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8

2005.06.07

‘黃의 법칙’ 생명과학계 지배?

줄기세포 신화로 세계가 충격 … 여기저기서 황 교수 모시기, 미국 주식시장까지 요동

  • 임소형/ 과학동아 기자 sohyung@donga.com

    입력2005-06-02 16: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5월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스템셀스 11.73% ‘상승’, 아스트롬 바이오사이언스 8.63% ‘상승’, 비아셀 7.60% ‘상승’.

    ‘黃의 법칙’ 생명과학계 지배?

    이제는 생명과학계의 ‘신의 손’으로 불리는 황우석 박사.

    생명공학 관련 회사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한국인 과학자 한 명이 미국 주식시장을 그야말로 뒤흔들어놓은 것이다. 바로 ‘황우석(서울대 수의학과 석좌교수) 효과’다. 뿐만 아니다. 미국 정치권도 황 교수의 연구 성과를 놓고 팽팽한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연방정부가 복제기술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하라는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은 “줄기세포 연구에 연방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바람에 이 분야에서 미국이 한국에 밀리게 됐다”며 부시 행정부를 ‘대놓고 원망’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주립대학 리지아 페레이라 교수도 “미국 정부가 줄기세포 연구를 지나치게 규제한 ‘덕분에’ 황우석이라는 스타 과학자가 탄생했다”고 꼬집었다.

    미국, 황우석 따라잡기 뒤늦은 시동

    5월24일 미국 하원은 줄기세포 연구 제한을 완화하는 ‘줄기세포 연구증진 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238표, 반대 194표로 가결했다. 그동안 줄기세포 연구를 강력히 반대해온 부시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몰린 형국.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은 “정부 자금이나 납세자들의 돈이 생명을 파괴하는 과학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된다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면서 버티고 있다. 하원의 찬성표가 부시 대통령이 예고한 거부권 행사를 무력화할 수 있는 재적의원 3분의 2인 290표에는 크게 못미쳐 실제 법안이 발효될지는 미지수다.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완강한 태도를 보다 못한 미국의 한 자선단체는 줄기세포를 연구해오고 있는 코넬 대학, 록펠러 대학,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의 세 곳에 3년 동안 약 5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 뒤지기 시작했다고 미국인들 어지간히 애가 타는 모양이다.

    사실 지난해 황 교수팀은 세계 최초로 이미 복제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반응은 지난해보다 올해 오히려 훨씬 더 뜨거운 듯하다. 황 교수의 이번 연구 성과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기에 세계인들이 이렇게 주목하는 걸까.

    지난해에는 여성 16명에게서 난자 242개를 받아 단 1개의 줄기세포주를 얻은 데 비해, 이번에는 여성 18명에게서 난자 185개를 제공받아 무려 11개의 줄기세포주를 얻었다. 평균 16~17개의 난자에서 줄기세포주 1개를 얻은 셈이니, 지난해보다 줄기세포 추출 성공률이 10배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黃의 법칙’ 생명과학계 지배?

    5월20일 밤 서울대 수의대학에서 황우석 박사 연구팀이 황 박사의 성과를 축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기법’의 진보보다 더 값진 성과는 바로 실제 난치병을 앓고 있는 남녀노소 환자들에게서 직접 줄기세포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황 교수팀은 10~56세의 남녀 척수손상 환자, 6세 여자 소아당뇨 환자, 유전병인 선천성 저감마글로불린혈증을 앓고 있는 2세 남자 환자를 포함해 모두 11명의 환자에게서 체세포를 얻었다. 체세포는 정자와 난자 같은 생식세포를 제외한 인체의 모든 세포다.

    체세포를 핵을 제거한 난자에 이식한 다음 전기충격으로 난자와 체세포를 융합했다. 바로 이 과정이 정자와 난자의 결합 없이도 배아를 만드는 첨단 생명공학 기법인 ‘복제’다. 이렇게 복제된 배아는 체세포에 들어 있던 유전물질을 고스란히 갖게 된다. 배아를 발생 초기단계인 배반포기까지 배양하면 내부에 세포가 모여 있는 덩어리가 생긴다. 바로 이곳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이다. 1mm도 채 안 되는 난자 ‘내부’에서 미세한 ‘세포’들을 집어내려니 한국인 특유의 ‘손재주’가 유용하리란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지난해 황 교수팀이 얻은 줄기세포는 ‘건강한’ 여성 ‘1명’에게서 제공받은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한 것이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여성용’ 줄기세포였던 셈이다. 이에 비해 이번에는 성별·나이에 관계없이 얻은 체세포를 이용해 복제배아를 만들고 거기서 줄기세포를 추출했으니, 개인별 ‘맞춤형’ 줄기세포를 얻는 기술을 확립한 것이다.

