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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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고지방-저탄수화물 식이 “새로운 오류에 빠지다”

농경시대 전에도 인류는 식물을 에너지원으로 활용 지구 환경 위해서도 탄수화물 먹어야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sukkikang@gmail.com

    입력2016-10-21 18: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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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건강 분야에서 고지방 다이어트가 최대 이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고지방 다이어트로 효과를 본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삼겹살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이 평소 잘 먹지 않던 버터와 치즈까지, 조금 과장하면 동이 났다고 한다.

    사실 고지방 다이어트가 새로운 건 아니다. 20여 년 전 등장한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의 일종으로, 지방을 강조한 버전이다. ‘지방 과다 섭취=비만’이라는 공식에 익숙한 사람으로서는 고지방 다이어트가 모순어법으로 보이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그 나름 일리가 있다.

    오늘날 지구촌에 만연한 비만의 원인이 지방이 아니라 탄수화물이라는 것이다.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몸에서 포도당을 지방으로 바꿔 지방세포에 저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도 과도하게 섭취하면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에는 탄수화물, 그것도 바로 흡수되는 단당류(설탕과 과당)가 잔뜩 들어 있어 비만의 ‘주범’이 탄수화물이라는 게 이 식이요법을 설명하는 이들의 논리다.



    탄수화물은 백해무익?

    또 이들은 고지방 다이어트는 인류가 최소 200만 년 동안 이어온 식단이기 때문에 몸에 좋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200만 년 전 등장해 본격적으로 사냥하며 육식을 시작한 호모에렉투스(직립 원인)에서부터 20만 년 전 등장한 호모사피엔스, 즉 현생 인류에 이르기까지, 또 그 후에도 오랫동안 인류는 고지방 식생활을 유지하다 ‘불과’ 1만여 년 전 농업을 시작하면서 탄수화물(곡물) 위주 식단으로 급격히 바꿨다는 것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1만 년은 몸이 새로운 식단에 적응하기에 매우 짧은 기간이고, 따라서 오늘날 비만이나 당뇨 같은 대사질환이 만연하게 됐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최근 이 관점을 대표하는 책 ‘그레인 브레인’을 읽었다. 그 나름 설득력이 있고 유익한 정보도 많았다. 각운을 살린 원서 제목(Grain Brain)은 곡물이 현대인의 뇌 건강을 망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경과 전문의이자 미국영양학회 회원인 저자 데이비드 펄머터는 단순당 같은 정제된 탄수화물뿐 아니라 곡물 자체가 건강에 안 좋고, 특히 밀에 들어 있는 글루텐은 장 건강뿐 아니라 뇌 건강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참에 곡물을 식단에서 아예 빼자면서, 더 나아가 사람은 탄수화물을 전혀 섭취하지 않아도 되므로 탄수화물을 최대한 지방으로 대체하는 식단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탄수화물 : 지방 : 단백질 비율이 5 : 75 : 20이던 호모에렉투스의 식단을 지향해야 인류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책 3부에 실린 권장식단을 보면 영양소 비율이 그 정도에는 못 미쳐도 20 : 60 : 20은 되는 것 같다. 참고로 우리나라 식단은 대략 60 :
    20 : 20이다.

    필자 역시 이런 방향으로 글을 여러 편 쓴 적이 있지만, 펄머터 박사는 너무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지방 혐오, 탄수화물 예찬’ 오류를 비판하다 ‘탄수화물 혐오, 지방 예찬’이라는 새로운 오류에 빠진 게 아닌가 해서 씁쓸했다. 예를 들어 앞에 언급한 호모에렉투스의 식단도,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엉터리다. 1만 년 전 농사가 시작되면서 인류의 식단이 곡물(주로 볏과식물의 열매)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 건 사실이지만, 그전에도 식물 식재료가 칼로리의 절반은 차지했을 거라는 게 인류학자들의 결론이다. 말 그대로 인류는 수렵‘채취’인이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곡물을 주식으로 삼기 전에도 식물의 알줄기, 뿌리줄기, 덩이줄기에 저장된 탄수화물(녹말)을 많이 먹었다.

