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1

2006.01.31

욕심 줄이는 것보다 나은 것 뭐 있으랴

  • 입력2006-01-25 13:5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욕심 줄이는 것보다 나은 것 뭐 있으랴
    옛 선비들이 일군 개인 정원을 세 곳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나그네는 이자현의 청평계곡과 양산보의 소쇄원계곡, 그리고 윤선도의 보길도 부용동계곡을 들겠다. 모두 자연풍광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은 신선 같은 다인이었다. 이자현의 사적을 새긴 문수원중수비(文殊院重修碑, 동국대 박물관 소장)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비의 앞면에는 고려 예종과 인종이 차를 하사했다(賜茶)는 내용이 있고,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목마르면 차를 마셨다. 묘용이 종횡무진하여 그 즐거움에 걸림이 없었다(饌香飯 渴飮名茶 妙用縱橫 其樂無碍).’

    부귀공명 버리고 은둔 … 자연과 禪, 차 벗 삼아

    이자현은 노장사상에 심취했던 것 같다. 예종이 그를 두 번째 불렀을 때 그는 진정표(陳情表)에서 ‘호량(濠粱)의 물고기’ 고사를 들어 사양했다. 장자와 혜자가 물가에서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보고 있다가 장자가 “물고기가 조용히 노는 것이 즐겁구나” 하고 말하자 혜자가 “자네는 물고기가 아니면서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하고 말했던 것. 이에 장자는 “자네는 내가 아니면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리라고 어찌 아는가”라고 했는데, 이자현은 이 고사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진정표를 올렸던 것이다.



    ‘신이 듣잡건대 새의 즐거움은 깊은 수풀에 있고, 고기의 즐거움은 깊은 물에 있다 하옵니다. 고기가 물을 사랑한다고 하여 새를 깊은 연못에 옮기지 못할 것이요, 새가 수풀을 사랑한다고 하여 고기를 깊은 숲에 옮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새로서 새를 길러 수풀의 즐거움을 맘대로 하게 맡겨두고, 고기를 보고 고기를 알아 강호(江湖)의 즐거움을 느끼게 내버려두어 한 물건이라도 제 있을 곳을 잃지 않게 하고 군(君)의 정(情)으로 하여금 각기 마땅함을 얻게 함이 곧 성제(聖帝)의 깊은 인(仁)이요, 철왕(哲王)의 거룩한 혜택이옵니다.’

    부귀공명을 버린 은둔거사 이자현의 사상이 잘 함축된 글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 벗이 있다면 오직 자연과 선(禪), 그리고 차뿐이었다.

    이자현의 자는 진정(眞靖), 호는 식암(息庵), 청평거사, 희이자(希夷子). 선종 6년(1089) 과거에 급제,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 청평산에 들어가 아버지가 지은 보현원을 문수원이라 고친 뒤 당(堂)과 암자를 짓고 은거한다. 예종이 차와 향, 금과 비단을 보내 불렀으나 “신은 처음 도성 문을 나올 때 다시는 서울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 감히 조서를 받을 수 없나이다”라며 거절한다.

    사촌 이자겸이 세도를 부리고 예종이 자신을 총애했음에도 왜 이자현은 권문에 나가지 않았을까. 예종 왕비 문경태후(이자겸의 딸)가 죽기 전까지 이자겸을 비롯한 이씨 일족은 100년간 세도를 부렸다. 이자현은 27세 때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을 보고 세상사 덧없음을 깨닫고 속세를 벗어났던 것은 아닐까. 이자현이 만들었다는 네모난 모양의 영지(影池) 아래쪽에 있는 이자현의 부도는 말이 없다.

    예종이 남경(南京·서울) 행차 때 그를 부른 적이 있는데, 예종이 ‘천성을 기르는 묘법’을 묻자 그는 “고인이 말하기를 천성을 기르는 방법은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무슨 일이든 성취하려면 욕심을 줄이고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다인의 삶을 말해주는 금언이 아닐 수 없다.

    ☞ 가는 길

    춘천에서 소양강댐까지 가서 배를 이용(10여분 승선)하거나 서울에서 46번 국도를 이용, 오음리 방면으로 가다가 간척사거리에서 우회전해 고개 너머 주차장에서 내려 1km 정도 걸어가면 된다.

    청평사



    茶人기행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