를 구사한다. 노희경의 대사는 은유나 비유가 없이 직설적이다.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버림을 받은 놈이다. 버려질 때 버려지더라도 사랑하겠다.” 친구의 여자친구(윤소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민호의 대사(3월16일 방송분)는 전형적인 노희경 스타일의 대사다. 그 직설의 정공법으로 그는 사람냄새를 징그럽게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고단한 현실에 파묻힌 사람들은 노희경 드라마에 눈길을 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희경 드라마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그 의미는 우리의 심전(心田)에 감동과 따스함의 씨를 뿌린다. 시청률이 낮아도 ‘예술’을 하는 노희경의 드라마 ‘굿바이 솔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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