    인간 게놈(genome·유전 정보의 총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인간 게놈을 보면 녹말을 소화하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5~7개인 반면, 침팬지는 2개에 불과하다. 열매나 잎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은 주로 단순당이므로 분해하는 데 이 효소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육식과 함께 녹말이 풍부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인류 진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음을 시사한다.

    특히 탄수화물이 풍부한 식사를 해온 우리나라 사람은 고지방 다이어트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탄수화물 : 지방 : 단백질 비율이 40 : 40 : 20인 ‘중지방’ 다이어트까지는 해볼 만하겠지만, 지방이 60%가 넘어가는 고지방 다이어트를 실행하려면 하루 세끼를 육류, 유제품, 달걀, 생선에 올리브유를 두른 샐러드 같은 메뉴로 채워야 한다. 상상만 해도 속이 느글거리지 않는가.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게다가 극단적인 고지방 다이어트는 오히려 몸에 해로울 수 있다. 인간은 잡식동물로 진화했기 때문에 소화기관 구조도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중간 형태다. 예를 들어 사람의 대장 길이는 침팬지(가끔 육식을 하지만 식단의 95% 이상이 열매와 잎이다)보다 짧지만, 표범보다는 길다. 육류는 위와 소장에서 대부분 소화된다. 이런 상태에서 육식만 하면 대장에 사는 장내미생물의 균형이 무너지고 그 결과 대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난해 이맘때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붉은 고기(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쇠고기와 돼지고기)와 가공육을 발암물질로 분류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IARC 보고서에 따르면 붉은 고기를 매일 100g씩 더 먹을 때마다 대장암 발병 위험이 17%, 가공육을 매일 50g씩 더 먹을 때마다 대장암 발병 위험이 18% 높아진다. 당시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고깃집이 파리를 날렸고 소시지와 햄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

    여기서 간단한 산수를 해보자. 식단을 탄수화물 : 지방 : 단백질 비율 60 : 20 : 20에서 20 : 60 : 20으로 바꿀 경우, 하루 총 섭취 열량이 2250Cal라면(계산을 쉽게 하려고 택한 수다!) 지방이 450Cal(20%)에서 1350Cal(60%)로 900Cal가 늘어난다. 이때 지방 증가분의 절반인 450Cal를 붉은 고기(지방이 50%라고 가정하자)로 충당한다면 하루에 100g을 더 먹어야 한다(지방 1g이 9Cal를 낸다). IARC 보고서가 맞다면 대장암 발병 위험이 17% 높아진다는 말이다. 참고로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의 붉은 고기 섭취량은 하루 평균 95g이다(2015년 기준).

    아무튼 육류 소비를 둘러싸고 1년 만에 이처럼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얼핏 대중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 역시 영양소와 건강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방과 탄수화물의 최적 비율을 찾는다고 오늘날 만연한 대사질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문제의 본질은 지속적인 칼로리 과잉섭취(물론 정제된 당류와 기름처럼 비타민과 미네랄이 거의 없는 빈 칼로리(empty calories)의 비율이 증가한 게 상황을 악화했다)와 신체활동 부족 아닐까. 각종 연구에 따르면 비만과 대사질환이 심각한 나라의 경우 국민이 하루 평균 500Cal를 과잉섭취하고 있다.



    온실가스로 인한 환경 파괴 어쩌나

    설령 고지방 다이어트가 건강에 좋다 해도 식단에서 지방 비율을 높이면 다른 영역에서 문제가 생긴다. 바로 환경 파괴다. 이러한 논리 전개에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사실 인류 식단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꽤 크다. 오늘날 온실가스 발생의 25% 이상이 먹을거리와 관련된 활동에서 나온다. 또 곡물과 가축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토지와 물, 비료, 농약 등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엄청나다. 이미 얼음으로 덮이지 않은 평지의 절반 이상이 농업용지로 쓰이고 있다.

