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1

2016.11.02

현장 전문가의 대입 전략 46

산삼보다 귀하다는 고3

수험생만 바라보며 전전긍긍하지 말아야…‘평범함’이 보약

  • 유형욱 휘문고등학교 교사 ys-eagle@hanmail.net

    입력2016-11-01 10: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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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을 완전히 펴서 벌렸을 때 두 끝 사이 거리를 한 뼘이라고 한다. 가로 세 뼘과 세로 두 뼘의 직사각형 공간. 이 좁은 공간을 눈앞에 두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생활한다. 교사와 학생 간 수업에 마침표를 찍는 대입을 코앞에 둔 학생은 책상 앞에서 교과서를 보거나, 문제집을 풀거나, 피로를 해소하고자 잠시 엎드려 있거나, 기분 전환을 위해 노래를 찾아 듣거나, 부족한 학습 내용을 보충하고자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듣는다. 물론 안타깝게도 잠에 빠진 학생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하루 종일 공부에 시간을 쏟는다. 그런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마음부터 든다. 특히 어떤 학생이 공부하다 문득 친구의 책상을 쳐다보고, 다시 자신의 책상을 쳐다볼 때면 더욱 그렇다. 학생의 소중한 꿈이 자라고 있어 따뜻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수시로 찾아들어 금세 차가워지기도 한다. 수능을 앞둔 고3 교실의 풍경이다.

    이런 교실 풍경을 바라볼 때면 몇 해 전 어떤 학부모가 카카오톡 프로필로 사용한 ‘인삼(人蔘)보다 산삼(山蔘)보다 귀하다는 고3’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영험한 꿈을 꾸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다는 그 귀한 산삼보다 더 대단한 것을 대하는 사람의 자세는 어떻겠는가. 자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가 감당해야 할 무게감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예전과 달리 궁금한 게 있어도 속 시원히 물어볼 수 없는, 아니 괜히 물어봤다 아이의 컨디션을 망칠 것 같아 걱정되고, 또 힘들다고 말하면 다독여줄 수 있는데 그것마저 허락지 않는 아이의 모습이 안타까워 담임교사에게 문자메시지나 전화를 해보고 싶은 학부모가 참 많을 시기다. 하지만 막상 담임교사와 대화한다 해도 몰랐던 뭔가를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은 아니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지금 이 땅의 수험생 학부모가 겪는 또 하나의 수험 생활 아닐까.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수험생에게 “지금 너희가 보내는 시간은 무척이나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끊임없이 직간접적으로 말하는 상황에서 정작 수험생에게 필요한 것은 평범함의 회복일 수 있다. ‘고3’이라는 이름을 떼어낸 아이의 진짜 이름과 나이에 관해 말 걸기가 요구되는 시기다. 고3 수험생에게 물어보는 말은 대부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과 대학 입시에 한정된다. 수험생이 이 시기 부모와 대화를 피하는 이유도 어차피 뻔한 질문만 건넬 거라고 예단하기 때문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부모에게 하고 싶다”던 어느 수험생의 말이 그래서 서글프기까지 하다.

    수험생도 학교와 가정이 모두 자신에게 맞춰주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 상황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는 않지만, 모두가 자신을 위해 전전긍긍한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자신도 똑같이 이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고 되뇌면서 답답하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상태가 됐는지도 모른다. 고3이라는 시기는 학부모도, 학생도, 교사도 벌을 받는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서로 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힘들고 불편하다면 뭔가 노력이 필요하다.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오늘부터 고3에게 해당하는 질문이 아닌, 다른 말을 건네는 것은 어떨까. 고1, 2 때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생각해보자. 아니면 그 이전도 좋다. 물론 수능이 코앞인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그럴 여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험생 자녀가 목표로 삼아야 할 대학과 그에 걸맞은 점수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를 들어와 더는 들을 필요가 없다면, 지금은 다른 말을 건네야 하지 않을까. 자녀의 마음에 다가가고 싶다면 고3이라는 이름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도록 평범한 말들을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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