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2

2016.11.09

인터뷰 | 최태민 일가 의혹 최초 제기하고 옥살이 한 김해호 씨

“대통령은 용서했지만 최순실은 용서할 수 없어”

국민 위해 폭로했을 뿐, MB와 관계없어…베트남에서 여행 가이드로 살아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11-04 17: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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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의 실권은 대통령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소문’은 청와대 내부에서 시작됐다. 2014년 12월 박관천 전 경정(청와대 행정관)은 최순실(60) 씨의 전 남편 정윤회 씨가 국정에 개입한 의혹이 담긴 청와대 내부 문건을 유출했다는 혐의(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그는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당시 박 전 경정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일국 대통령이 정치인이나 정책 전문가가 아닌 특정 종교집단 지도자의 딸과 그 사위에게 휘둘린다는 말은 누구도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소문이 사실에 가깝다는 각종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정국은 ‘최순실 게이트’ 파문에 휩싸였다. 



    9년 전 아무도 믿어주지 않더니

    사실 박 전 경감보다 앞서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특수관계를 폭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맞붙었을 때 이명박(MB) 후보 선거캠프에서 일하던 김해호(68·김해경으로 개명) 씨가 기자회견을 열어 최태민 일가와 박근혜 후보의 관계를 폭로했다. 법원은 김해호 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허위사실로 인정했고, 김씨는 사전선거운동 및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 일가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뒤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으로 알려진 김씨. 그는 현재 베트남 호찌민에서 여행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다. 10월 29일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할렐루야. 누구십니까.” 스스로를 전직 목회자라 밝힌 김씨는 ‘여보세요’ 대신 ‘할렐루야’라는 말로 전화를 받았다.



    ▼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당신의 9년 전 기자회견이 사실이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이미 박 대통령을 용서했다. 더는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이미 지난 일이고 다 잊었다.”

    ▼ 그래도 9년 전 기자회견을 통해 이 문제를 처음 공론화한 주인공 아닌가. 지금 보면 대단한 일을 한 셈이다.  

    “대단한 일이라 해주니 고맙다. 당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도 나를 ‘이명박의 개, 제2의 김대업’(이회창 전 국무총리 아들의  병역비리 관련 허위사실 유포로 실형을 받았던 전직 군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잠시 9년 전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2007년 6월 17일 김씨는 서울 여의도 63빌딩(현 63스퀘어)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 자리에서 그가 주장한 내용은 “대통령의 딸을 이용해 공익재단(육영재단)을 장악한 고(故) 최태민 목사의 전횡을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김씨는 “최 목사와 그의 딸(최순실)이 육영재단에 개입한 1986년 이후 어린이회관 관장이 세 번 바뀌었고 직원 140명이 최 목사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직을 당했다”며 “유치원을 운영하던 최 목사의 딸은 서울 강남에 수백억 원대 부동산을 가졌는데, 이 돈은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재산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검증위원회가 이를 밝혀달라”고 주장했다. 이날 김씨는 “박근혜 후보는 육영재단 이사장이었지만 최태민 목사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작은 재단 하나도 소신껏 못 꾸린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느냐”며 의혹을 제기한 이유를 밝혔다.

    당시 그가 주장한 내용은 지금 거의 사실로 밝혀졌다. 육영재단 운영에 최씨 일가가 관여했고, 이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최순실 씨가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씨가 강남에 수백억 원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 부동산을 구매한 돈이 육영재단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부동산 구매 당시 최씨는 유학 중이었다고 했으나 2007년 김해호 씨와 얽힌 재판 과정에서는 사업으로 부동산 구매 자금을 모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연구자정보(KRI)에는 같은 기간 최씨가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유학과 사업 어느 쪽이든 석연치 않다.



    2007년 정치권에선 이미 다 아는 소문

    ▼ 박 대통령과 최씨 일가의 관계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07년에도 정치권에선 이미 박 대통령이 최씨 일가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는 소문이 있었다.”

    ▼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려고 조사를 시작했나.

    “그렇다. 박 대통령이 당시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당과 국민을 위해 이 소문의 사실관계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을 전후로 육영재단 전직 직원들의 인터뷰 등 재단 운영에 최씨 일가가 개입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쏟아졌다. 게다가 90년 대통령의 형제인 박근령, 박지만 씨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박근혜 대통령이 최씨 일가에게 속고 있다는 내용으로 박지만 씨가 육필로 작성했다)를 보고 육영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던 것은 최태민 씨와 그의 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박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최씨 일가가 개입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 당시 조사는 어떤 식으로 했나.

    “직접 발로 뛰며 자료를 모으고 검증을 했다. 박 대통령이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살다 1984년 돌연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사했다. 찾아보니 최태민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곳에 집을 구한 것이었다. 이 내용을 확인하려고 동주민센터를 찾아가 직접 등기부등본을 뗐다. 디지털화된 등기부등본이 아니라 80년대 손으로 쓴 등기부등본을 구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최태민의 집과 박 대통령의 집 사이를 직접 걸으며 그 거리를 재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박 대통령과 최태민, 최순실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의심해오던 월간지 ‘인사이더월드’의 손충무 편집인(사망)이 쓴 기사를 참조했다.”

