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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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소환 통보 후 왜 관할 옮겼나

박종식 회장 ‘S토건 대출사건’ 검찰 수사 미적(?) … 1차공판서 추가 수뢰 확인 불구 공소장 변경 없어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4-11-03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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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은 9월11일 박종식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박회장이 임씨로부터 빌린 돈을 다 갚았기 때문에 죄가 위중하지 않아 불구속했다”고 설명했다. 한 베테랑 특수부 검사는 “이 경우 박회장의 추가 수뢰 사실이드러났기 때문에 공소장 변경을 통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10월22일 서울 동부지방법원 1호 법정. 수협중앙회(이하 수협) 박종식 회장(57)에 대한 첫 공판이 시작됐다. 박회장은 1997년 9월12일 수협이 S토건에 20억원을 대출해주도록 압력을 행사(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한 뒤 S토건 대표 임모씨로부터 7억5000만원을 무이자 차용(부정처사후 수뢰)한 혐의와 승진 대가로 직원에게 1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뇌물)로 서울 동부지검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

    “박회장은 S토건 대표 임씨로부터 빌린 7억5000만원을 어음 등으로 갚았다고 주장하지만 수사 결과 이 가운데 어음 대금 1억원은 S토건에서 대납했더군요. 98년 4월에는 다시 5000만원을 S토건에서 수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자까지 포함해 수뢰 액수가 약 2억원에 달합니다.”(동부지검 박태기 검사)

    “그 돈은 모두 무이자로 차용했다가 변제했습니다. 그리고 S토건의 수협 이자 2억9000여만원을 대납해줬기 때문에 다 갚았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에 떨어진 사람들의 모함일 뿐입니다.”(박종식 회장)

    이날 공판에서 박회장은 배임 혐의에 대해 “이모 당시 여신지원부장에게 통상적으로 대출을 제안한 수준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승진 대가로 1000만원을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 경황이 없어 미처 돌려주지 못했을 뿐이고, 수협을 위해 공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결국 박회장의 혐의 가운데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부정처사후 수뢰한 금액. 애초 동부지검이 9월11일 박회장을 기소하면서 밝힌 수뢰 금액은 7억5000만원에 대한 이자상당액인 4900만원 정도였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박회장에게 “S토건 대표 임씨가 수협으로부터 문제의 20억원을 대출받은 다음날 임씨로부터 7억5000만원을 송금받은 것은 대출사례금 아니냐”고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회장은 “정식으로 차용증을 쓰고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약정이자 없이 빌렸다는 차용증을 증거로 제시했으며 1억5000만원은 97년 말 현금으로, 나머지 6억원은 98년 말 어음으로 당좌계좌로 결제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1차 공판에서 새로운 사실을 공개했다. “박회장이 98년 4월 S토건 임사장으로부터 5000만원을 추가 수뢰했고, 어음으로 갚았다는 6억원 가운데 1억원은 임사장이 대납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기소대로라면 박회장이 임씨로부터 수뢰한 총액은 1억원(임사장이 대납한 어음)+5000만원(추가 수뢰한 돈)+4300여만원(빌려간 돈의 1년 법정이자 상당액) 등 2억원에 이른다.

    검찰은 9월11일 박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박회장이 임씨로부터 빌린 돈을 다 갚았기 때문에 죄가 위중하지 않아 불구속했다”고 설명했다. 한 베테랑 특수부 검사는 “그런데 기소 이후 박회장의 추가 수뢰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공소장 변경을 통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부지검 관계자는 “S토건 임사장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확인을 못했기 때문에 공소장 변경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피의자 소환 통보 후 왜 관할 옮겼나


    피의자 소환 통보 후 왜 관할 옮겼나

    서울동부지검 전경.

    20억원 대출받고 다음날 7억5000만원 송금

    박회장은 정말 99년 임사장의 대출이자 2억9000여만원을 대납해주었을까. 한 전직 수협 임원은 “99년 9월 S토건 대출 연장 문제가 제기됐을 때 S토건 측이 그때까지 무려 5억원의 이자를 연체했기 때문에 연장은 곤란하다는 지적이 많았으나 결국 연체이자 2억원 가량을 탕감해주고 연장해주기로 결정했다”고 증언했다. 박회장이 2억9000여만원의 연체이자를 대납했다고 해도 또 다른 특혜 의혹을 제기할 만한 대목이다.

