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7

2004.08.12

손발 척척 맞은 ‘엑소더스 드라마’

탈북자 468명 A국 체류부터 입국까지 … 정부 부처 이끌고 민간단체 적극 협조 ‘해피엔드’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4-08-06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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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발 척척 맞은 ‘엑소더스 드라마’
    ‘…남조선의 역대 통치자들은 우리 공화국에서 죄지은 인간 쓰레기들을 끌어다 반(反)공화국 대결 책동에로 내몰았다. 우리는 남조선 현 당국이 6·15시대에 와서까지 선임자들의 그릇된 과거 죄행을 되풀이하면서, 더욱 교활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우리 인민들을 집단적으로 유인 납치해가고 있는 데 대해 엄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이 유인납치 테러 범행이 미국이 최근 우리를 걸고 그 무슨 ‘인권법안’이라는 것을 국회 하원에서 통과시킨 것과 때를 같이해 감행된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 우리는 북남 사이에 새로운 반목과 대결을 조장하며 북남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고 있는 남조선 당국의 반민족적 납치 테러 범죄를 절대로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응당한 계산을 할 것이다. 이번 사태가 빚어낼 후과(後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이 책임지게 될 것이며, 이에 협조한 다른 세력들도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주체 93년 7월29일 평양.’

    7월27일과 28일, 제3국에 모여 있던 468명의 탈북자가 한국에 입국한 데 대해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 대변인이 발표한 성명 중의 일부이다.

    북한의 분노와 한국 사회의 환호를 불러온 탈북자 대량 입국 사태는 어떻게 일어나게 됐는가. 그리고 이 사태는 북한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해도 좋은가. 사건의 전말을 살펴보며 이를 추적해보기로 한다.

    이 사건은 한국 정부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합동으로 성공시킨 한 편의 드라마였다.



    2002년까지만 해도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이 주로 활용한 경로는 몽골 경유 노선이었다. 그런데 이 경로를 이용해 탈북자를 구출하던 천기원 전도사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후 중국-몽골 국경의 경비가 강화되었다. 그러자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A국이 몽골에 못지않은 새로운 탈출로로 떠올랐다.

    2002년 A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는 50여명이었는데 2003년 중반 1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A국이 한국으로의 출국을 허용한 탈북자 수가 좀처럼 늘지 않아 심한 ‘병목현상’이 일어났다. A국에 있는 한국대사관은 탈북자 관리와 처리에 비명을 지를 지경이 된 것이다. 이러한 대사관의 고통을 해결해준 것이 바로 현지의 한국인들이었다.

    “유인 납치 …” 조평통 이례적 성명 불쾌감 표시

    A국에는 적잖은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었다. 이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한국행을 기다리는 탈북자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 한인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이들은 안가를 마련해 탈북자를 수용하고 식사 및 옷 등을 제공했다. 이로써 대사관은 한시름 덜었으나 곧 안가도 탈북자로 넘쳐나 한인연합회와 대사관 모두 허덕이는 지경이 되었다.

    손발 척척 맞은 ‘엑소더스 드라마’

    북한 난민 구출에 전력을 기울여온 김상철 변호사

    2002년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외교통상부는 정공법으로 이 문제를 풀기로 의견을 모았다. 대사관에 배정되는 활동비로는 도저히 탈북자 문제를 다룰 수 없으니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정식으로 예산을 편성하자고 한 것. 이에 대해 국가정보원도 적극 협조했다. 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해 2003년부터 A국을 비롯해 탈북자가 많이 몰려드는 해외공관에 필요한 돈이 배정되기 시작했다.

    A국 주재 한국대사관은 그동안 무료로 봉사해온 한인연합회 관계자들에게 소정의 급료를 지불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탈북자 관리를 맡기는 위탁관리시스템을 취하게 되었다.

    안가에 수용된 탈북자들은 한인연합회 관계자에게서 한글은 물론이고 컴퓨터까지도 배웠는데 그 사이 안가에 수용된 탈북자가 350여명으로 늘어났다. 일손이 달린 대사관과 한인연합회에서 다시 비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로써 하루빨리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이 분명해졌다.

    올해 4월 중순 아일랜드에서 열린 ASEM(아시아 유럽 정상회의)에 참석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A국의 외무부 장관을 만나 인도적인 차원에서 탈북자의 한국행을 요청했다. 반장관은 6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다시 A국 외무부 장관을 만나 선처를 요청했다. 고심을 거듭한 A국 장관은 “북한과 외교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우리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고려해보겠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A국서 구매한 쌀 북한에 차관 형식으로 제공

    지난 5월 중순 김상철 변호사가 이끄는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A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장기간 대기로 인한 스트레스로 서로 싸우다 다치고 성폭행까지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탈북자 구출에 전력을 기울여온 운동본부는 외교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항의하며 5월 말, 그리스 대사를 지내고 퇴직한 소병용씨와 송부근 목사 등 5명을 A국에 보내 실태를 조사케 했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한 조사단은 안가에 수용돼 있는 탈북자들이 정부의 지원과 현지 교민들의 협조로 의외로 좋은 환경에서 지내는 것을 확인했다. 좋은 인상을 받고 서울로 돌아온 이들은 외교정책실 관계자를 만나 “언제 이들을 데려올 것이냐”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8월 말 이전까지 데려올 테니 그때까지는 언론에 나오지 않게 해달라. 이는 A국의 심심한 부탁이다”라고 말했다.

    A국이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탈북자들이 서울에 도착한 후 기자는 한국 주재 A국 대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우리나라는 탈북자의 한국행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일을 알지도 못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A국이 강하게 익명을 요구했기에 모든 언론이 제3국이라는 표현으로 A국을 감춰주었던 것이다.

    지난 6월5일 남북은 제9차 경제협력추진위를 열고, 올해 남측은 북측에 40만t의 쌀을 차관 형식으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올해 한국의 쌀 재고량이 7만t에 그쳐, 정부는 외국에서 30만t의 쌀을 구매해 북한에 제공하기로 했다.

    손발 척척 맞은 ‘엑소더스 드라마’

    7월27일 A국을 출발해 서울공항에 도착한 탈북자들.

    한국은 1993년에 타결된 WTO(세계무역기구) 협정에 따라 올해까지 10년간 전면적인 쌀 수입을 유예받는 대신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에 따라 일정량의 쌀을 수입해야 한다. 통일부까지 참여한 회의에서 정부는 최소시장접근 방식에 따라 수입하는 쌀을 A국에서 수입해 북한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A국과 가격협상을 벌여 탈북자들이 서울에 도착하고 난 다음인 7월26일 A국에서의 쌀 수입을 공식 결정했다. 정부로서는 A국의 쌀을 사줌으로써 감사의 뜻을 전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약속한 쌀을 보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량 탈북자 송환은 이렇게 정부 부처간에 손발이 척척 맞아 돌아가고, 여기에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민간단체가 적극적으로 협조함으로써 이뤄졌다. 이 때문에 언론은 이러한 움직임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7월23일 경향신문이 처음으로 포착해 보도함으로써 비로소 주목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에 대해 북한이 보인 반응이 바로 조평통 성명이다.

    북한은 정치인이 아닌 일반 탈북자의 한국행에 대해서는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조평통을 내세워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실적으로 북한을 통치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와 대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북한 주민을 탄압하는 독재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선은 김위원장과 대화 협력을 하지만 결국은 그를 북한 주민에게서 분리해내야 하는 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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