    고지방 식단이 보편화한다면 이는 대대적인 농업 재편을 의미한다. 즉 곡물을 재배하는 땅이 목초지로 바뀌고 해안가는 양식장으로 뒤덮일 것이다. 인간은 지방을 주로 육류와 생선에서 섭취하기 때문이다. 이런 재편이 환경에 재앙이 되리라는 건 농업전문가가 아니어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학술지 ‘사이언스’ 9월 16일자에는 인류가 ‘지속가능하면서도 건강한 식단’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기고문이 실렸다. 지구촌 식단이 오늘날 서구권의 식단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바뀔 경우(현재 우리나라는 3분의 2쯤 왔을까) 세계 인구가 100억 명이 되는 2050년에는 대사질환 만연으로 보건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다. 타라 가닛 영국 옥스퍼드대 식품기후연구네트워크 박사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건강 식단을 내놓더라도 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면 권장 식단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오늘날 건강과 환경 모두에 안 좋은 서구식식단(lose-lose diet)을 어떻게 건강과 환경에 다 좋은 식단(win-win diet)로 바꿀 수 있느냐는 인류가 직면한 주요 과제다. 이에 따르면 극단적인 고지방 식단은 잘해야 ‘win-lose diet’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식단이 ‘win-win diet’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인류는 이를 실현할 수 있을까.

    2014년 영국 학술지 ‘네이처’(11월 27일자)에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데이비드 틸먼 미국 미네소타대 생태·진화·행동과 교수팀은 인구수 상위 100위 이내 나라의 50년에 걸친 식단 변화 데이터와 식단이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8건의 대규모 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건강식단의 가능성을 검토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지구촌이 지향하는 서구식(잡식)식단의 문제는 펄머터 박사가 주장하는 ‘고탄수화물-저지방’이 아니라 ‘정제된 당류, 정제된 지방과 기름, 육류’의 과잉섭취에 있다. 즉 대부분 나라에서 지난 50년에 걸쳐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이런 방향으로 식단 변화가 일어났거나 일어나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만 봐도 지난 30년 사이 설탕 소비는 3배, 육류 소비는 4배가 됐다.

    오늘날 서구식 잡식식단(omnivorous diet)을 지향하는 경향은 지구촌 공통의 현상으로, 소득이 증가하면 그쪽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갈 경우 2050년이면 식단으로 인한 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2009년에 비해 32% 늘어나게 된다. 2050년 인구는 2009년에 비해 3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둘을 곱하면 인류의 식생활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로 환산했을 때 23억t에서 41억t으로 80%나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식단의 서구화가 진행될 때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는 주요인은 무엇일까.



    지구와 인간을 위한 식단

    연구자들은 각 식재료가 같은 칼로리를 낼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을 산출했다. 그 결과 동물성 식재료가 주범이었다. 특히 되새김질을 하는 가축(소와 양)과 저인망어업, 재순환여과 양식(물을 연속적으로 정화해 물고기를 키우는 방식)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배출됐다. 반면 곡류 생산과정에서는 온실가스가 적게 배출됐고, 동물성 식재료에서는 유제품과 달걀이 상대적으로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프 참조). 결국 현재의 서구식식단에서 동물성 식재료를 줄여야 지속가능한 식단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서구식식단을 이런 방향으로 바꾸면서 건강에도 좋은 식단을 만들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다양한 식단의 건강 효과를 비교한 논문을 분석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올리브유 같은 식물성기름은 풍부하면서 육류는 적은 지중해식단과 생선까지는 먹는 부분채식식단, 달걀과 유제품까지는 먹는 채식식단 등을 서구식식단과 비교해보면 당뇨는 16~41%, 암은 7~13%, 관상동맥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20~26% 낮아졌으며 전체적인 사망률도 0~18%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이들 식단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식단에서 육류가 차지하는 비율이 줄거나(지중해식단) 제로(0)가 되므로(부분채식과 채식) 예상대로 한 사람이 식사로
    1년 동안 배출하는 온실가스양도 줄어든다. 특히 채식식단의 감소폭이 커 채식식단이 2050년 인류의 표준이 된다면,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먹을거리와 관련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2009년보다 줄어든다(인구가 36%나 늘어나는 데도 말이다). 지중해식단과 부분채식식단, 채식식단이 2050년 표준식단이 되더라도 현 배출량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또 5억4000만ha(약 540만km2)에 이르는 경작지를 자연으로 돌려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육류 소비가 크게 줄어들므로).

    필자는 이미 부분채식에 가까운 식생활을 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인류가 지속가능하면서 건강에도 좋은 식단으로 바꾸는 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지만, 막상 주변을 보면 ‘정제된 당류, 정제된 지방과 기름, 육류’의 과잉섭취에 절어 있는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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