    S토건 대출 건은 외환위기 직전인 97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회장은 당시 친구를 통해 알게 된 S토건 대표 임씨에게 20억원을 신용대출해 줄 것을 측근인 이모 여신지원부장에게 부탁한다. 당시 S토건은 수협 천안연수원 시공을 맡기도 했지만 자산 1억원에 부채가 1억원 가까이 되는 껍데기 회사였다. 당연히 신용대출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에 S토건 측은 다시 담보물을 제시하고 대출을 요청했다. 그러나 담보물건에 대한 심사 결과, 이미 다른 금융기관이 가압류한 상태여서 담보 가치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박회장은 여신지원부 이모 부장에게 “먼저 대출을 해준다면 그 돈으로 가압류부터 풀겠다고 하니 다시 한번 고려해보라”며 은근히 ‘압박’해 결국 9월12일 대출이 이뤄졌다. 그리고 대출 다음날 7억5000만원이 박회장과 그의 부인 계좌로 입금된다. 이후 S토건은 수협에 14억원의 부실채권을 안기고 2001년 폐업처리되었다.

    박회장 말대로라면 S토건 임사장에게서 빌린 7억5000만원은 공직자 재산등록시 부채 계정으로 신고해야 할 사항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회장은 “내가 직접 관리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억원을 빌려서 7억5000만원을 뇌물로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검찰의 태도. 검찰은 S토건 임사장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박회장을 ‘압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안팎에서는 당연히 “검찰이 임사장을 안 잡는 것인지, 못 잡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검찰이 박회장을 봐주기 위해 안 잡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박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8월30일 이 사건이 수원지검 특수부에서 동부지검 형사6부로 이송되면서부터 눈에 띄게 약화됐다는게 관계자들의 일치된 증언.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검과 동부지검에 출두했던 한 전직 수협 관계자는 “수원지검에 비해 동부지검의 수사 의지가 약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에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없지 않다. 서울동부지검이 기소한 내용은 이미 수원지검에서 확인한 것으로, 서울동부지검이 추가로 수사한 내용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전직 수협 임원은 “수원지검에서는 박회장의 다른 비리 혐의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조사를 하고 있었다”면서 “수원지검에서는 박회장을 일단 구속한 다음 이들 혐의에 대해 계속 수사하려는 분위기였다”고 증언했다.

    수원지검은 박회장의 비리에 대한 첩보를 자체적으로 입수, 은밀히 내사를 진행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박회장이 S토건 부당 대출에 개입했을 뿐 아니라 승진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긴 혐의를 확인하고, 8월 말 소환을 통보했다는 것. 그러나 박회장은 소환을 거부했다. 수원지검은 어찌된 일인지 박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지 않고 곧 사건을 서울 동부지검으로 이송한다.

    수원지검은 이에 대해 S토건 임사장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검찰이 ‘인권수사’를 위해 체포영장 발부를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의상 관할인 동부지검에 넘긴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검찰은 관련 업체로부터 1억원을 수뢰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의해 구속된 수자원공사 고석구 사장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특수부 검사들도 “피의자에게 소환 통보를 한 이후에 관할을 옮기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신지원부장 불러 대출 압력 넣은 사실 확인

    수원지검이 박회장에게 소환을 통보한 것은 구속을 전제로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협중앙회나 박회장의 주소지, 또는 박회장의 범행 장소가 모두 수원지검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수원지검이 박회장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박회장을 반드시 ‘구속’해야 한다.

    이와 관련, 한 검찰 관계자는 “박회장 측에서 ‘수원지검이 박회장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수협 관계자로부터 투서를 받아 표적수사를 한다’고 수원지검 ‘윗선’을 설득했고, 수원지검에서는 이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수원지검 윗선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확인을 거부했다.

    박회장 측에서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한 것은 박회장 변호인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박회장의 변호인인 박종록 변호사는 “이번 수사가 박회장을 음해하려는 제보에 기초했기 때문에 검찰의 ‘기획수사’로 비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회장과 수협 회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결선투표까지 갔던 경기남부조합장 P씨를 염두에 두고 하는 얘기다. 그러나 수원지검 관계자는 “대꾸할 가치도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박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무수한 뒷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검찰과 박회장의 공방은 법정으로 옮겨지게 됐다. 검찰이 기소한 혐의 가운데 박회장이 인정하는 것은 승진을 대가로 1000만원을 받아 챙긴 부분뿐이다. 배임 및 부정처사후 수뢰와 관련해서는 치열한 법정 다툼이 예상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 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형이 없다는 점. 따라서 박회장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 박회장은 수협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과연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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