    하지만 김씨의 말에 귀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2007년 박근혜 후보 선거캠프의 김재원 대변인은 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이와 동시에 최순실 씨는 사자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김씨에게 2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김씨는 사전선거운동 및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20억 원 손해배상을 청구한 최씨에게 1000만 원의 합의금을 지급했다.



    문고리 3인방 “최씨 모른다” 이해 안 돼

    ▼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자회견을 했지만 결국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징역을 살았다.

    “지금도 최순실 이름만 들어도 분노가 치민다. 차가운 교도소에서 반년을 살았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고초를 겪어 교도소에서 출소할 때까지만 해도 너무 억울했다. 얼마 전까지 박 대통령이 나오는 뉴스나 방송은 쳐다보지 않을 정도였다.”

    ▼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한 불만은 없었나.

    “(웃으며) 원래 형법상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으로 기소될 수 있는 것으로 안다(형법 제307조 1항). 검찰은 법에 맞게 기소한 것이다. 불법으로 보이는 행위가 있다면 기소하는 것이 검찰의 일인 만큼 검찰에 불만은 그때도 지금도 전혀 없다.”

    ▼ 그렇다면 판결에 불만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 재판장의 판결은 과도했다고 본다. 명백한 사실을 적시했음에도 이를 감안하지 않고 실형을 선고했다.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외압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 징역형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젊은 나이도 아니어서 복역 중 몸이 많이 상했지만 가장 크게 다친 것은 정신이다. 작은 방에서 자유를 빼앗긴 채 6개월을 살아 좁은 공간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지금도 작은 방에 들어가면 문이라도 열어놓지 않고는 답답해 견딜 수가 없다.”

    ▼ 아직도 교도소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데 대통령을 용서할 수 있나.

    “처음에는 박 대통령에게도 화가 났지만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 정착하며 박 대통령을 용서했다. 마치 김근태 전 의원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과거 자신을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용서했듯, 나도 대통령에 대한 미움을 털어버렸다. 박 대통령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부모 잃고, 동생들도 제구실을 못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인 최순실에게 기댄 것은 죄가 아니다. 문제는 최순실이 그 마음을 이용해 국정을 농단한 것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은 용서할 수 있어도 최순실은 용서할 수 없다.”

    ▼ 이번 사태의 원인이 대통령보다 주위의 잘못이라는 건가.

    “대통령 주변에 사람이 너무 없다. 정말 능력 있고 대통령을 위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에게 정치적 불이익이 있더라도 최순실 일가와 대통령의 관계를 진작 폭로하고 대통령을 바른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특히 ‘문고리 3인방’이라 부르는 대통령비서실의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전 비서관이 최순실을 몰랐다고 말하는데, 이를 이해할 수 없다. 당시 최순실의 남편이던 정윤회가 발탁한 이 세 사람이 최순실을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직속 상사의 부인을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 때문에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믿을 사람이라곤 최순실밖에 없었던 불행한 대통령을 용서하고 감싸줘야 한다.”

    김씨의 말 중에서 문고리 3인방을 정씨가 발탁했다는 부분은 확인되지 않았다.

    김씨는 2007년 기자회견 당시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 소속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기자회견은 이 후보를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 



    정치권으로 돌아가는 것은 노욕

    ▼ 2007년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을 위한 마음은 전혀 없었나.

    “전혀 없었다. 나는 선거캠프에 있었을 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다. 재판이 끝나고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 사람들이 나를 ‘이명박의 개, 제2의 김대업’이라고 욕했다. 정말 ‘개’였다면 출소 뒤 대가라도 받아야 하는데, 나는 이 전 대통령에게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다. 기자회견을 연 것은 국민이 이 내용(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의 관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왜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을 도왔나.

    “2007년 이 전 대통령의 선거캠프에 있었던 이유는 단지 술자리에서 한 번 만나 형, 동생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잠시의 의기투합이었을 뿐 지금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 만약 내가 이 전 대통령과 관계가 있고 기자회견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면 지금 베트남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 대가를 받았다면 다시 목회 일을 했을 것인가.

    “목회자가 법을 어겨 감옥에 다녀왔는데 어떻게 신자들 앞에 설 수 있겠나. 지금 생각으로는 만약 대가를 받았다면 어려운 베트남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남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최근 김씨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과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기자와 통화한 10월 29일까지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이미지는 손학규 전 고문과 그가 손 전 고문이 칩거했던 전남 강진 초옥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10월 20일 정계 복귀를 선언한 손 전 고문처럼 그에게도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올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 손학규 전 고문과 찍은 사진을 SNS에서 봤다. 어떤 관계인가.

    “손 전 고문과는 교회 활동을 하던 시절 선후배 사이로 만나 친분관계를 유지해 왔다. 손 전 고문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이던 시절 처음 만났다. 개인적 친분은 있으나 그저 마음으로 그의 정치 행보를 응원할 뿐 직접 행동에 나설 의사는 전혀 없다.”

    ▼ 정치권으로 돌아올 마음이 없다는 것인가.

    “전혀 없다. 내 나이가 이제 70이다. 정치는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 나처럼 나이든 사람이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이 노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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