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7

2006.01.03

노벨상에 눈멀어 황우석 검증 소홀?

정부, 파격적 지원에도 관리는 허술 … 98년부터 623억원 ‘묻지마 지원’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5-12-28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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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상에 눈멀어 황우석 검증 소홀?
    한국 과학자 가운데 노벨상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황우석 교수가 과학사에 가장 큰 오점을 남긴 거짓말쟁이로 추락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진실이 한 꺼풀 벗겨질 때마다 과거에는 문제 되지 않은 사안들도 황 교수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그를 둘러싼 정치적 인맥과 부정확한 회계 관행, 나아가 연구실 내의 강압적인 분위기까지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난자의 사용 개수와 베일에 가린 실험데이터처럼 검증의 대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황 교수의 도전이 거짓에 기초한 것이 드러난 만큼 그간 정부가 황 교수에게 제공한 각종 특혜들이 최우선적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2005년 12월22일,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와 교육인적자원부, 경기도 등 정부기관은 1998년부터 황 교수 연구팀에 지원된 예산이 총 623억5600만원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정보통신부가 IMT-2000 출연금으로 2001년 12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총 43억원을 황 교수에게 지원했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상자 기사 참조).

    감사원, 황 교수 관련 자료 수집 들어가



    이는 한 대학의 연구팀에 제공된 수준으로는 역대 최고일 뿐 아니라 그 지원 과정도 특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따라서 감사원은 과기부를 상대로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관련 예산 지원 및 집행 실적 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등 기초적인 자료 수집에 들어갔다. 감사원은 황 교수가 ‘제1호 최고 과학자’로 선정된 배경과 근거 자료들을 검토하고, 연구비 지원 이후의 관리·감독 실태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 같은 회계감사 분위기에 가장 당혹해하는 곳은 과기부. 더구나 오명 부총리는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황 교수를 두둔하고 나서 정치적 타격을 입기도 했다.

    2005년 12월8일, 오 부총리가 황 교수가 입원한 서울대병원을 방문해 격려한 것이 문제가 된 것. 격려 차원이었다면 논란이 적었겠지만 오 부총리는 병실을 나서면서 기자들에게 검증이 필요치 않다는 요지의 발언을 남겼다. 오 부총리는 “검증은 전문가들의 몫이기 때문에 과학기술계 전체를 위해서도 이 문제를 검증하자는 얘기는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명 부총리,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그리고 황 교수는 참여정부 내에서 ‘과학 부흥’이란 끈으로 묶인 공동운명체적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벨상은 그 구체적인 실현 목표였습니다.”

    한 과기부 관계자의 표현대로 정부는 ‘황우석 노벨상론’에 입각해 황 교수에게 압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배경에는 2004년 초에 나란히 등장한 이 삼두마차의 연대가 밑바탕이 됐다. 황 교수가 성과를 내면, 박 보좌관이 지원 계획을 세우고 오 부총리의 후원이 이어지는 형식을 취한 것.

    과기부는 2004년 2월부터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한 황우석 서울대 교수(수의학)의 노벨상 수상을 지원하는 ‘황우석 후원회’를 만들며 지원사격을 시작했다. 그간 민간 주도로 이뤄진 한국인의 노벨과학상 수상 후원활동에 최초로 정부가 적극 나선 셈이다.

    과기부는 노벨과학상 수상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우수 연구원에게 파격적으로 보수를 올려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이른바 연간 30억원씩 5년간 지원하는 ‘최고 과학자’ 지원 프로젝트를 실행한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물리·화학·생리학 분야의 노벨상 추진이라는 포괄적 지원 계획이었지만, 황 교수를 위한 급조된 정책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노벨상 수상 지원하는 ‘황우석 후원회’ 결성

    박 보좌관은 한발 더 나아가 과기부의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바람몰이에 나섰다. 박 보좌관은 2005년 5월25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정부 설립사상 최초로 한 과학자의 연구지원을 위한 국가적 지원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다. 과기부의 예산을 청와대보좌관이 좌지우지하는 월권을 행사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 생명윤리학 교수는 “노벨상에 눈이 멀어 정부 내부에서조차 황 교수의 연구는 국가적 중대사이기 때문에 감사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있었다”고 개탄했다. 이제는 황 교수에게 집행된 모든 연구비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할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노벨상에 눈먼 정부의 직무 유기라는 과학자들의 한탄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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