    세계적인 복제 전문가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제럴드 섀튼 교수는 지난해 ‘여성용’ 줄기세포 추출 성공에 대해 “난자를 제공한 동일 여성의 체세포를 이용한 것이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또 학계에서는 동물 복제의 경우 수컷의 체세포와 암컷의 난자는 성질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복제 성공률이 낮다고도 알려져 있었다. 황 교수팀은 이번 성과를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또한 환자 자신의 체세포에서 줄기세포를 얻었으니 이를 그 환자에게 이식해도 당연히 면역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배아복제 기술을 난치병 치료 목적으로 실용화하는 데 한 발짝 다가선 것이다. 줄기세포는 200가지가 넘는 인체 내 모든 장기로 자랄 수 있고, 계속해서 증식할 수 있기 때문에 난치병 치료의 희망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줄기세포를 질환 부위에 이식한 뒤 손상된 세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세포로 건강하게 자라주기만 하면 ‘만사형통’. 그런데 이것이 현재로서는 말처럼 쉽지 않다.

    황 교수팀도 지금까지의 연구가 갖고 있는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우선 줄기세포를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이용해 얻었기 때문에 이식한 이후에 줄기세포가 환자가 앓고 있는 질병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난치병을 치료하는 데 쓰려면 이식한 줄기세포가 반드시 ‘건강한’ 세포로 자라야 하는 것이다.

    ‘黃의 법칙’ 생명과학계 지배?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5월30일자를 장식한 황 교수 기사

    사이언스 보도자료 한국어로 만들어

    줄기세포를 얻는 과정에 필요한 화학약물 중 동물에서 유래한 물질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방법도 개발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동물에서 얻은 효소나 혈액성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배아를 만드는 과정에 필요한 전기자극 방법이 유전자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줄기세포를 질환 부위 치료에 꼭 필요한 한 가지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걸음마 단계. 게다가 줄기세포가 이식 후 계속해서 분열해도 큰 문제다. 난치병을 치료하려다 자칫 암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줄기세포의 ‘만능’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난치병 치료가 가능해지는 것. 아직도 갈 길은 첩첩산중이다. 황 교수팀은 이르면 올해 7월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와 함께 원숭이에 줄기세포를 이식하는 실험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 측면의 ‘산’ 말고도 황 교수팀이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은 더 만만치 않다. 미국의 과학 전문 주간지 ‘사이언스’에 실린 황 교수 논문 바로 뒤 ‘정책포럼’이라는 코너에 미국 생명윤리학자들이 기고한 논평이 실렸다. 저자들은 난자를 얻기 위해 호르몬제를 먹은 여성의 경우 복통을 느끼거나 신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 자료를 제시했다. 또 심한 경우 불임이 되거나 사망할 위험도 있다고 경고하면서 이를 난자 제공자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황 교수팀은 “충분히 알렸고, 이번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올해부터 발효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유엔은 2004년 11월에 열린 제59차 총회에서 “인간배아복제를 둘러싼 회원국들의 갈등이 심각해졌다”는 이유를 들어 “형식적인 선언문만을 채택”하기로 했다. 인간복제 전면 금지를 사실상 포기한 것. 아직 ‘뜨거운 감자’인 배아복제 생명윤리 논쟁에 한국이 한 번 더 불을 당긴 셈이다.

    황 교수팀의 논문이 실린 ‘사이언스’를 발행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등록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는 놀랍게도 한국어였다. ‘사이언스’가 발행된 이후 보도자료가 한국어로 나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또 미국 유전학정책연구소(GPI)는 7월 세계적인 정치학자, 생명윤리학자, 법학자, 의학자 등이 참석할 예정인 ‘치료용 배아줄기세포 정상회담’에 황 교수를 공식 초청했다고 밝혔다. 세계 과학계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소식이다.

    영국, 일본, 미국, 뉴질랜드에 이어 1999년 2월 국내 최초의 복제 동물 젖소 ‘영롱이’를 탄생시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황 교수를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로 인해 세계 생명과학계를 이끌 또 하나의 ‘황의 법칙’이 탄생할지 지켜볼 일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