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8

2005.11.01

동화의 섬에서 쓴 추억 편지

  • 최미선 여행플래너 / 신석교 프리랜서 여행 사진작가

    입력2005-10-31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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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의 섬에서 쓴 추억 편지

    만추가 내려앉은 남이섬.

    스산한 가을바람이 소매 끝을 잡아끌며 어디론가 떠나자고 재촉한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눈부신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어느새 무르익은 가을, 곱게 물든 나뭇잎이 차곡차곡 쌓인 길을 걸으며 추억을 남기고 싶다면 남이섬이나 아침고요수목원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섬 전체가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독특한 종합휴양지 남이섬.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7080학번 대학생들의 MT 장소 0순위로 꼽히던 곳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남이섬은 넓은 잔디밭과 방갈로 몇 채만 있어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뱃사공과 낡은 선착장,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힌 야생화, 톱날에 잘려나간 팔다리 없는 나무들, 곳곳에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와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빈 병들… 그렇게 중병을 앓고 있던 남이섬은 한동안 발길도 뜸해졌다.

    하지만 곧 남이섬은 동화의 나라, 환상의 섬으로 탈바꿈했다. 남이섬 지킴이 강우현 사장의 남다른 고집 덕분이었다. 곳곳에서 아우성치는 신음을 들은 강 사장은 남이섬을 정성껏 치료하기 시작했다.

    남이섬 곳곳에서 굴러다니던 나무토막들은 다양한 얼굴의 장승으로 다시 태어났고, 경관을 해치는 전봇대는 추방됐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종합휴양지



    반면 자유를 찾은 것들도 있다. 자연의 섬을 만들기 위해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잔디밭에 풀어놓은 것. 섬을 돌다 보면 토끼, 사슴, 오리, 타조 등이 자유롭게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섬에 도움이 안 되는 동물로 지목되어 해마다 체포됐던 청설모도 면죄부를 얻어 귀염둥이로 제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기에 강 사장이 제안하는 동물 대하는 법을 알고 나면 남이섬 산책이 더욱 즐거워진다.

    “타조를 만나면 휘파람을 불어주세요. 남이섬 새 식구가 된 캐나다산 타조 녀석들을 길들이는 중인데요, 먹이를 주면서 휘파람을 불어주기 시작했거든요. 사슴은 사람을 보면 달아난답니다. 절대 따라가지 마세요. 사슴이 놀라거든요. 토끼는 가끔 사람을 따라오죠. 하지만 비닐이나 고기를 주지 마세요. 초식동물이거든요. 그리고 청설모요? 그 깡패 같은 녀석들, 하지만 귀여워요. 그냥 보시기만 하면 됩니다. 요샌 사람을 놀리기도 해요. 오리와 거위요? 그 촌놈들은 한쪽에만 있어요. 문을 늘 열어두지만 도통 밖으로 나오려 하질 않네요. 그리고 가끔 반갑지 않은 녀석들, 쥐도 돌아다니지만 사람을 보면 피해가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강을 끼고 늘어서 있는 허름하고 작은 방갈로도 얼굴을 달리했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개방한 덕에 도자기, 한지공예, 조각 등 다양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체험공방(031-581-2020)에 예약하면 도자기 만들기, 천연염색, 한지공예도 직접 해볼 수 있다. 체험료는 3000~5000원.

    동화의 섬에서 쓴 추억 편지

    남이섬 체험공방.

    이곳에서는 떨어진 나뭇잎, 꽃잎 하나라도 절대 쓸어버리는 법이 없다.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이즈음 남이섬에 가면 가을빛을 고스란히 접할 수 있다.

    남이섬 안의 길들은 어디든 나름대로 운치를 지니고 있다.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전나무 숲길. 400여m 이어지며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어오른 모습이 언제 봐도 당당하다. 전나무 숲길 오른쪽 잔디밭 주변으로 펼쳐진 단풍나무들은 수줍은 듯 발그스름한 얼굴로 맞이한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숲길은 전나무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100m 정도 곧게 이어진다. 은행나무길 오른쪽으로는 드라마 ‘겨울연가’로 유명해진 메타세쿼이아 숲길. 웅장하게 치솟은 나무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로 다가온다.

    천의 얼굴을 가진 섬에는 1950년대부터 80년대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그때 그시절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어른들에겐 추억이 깃든 세계로 이끌어주기에 충분한 곳이다.

    낡은 책상과 의자에 앉아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하는 교실 풍경. 칠판엔 여지없이 떠든 아이와 변소청소 당번 이름이 적혀 있고, 큼지막한 조개탄 난로 위에는 양은 도시락이 겹겹이 얹혀 있다. 옛날 이발소 풍경도 새삼 이채롭다. 관람료는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테마별로 특색 있는 정원

    동화의 섬에서 쓴 추억 편지

    아침고요수목원.

    남이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자전거 타기. 연인들이라면 2인용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으며 강변을 따라 돌면 묘한 설렘에 젖게 된다. 자전거 대여료는 1시간에 1인용 5000원, 2인용 1만원. 또한 지상 3m에서 달리는 하늘자전거(2000원)와 낭만열차(2000원)도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돌아오는 길에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을 들러도 좋다. 경기 가평군 상면 행현리 아침고요수목원은 축령산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테마별로 특색 있는 정원을 갖추고 있는 원예수목원이다.

    매표소를 지나 바로 오른쪽에 자리한 고향집정원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골집을 중심으로 조팝나무, 능소화, 자귀나무, 소나무와 같이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 위주로 꾸몄다. 고향집정원을 지나 계곡을 건너면 분재정원. 소나무, 소사나무, 향나무, 단풍나무, 모과나무 등의 자생 수종을 소재로 다양한 분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분재정원 너머에 있는 야생화전시장에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민속주택 모형과 함께 소박하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야생화를 볼 수 있다. 이즈음 볼 수 있는 꽃은 구절초와 국화.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200여종에 달하는 국화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국화전시회가 열린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은 바로 하경전망대. 개울 건너 산길을 따라 약 100m 올라가면 한반도 모양으로 조성된 하경정원과 수목원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외에도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와 함께 벤치에서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주옥 같은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가 있는 산책로’와 에덴동산에서 시작해 하늘나라까지 이어지는 성서산책로는 낙엽이 물든 가을 정취를 감상하는 것은 물론, 잣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로 산림욕을 즐기며 걷기에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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